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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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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의 피플]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철학자를 찾았다. 어수선한 세상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출발이다. 우크라니아 전쟁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상황이고,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정치의 혼란스러움은 더욱 극성이다.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서 철학자에게 물었다. 지난달 29일 영남대 중앙도서관에 위치한 독도연구소에서 최재목(62) 철학과 교수를 만났다. 신유학으로 불리는 '양명학'의 대가(大家)다. 최근 최 교수가 펴낸 '비교양명학: 한중일 삼국의 시야에서'라는 학술서의 추천사를 세계적인 동양학자인 미국 하버드대학의 뚜웨이밍(杜維明) 교수와 일본 국제기독교대학(ICU)의 고지마 야스노리(小島康敬) 교수가 썼다. 대가라는 타이틀이 손색이 없는 학자이다. 시인이자 시사평론가이기도 하다. 교수신문 논설위원으로 정치권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해마다 교수신문에서 선정하는 사자성어의 '단골 추천인'으로도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명지조(共命之鳥·2019), 아시비타(我是非他·2020), 묘서동처(猫鼠同處·2021)를 추천해 전국의 교수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최 교수는 "2022년에는 교수신문에서 '이번에는 참으라'라고 해서 추천을 안 했다. 나보고 하라고 했다면 내우외환(內憂外患)을 추천했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츠쿠바대 철학사상연구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도쿄대 객원연구원도 역임했다. 현재 영남대 독도연구소장과 영남퇴계학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21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 지원사업'에 선정돼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을 연구하고 있다. 현 정국 향한 '以理殺人' 경계령 "이념적 노선에 의한 주의·주장 모두 상대편 죽이는 데 쓰는 무기가 된 셈 지금 진보는 사색이 낡아 빠진 꼰대 586세대 물러나고 30~40대가 이끌어야 보수 진영도 조선시대 양반 같은 느낌 철저한 반성에 따른 혁신 없이 독단적"▶새해에 추천하고 싶은 사자성어가 있다면."지난해말 선정된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다)를 잇는다면 '지난 날의 잘못이나 허물을 고쳐 올바르고 착하게 된다'라는 뜻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을 꼽고 싶다. '지난 날의 잘잘못을 본보기 삼아 새로운 시대를 도출해 낸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도 좋을 것 같다. 동학에 나오는 차차차차(次次次次)도 추천한다. 차차차차 조금씩 나가면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양명학이 무엇이고, 지금 이 시대에 가지는 의미는."유학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유학에 생명과 자연을 합쳤다. 양명학은 중국 명나라 때 나온 학문으로 '불변의 이치'를 주장하는 주자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다. 이치가 완고해지면 재미가 없다. 사람이 우선이고, 주체가 우선이라는 게 양명학의 핵심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 마음(吾心)'이 중심이다. 내가 이치를 만들고, 우리 사회가 합의를 봐서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적인 이치를 탈피한다는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슷하다. 일본의 근대가 양명학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실용을 중시하게 됐다. 양명학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약속된 것들이 많다. 그런 약속은 불변이라기보다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맥락을 결정하는 것은 주체다. 주체가 융통성있게 맥락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국제관계나 인간관계나 모두 맥락의 문제이다. 맥락을 잃어버리고 이치만 갖추다 보면 질식사하게 된다." ▶최근 교수신문 사설에 '이리살인(以理殺人)'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데,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청나라 고증학자 대진이 한 말인데, '리(理)로써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섬뜩한 말이다. 리(理)라는 것은 인간이 정한 냉정하고도 근엄한 잣대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이념적 노선에 의한 주의, 주장이 리(理)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상대편을 죽이는데 쓰는 날가로운 도구나 무기가 된 셈이다."▶지금 정치가 그렇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다. "586세대가 물러나야 한다. 지금 진보는 스스로 진보하지 않고 진보를 팔아먹고 살아왔다. 머리가 굳어서 사색이 낡아 빠졌다. 꼰대가 됐다. 이념적 아집에 차 있을 뿐이다. 과학이나 의식적인 측면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게 우리나라 진보 진영이다. 국가와 민족도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함께 국가와 민족이라는 도식에 대해 좀 더 철학하며 타협하고 절충할 필요가 있다. 586세대는 물러서서 30~40대들이 이끌도록도 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은 586 이념형 세대에게 '입은 닫고 지갑을 열며 자리를 내주라'고 애원하고 있다."▶ 보수 진영의 문제는 무엇인가."보편적인 가치를 제안하는 게 보수이다. 지금 보수 진영은 조선시대 양반 같은 느낌을 준다. 단합도 안되고, 멋도 없으면서 고칠 생각을 안한다. 철저한 자기반성에 따른 혁신 없이 독단적이다. 한마디로 건들댄다. 맥락성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 문제나 경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과 지방 대학 살리려고 하는 의지도 안 보인다. 특별하게 '뭘 하고 있다'라는 게 없다. 그래도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보다 낫다. 