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남는 도시의 조건 ②] ‘직무 절벽’에 선 대구, 브르노가 그려낸 ‘청년의 미래’를 만나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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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25 17:37  |  수정 2026-09-25 18:13  |  발행일 2026-09-25
구인난 속 구직난…끊어진 대구의 ‘직무 성장 사다리’
‘모라비아의 맨체스터’의 부활, 딥테크로 인구 반전
파격적 ‘오픈 액세스’와 20년 산학연계 청년이 남는 생태계

"대구에 기업은 있지만 '내 커리어'를 키울 수 있는 직무가 없습니다."


지역 대학 출신 김모(28)씨는 2년 전 지역의 컴퓨터 웹 개발 업체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의 회사 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자회사의 단순 업무 지원뿐이었다. 김씨는 "대구에도 웹 개발 회사가 있지만 모집 공고도 잘 없고, 최신 기술을 다루며 역량을 발휘할 개발 직무는 가뭄에 콩나듯 했다"며 "지인 추천으로 입사했지만 커리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이직을 하게 된다면 서울로 가게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씨의 사례는 대구 노동시장의 '구조적 미스매치'를 보여준다. 청년들이 대구를 등지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지역 내 기업의 수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지역 산업 생태계가 청년들이 갈망하는 고부가가치 직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들의 상향 이동을 이끌어줄 '커리어 성장 경로'가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인난? 갈 곳은 없다"


대구 고용시장의 비극은 '일자리 절대량의 부족'에만 있지 않다. 지역 중소기업들은 만성적인 구인난을 호소하지만 정작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일할 곳이 없다며 수도권행 열차에 오르는 기형적인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 대구에 산업과 기업은 존재하지만 고학력 청년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키워나갈 직무의 경로가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대구 노동시장의 '구조적 미스매치'는 지역 정책 전문가의 진단과도 궤를 같이한다.


대구정책연구원 김수성 정책시뮬레이션센터장은 "단순히 일자리의 숫자로만 현상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 취업 후 경력을 쌓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가능한 직무경로'가 구조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역 기업에서 3년 뒤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과 궤도를 보여주지 못하면 청년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며 "대학 현장에서 딥테크나 신산업 프로젝트를 미리 경험하고, 영속적인 취업 경로로 이어지는 조기 산학 연결 구조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자료 출처 e-지방지표, 그래프=Gemini

자료 출처 e-지방지표, 그래프=Gemini

청년들이 지역 기업을 외면하는 또 다른 핵심 이유는 다른 지역과의 뚜렷한 보상 격차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e-지방지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대구의 상용 월평균 임금은 355만4천원으로 집계됐다. 세종(389만7천원)이나 대전(387만3천원) 등 타 특광역시보다 월 30만원 이상 적은 최하위권이다.


지역 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거시 지표 역시 하락세다. 국가통계포털 e-지방지표를 보면 2024년 대구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3천137만원으로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가장 낮았다. 가장 높은 울산(8천519만원)과는 두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24년 지역 경제성장률 또한 -0.8%로, 8대 도시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역성장)를 기록했다.


기업과 도시 경제가 양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서, 청년 개인이 기대할 수 있는 임금 상승과 직무 역량 발전의 기회 역시 구조적으로 제한받고 있는 상황이다.


◆청년 인구 반전 이룬 체코 브르노


체코 브르노에는 마사리크대, 브르노 공대 등 6개 주요 국공립대를 포함해 총 10여 곳의 대학이 소재해 있다. 지난 11일 브르노의 도심은 개강을 앞두고 대학생 등 청년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체코 브르노에는 마사리크대, 브르노 공대 등 6개 주요 국공립대를 포함해 총 10여 곳의 대학이 소재해 있다. 지난 11일 브르노의 도심은 개강을 앞두고 대학생 등 청년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대구가 직면한 '직무 절벽'과 '청년 엑소더스'의 해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영남일보는 대구와 놀랍도록 닮은 위기를 먼저 겪었으나, 청년이 원하는 고부가가치 직무 생태계를 구축해 부활을 이뤄낸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Brno)에 주목했다.


대구와 브르노는 여러모로 닮아있다. 한때 섬유도시로 급부상했다는 점도 닮아있고 풍부한 교육 인프라를 갖춘 '대학 도시'라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대구권 대학으로 경북대, 영남대 등 다수의 4년제 및 전문대학이 넓게 포진해 있다면 브르노에는 마사리크대, 브르노 공대 등 6개 주요 국공립대를 포함해 총 10여 곳의 대학이 자리하며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직접 찾은 체코 브르노는 도시 곳곳이 젊은 에너지로 넘쳤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강을 앞둔 브르노 중앙역(Brno hlavní nádraží)과 자유광장(Náměstí Svobody) 일대는 대학생 등 청년들로 북적였다.


체코 남동부의 주도인 브르노는 19세기부터 섬유와 기계 공업이 발달해 '모라비아의 맨체스터'라 불리던 유서 깊은 제조도시였다. 그러나 1990년대 체제 전환기 이후 제조업이 무너지며 심각한 산업 침체와 청년 유출을 경험했다.


지난 11일 체코 브르노 중앙역 앞은 트램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학 캠퍼스 안을 거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정도로 청년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지난 11일 체코 브르노 중앙역 앞은 트램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학 캠퍼스 안을 거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정도로 청년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브르노는 전통 제조업을 지키기 위한 단순 보조금 투입에 머물지 않고 도시 전체를 R&D, 정보통신기술(ICT), 딥테크 중심의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했다.


