[문화산책] 오른쪽 어깨

  • 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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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06 09:20  |  발행일 2026-09-07
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김성문 대구문인협회 문학단지조성추진위원장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 매달 만나는 친구와 앞산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고산골 약수탕으로 향했다. 입구의 메타세쿼이아에는 가지마다 녹색 잎이 무성했다.


친구는 만날 때마다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심장이 있는 쪽끼리 맞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래된 농담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하굣길, 우산이 없던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준 사람도 그였다.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인 채 걷느라 그의 오른쪽 어깨는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젖은 교복을 털더니 여느 때처럼 왼손을 내밀었다.


친구는 약속이 있는 날이면 늘 조금 먼저 와 있었다. 내가 늦어도 재촉하거나 타박하는 법이 없었다. 졸업한 뒤에도 그 버릇은 변하지 않았다.


산길을 오르며 우리는 흰머리가 늘었다느니 배가 나왔다느니 서로를 놀렸다. 앞서가던 친구는 비탈이 가팔라질 때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멈춰 섰다.


"내가 너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고는 다시 앞질러 갔다. 굽이를 돌 때마다 빨간 모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보이지 않아도 앞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약수탕에서 물을 마신 뒤에는 올라온 길과 다른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갈림길에서 내가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야자 매트가 끊기고 산길이 좁아졌다. 휴대전화 지도도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해는 산등성이로 기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친구가 웃었다.


"산에 길이 하나뿐인가. 가다가 아니면 돌아가면 되지."


비탈은 점점 가팔라졌다. 친구가 한 번 미끄러졌고, 다음 비탈에서 또 발이 밀리자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땀에 밴 손바닥이 따뜻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한참을 내려갔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희미한 물소리가 들리고 길이 조금씩 넓어졌다. 친구가 나뭇가지 사이를 가리켰다.


"결국 나왔네. 네 덕분에 새 길도 하나 알았다."


"저녁은 내가 살게."


"그렇지! 길은 잘못 들어도 식당은 제대로 찾아왔네."


웃음이 식탁 위로 번졌다. 막걸릿잔이 한가운데서 부딪쳤다.


식당을 나서자 우리는 각자 돌아갈 길 앞에 섰다. 늘 먼저 왼손을 내밀던 친구에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왼손을 내밀었다.


"다음 달에 보자."


친구는 내 손을 맞잡았다. 이윽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문득 오래전 빗속의 오른쪽 어깨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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