지금 민주당은 조폭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 '단골 추천인'"지금 한국사회에 약속된 많은 것들은 불변이라기보다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주체가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게 필요 작년 사자성어 '과이불개'를 잇는다면 올핸 개과천선·법고창신 추천하고 싶어"▶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와 독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문재인 정부 때 단절된 분위기를 좀 회복하면서 현재보다 더 나쁘지 않은 관계, 너무 멀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보편적 가치나 원리를 존중하는 선비의 나라라면, 일본은 현실과 실제에 관심이 많은 사무라이 전통의 나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독도 문제는 당장에 속 시원한 것을 제안할 수 없겠지만, 원론적으로는 현상태를 유지하며 일본의 분쟁지역화 전략에 말려에 말려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독도는 우리가 관리하고 지배하고 있기에 과민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체화된 마음 이론에 대해 소개해 달라."몸과 환경, 뇌가 마음하고 어떻게 역동적으로 연관돼 있는 가를 연구하고 있다. 마음이란 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마음은 실체가 없다. 뇌, 환경의 협동에 의해 맥락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올해 2년째인데, 성과물이 차츰 나오고 있다. 체화된 마음 이론을 통해 AI시대, 포스트 휴먼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접근하려고 한다."▶어수선한 시대에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나다운 삶,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에 더 주목하고,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힘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힘이다. 자기 성찰, 자기 존중이 필요한 시대이다. 밖으로 향해 있는 눈을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자기에 주목해야 더 멀리 갈 수 있다. 자기 존중이야말로 무의미 속에 의미를 찾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다."논설위원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가 독도연구소에서 국내 정치의 문제점과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대구FC 엔젤클럽
놀랍다. 단 3명으로 출발한 시민단체의 회원이 1만명을 넘어섰다. '대구FC 엔젤클럽'이다. 2016년 이호경 대영에코건설 대표이사와 강병규 전 대구시 감사관, 배성혁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이 만들었다. 프로축구 대구FC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시민 모임이다. 대구FC가 진정한 시민구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릴레이 후원' 활동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출범 당시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부각된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돈이 개입되면 말썽이 생길 수 있는데,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호경 대표가 원년부터 지금까지 엔젤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재정 집행이 투명하지 않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최근 민간단체 국고 보조금이나 노조 회계의 불투명성이 불거져 나온 것과 대비된다.대구FC 엔젤클럽의 행동 강령도 흥미롭다. 이 회장은 그저께 대구경북지역 중견 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 21' 토론회에 참석, "정치적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탈 정치),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NO 이익), 구단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NO 경영)"고 밝혔다. 대구FC 엔젤클럽이 추구하는 정신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바탕을 깔고 있다. "시민들이 힘을 합쳐 대구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고 말한다. 2017년 1부 리그로 승격한 대구FC는 엔젤클럽의 든든한 후원 속에 인기 구단으로 거듭났다. 대구FC 엔젤클럽이 자랑스럽다. 조진범 논설위원
[월요칼럼] '편 가르기 사회' 과이불개, 가스라이팅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교수신문에서 선정하는 사자성어가 주목을 받는다. 대한민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올해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꼽혔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이불개 다음으로 '욕개미창(欲蓋彌彰ㆍ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누란지위(累卵之危ㆍ여러 알을 쌓아놓은 듯한 위태로움)' '문과수비(文過遂非ㆍ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ㆍ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다)'이 뒤를 이었다. 모두 부정적이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정권교체가 이뤄져 새 정부가 들어선 첫해인데도, 교수들이 진단한 한국 사회는 잿빛이다.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자화상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이어졌다. 문 정부의 첫해는 희망찼다.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내다)'이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이듬해부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공명지조(共命之鳥·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묘서동처(猫鼠同處·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가 차례로 선택을 받았다. 출발은 야단스러웠지만, 끝은 보잘것없이 흐지부지된 셈이다. 