그 중심에는 브르노를 지탱하는 첨단 산업이 있다. 브르노는 세계 전자현미경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글로벌 나노테크·전자현미경의 수도'다. 써모피셔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과 테스칸(Tescan) 등 글로벌 첨단 분석기기 기업들이 브르노에 대규모 R&D 센터와 생산 인프라를 두고 나노공학, 광학 설계, 정밀제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무를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사이버 보안 기업 아바스트(Avast)와 오픈소스 대표 기업 레드햇(Red Hat)의 글로벌 R&D 거점까지 둥지를 틀며 매년 수천 명의 컴퓨터 공학·SW 개발 직무 청년들을 정규직으로 흡수하고 있다.


단순 생산라인 공장이 아니라 청년들이 '내 커리어를 글로벌 수준으로 키울 수 있는 직무'가 브르노 도심 곳곳에 빽빽하게 박혀 있는 셈이다.


그 결과는 숫자로도 입증된다. 체코 통계청(CZSO) 브르노시 연령별 인구 통계를 보면 2016년 37만8천5명이던 전체 인구는 2024년 40만2천739명으로 늘었다.


2016년 당시 브르노의 15~19세 청소년 그룹은 1만3천629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구직기에 접어든 8년 뒤인 2024년, 비슷한 연령대인 25~29세 구간의 인구는 무려 2만1천680명으로 집계됐다. 전자현미경 R&D와 SW 엔지니어링 등 양질의 직무를 찾아 8천 명 이상의 외부 청년이 유입됐음을 보여준다. 취업기에 진입할수록 인구가 빠져나가 지난 10년간 25~29세 청년만 3만9천명을 떠나보낸 대구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청년을 부르는 연구 인프라


파벨 크레치메르 박사는 2만5천㎡ 규모에 달하는 13개 핵심 연구시설과 87대의 첨단 장비에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파격적인 기회부여가 청년들을 브르노로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파벨 크레치메르 박사는 "2만5천㎡ 규모에 달하는 13개 핵심 연구시설과 87대의 첨단 장비에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파격적인 기회부여가 청년들을 브르노로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인구 반전의 중심에는 마사리크대, 브르노 공과대학(BUT) 등 6개 기관이 연합해 2011년 6천만 유로 이상의 예산이 투입돼 세워진 중앙유럽기술연구소(Central European Institute of Technology·이하 CEITEC)가 있다.


현지에서 만난 CEITEC 파벨 크레치메르(Pavel Krecmer) 박사(부소장)는 연구소의 강력한 개방성과 독특한 조직구조가 전 세계 청년 인재를 브르노로 끌어당기는 핵심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6개 기관 연합 컨소시엄인 CEITEC은 52개의 독립적인 연구그룹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이들은 나노·마이크로 기술, 스마트 신소재, 로보틱스, 양자 자기학 등 8개 첨단 딥테크 분야를 집중 연구하며 총 1천400명 이상의 인력을 거느린 거대 두뇌집단이다. 가장 돋보이는 시스템은 '오픈 액세스(Open Access)'다.


크레치메르 박사는 "독일 등 서유럽 학생들은 첨단 실험실 접근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지만, 브르노에서는 2만5천㎡ 규모에 달하는 13개 핵심 연구시설과 87대의 첨단장비에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이러한 파격적인 기회 부여가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CEITEC 나노 연구 인프라에서는 360명 이상의 연구자가 몰려 연간 7만7천 건 이상의 장비 예약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인재 유치 효과도 뚜렷하다. 현재 150여 명에 달하는 박사과정 학생 중 절반 이상인 55%가 해외에서 온 유학생이며 45개국 이상의 국적자들이 모여 글로벌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외 우수 학생과 연구원을 유치하고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전문 비영리 기관인 남모라비아 국제이동성센터(JCMM)의 장학금 지원은 물론 2025년 새롭게 출범한 'CEITEC 아카데미'를 통해 지역 중·고등학생들의 이공계(STEM) 진로를 돕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개방적 연구 환경은 고스란히 지역 내 양질의 딥테크 일자리 창출과 창업으로 직결된다. 대학의 연구가 지역 내 기업인 온세미(onsemi) 브르노 지사나 지멘스(Siemens) 같은 해외 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구조다. 나아가 CEITEC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 성과가 기술 스핀오프(Start-up)로 즉각 연계되며 청년들에게 새로운 커리어 경로를 열어주고 있다.


크레치메르 박사는 브르노의 성공은 단일 기관의 성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3개의 대학교,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20년 가까이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남모라비아 지역 혁신 센터 JIC(Jihomoravské inovační centrum)와의 시너지도 짚었다. 대학과 지자체, JIC의 지원을 바탕으로 브르노 내에 400여 개의 독자 연구 수행 기업들이 단단한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크레치메르 박사는 "산학관 협력 생태계가 나와서 일자리가 생기니 청년들이 남는 것이다. 현재 브르노는 대학교 졸업자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고, 급여 수준 역시 오스트리아와 비교 가능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과거엔 수도인 프라하로 떠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브르노로 돌아오는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브르노 마사리크대에서 학업을 마치고 정착한 다그마르(여·23)씨는 "브르노에 남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커리어와 미래 발전을 이끌어 줄 '성장 가능성'이 뚜렷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훌륭한 교통망이 갖춰져 있어 청년들이 살기에 최고의 도시다. 무엇보다 학교나 직장 커뮤니티 자체가 외국인이나 외지인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포용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체코 브르노 공대 CEITEC 건물 전경.

체코 브르노 공대 CEITEC 건물 전경.

글·사진=체코 브르노에서 김지혜기자 hellowis@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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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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