문 정부는 결국 심판을 받았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2019년 공명지조부터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를 보면 일관된 흐름이 있다. 진영 논리, 편 가르기이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조국 사태'가 최대 변곡점이 아닐까 싶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궤멸의 대상으로 본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어렵다. 자칫 상대를 인정하다간 난리가 난다.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극단의 악순환이다. 극단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증오와 혐오를 유발한다. 김건희 여사를 향해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했던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앞장서서 혐오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 극단의 논리로 무장한 선동가들도 설친다. 유시민, 김어준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선동가들은 '가스라이팅'에 능하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하는 정신적 학대를 뜻하는 단어인데, 요즘 정치인이 허위 정보와 협박을 통해 불특정 추종 세력을 선동하는 행위로 의미가 확대됐다. 가스라이팅이 미국의 사전 출판사인 메리엄 웹스터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을 보면 '편 가르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증오와 혐오 비즈니스도 횡횡하고 있다. 유튜브 정치 채널이 그렇다. 자극적인 선동 방송으로 돈을 끌어모은다. 실제 지난해 유튜브 정치 채널 14곳이 슈퍼챗 등으로 억대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과이불개도 편 가르기의 연장선에 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행위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진영 논리에 갇혀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형국이다. 욕개미창이나 문과수비, 군맹무상도 크게 보면 편 가르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를 극복해야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내년부터 교수신문의 사자성어에 희망이 담겼으면 한다.조진범 논설위원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리스크 전성시대
리스크(Risk)는 위험을 뜻하는 영어 단어지만, '단순한 위험'만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불확실성에 노출'된 정도를 가리킨다. 불확실성의 정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주식투자에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이 대표적이다.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도 커진다는 의미로 투자의 한 방법이다. 경영학이나 경제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리스크가 요즘 일상적으로 쓰인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국내외 상황이 어수선하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전세계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시점을 알기 어렵고, 치솟는 금리가 언제 멈출지도 불안하기만 하다. 불확실성이 점증하면서 리스크라는 단어가 무시로 사용된다. 국내 정치도 온통 안갯속이다. 여야 간 대결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협치'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정쟁의 과정에서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대표적이다. '이재명 리스크'로 줄여 말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대정당이자 국회 강자인 민주당은 양보하고 협치할 여유가 있었지만, 이재명 리스크 때문에 아무것도 양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계륵'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맞불 차원에서 '무능 리스크'를 들고 나왔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민생 무능, 경제 무능이 최대 리스크라고 쏘아붙이고 있다. 가히 리스크 전성시대이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명불허전 vs 도유허명…카타르서 운명 갈린 월드컵 무림 고수들
국내 프로축구에 관심이 없어도 월드컵은 본다는 사람이 많다. 왜? 재미있으니까! 전쟁 같은 축구에 열광한다. 맞다. 축구는 전쟁이다. 총, 대포, 미사일, 전투기가 동원되지 않는 '세계대전'이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나라의 국민 애국심은 끓어오른다. 한 경기, 한 경기 승부가 끝날 때마다 환호와 비탄이 교차한다. '언더도그의 반란'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난리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꺾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승리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월드컵의 또 다른 묘미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스타들의 활약은 축구팬들을 흥분시킨다. '스타 열전'이 따로 없다. 쟁쟁한 스타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의 고전 무협소설 '수호지'를 연상케 한다. 축구계의 스타들이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싸우는 모습이 양산박의 108명 영웅호걸의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부침(浮沈)도 있다.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실력 발휘를 못 하고 고개를 숙이는 선수도 있다. 반전이 가미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월드컵이다. '韓축구 지존'이 된 손흥민폭풍질주·킬패스로 12년 만의 16강 견인해외언론 "고국에서 축구를 초월한 선수"◆명불허전(名不虛傳)'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고수들의 활약은 축구팬들을 행복하게 한다. 일반의 경지를 뛰어넘은 절세신공(絶世神攻)을 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한국 축구를 16강에 올린 주장 손흥민(30·토트넘)이 빠질 수 없다. H조 조별예선 포르투갈과의 최종전 막판에 보여준 손흥민의 '폭풍 질주'와 '킬 패스'는 고수의 품격을 느끼게 했다. 무협지에 나오는 '축지법'을 실제로 보는 듯했다. 손흥민의 '스프린트 찬스'로 한국은 역전 드라마를 썼다. 얼굴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안면 마스크를 쓴 손흥민이 마스크 사이의 공간으로 달려드는 황희찬을 본 것도 어마어마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영국 BBC 방송은 "한국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은 고국에서 축구를 초월한 선수"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에게 손흥민의 존재감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손흥민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한 사람이 조광래 대구FC 사장이다. 조 사장은 자신이 축구대표팀 사령탑이던 2010년 당시 18세이던 손흥민을 국가대표로 호출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손흥민은 무공을 갈고닦아 이제 한국 축구의 '지존'이 됐다. 그동안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07경기에 출전해 35골을 넣었다. '희생하는 원로' 케인골보다 후배 지원…3개 어시스트 1위 질주16강전선 득점 포문 열며 '킬러 본능' 과시손흥민의 토트넘 단짝인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29)은 20대의 나이에 벌써 축구종가의 '원로'로 평가받는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몰려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세 차례나 득점왕에 올랐던 케인은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직접 슛을 쏘기보다 후배들의 득점을 돕는 데 신경을 썼다. 3개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도움 랭킹 1위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신 '문파'의 명예를 위해 희생하는 원로의 모습이다. 무공이 약해진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의 돌풍 세네갈과의 16강전에선 직접 슛을 쏴 골을 기록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득점왕(6골)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펠레 제친 음바페축지법 질주로 5득점 골폭풍만 24세 이전 최다골 신기록'전설'을 뛰어넘은 고수도 등장했다. 프랑스의 간판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24·파리 생제르망)와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35·파리 생제르망)이다. 음바페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5골을 넣으며 득점 단독 1위에 나섰다. 폴란드와의 16강전에선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프랑스는 음바페의 활약에 힘입어 폴란드를 3-1로 꺾고, 대회 2연패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음바페는 '축구황제' 펠레(브라질)의 기록을 넘어섰다. 오는 20일 24번째 생일을 맞는 음바페는 만 24세가 되기 전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9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초고수의 탄생이다. 음바페는 첫 월드컵이던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 4골을 넣었다. 음바페의 강점도 손흥민과 마찬가지로 스피드다. 폴란드전에서 한 차례 찍힌 음바페의 순간 최고 속도는 시속 35㎞였다. '축지법의 절대자' 우사인 볼트와 맞먹는다. 우사인 볼트의 100m 기록은 9.58초로 시속으로 환산하면 36㎞ 정도이다. 물론 우사인 볼트의 기록은 100m 내내 36㎞의 속도로 달린 것이니 단순 비교는 불가하다. '라스트 댄스' 메시월드컵 통산 9득점째아르헨 최다골 도전메시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기록을 제쳤다. 메시는 호주와의 16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월드컵 통산 9득점째를 올렸다. 마라도나의 기록은 8골이다. 메시는 공중볼을 제외하면 공격의 모든 역할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로 평가받는다. '축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카타르대회는 메시에게 마지막 월드컵이다. '라스트 댄스'에 나선 메시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팬들도 외면한 호날두이번엔 등날두·한반두 오명◆도유허명(徒有虛名)'텅 빈 이름'뿐인 선수들도 있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도 그렇다. 카타르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된 호날두는 조별예선까지 전혀 이름값을 못했다. 포르투갈 팬들까지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르투갈의 스포츠 매체 '아볼라'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호날두가 계속 선발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호날두는 '사파의 고수'라는 인상을 준다. 특히 '날강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한국 팬들에게 '인성 파탄자' 취급을 받는다. 2019년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 리그 유벤투스 소속이었던 호날두는 방한 경기에서 '노쇼'를 했다. '45분 출전 약속'을 어기면서 날강두라는 오명을 얻었다. 날강두는 돈을 받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말이 됐다. 카타르 월드컵에선 '등날두' '한반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한국과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은 호날두의 등을 맞고 떨어진 공을 넣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반두는 호날두가 한반도에 도움을 줬다는 의미이다. 한국 팬들은 호날두의 주민등록증까지 만들어줬다. 독일 최다골 뮐러, 2개 대회 연속 무득점'전차군단' 독일의 토마스 뮐러(33·바이에른 뮌헨)도 이름값을 못했다. 뮐러는 현역 선수 중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다. 2010 남아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각각 5골씩 총 10골(역대 공동 8위)을 기록했다. 그게 끝이었다. 2018 러시아대회에서 무득점에 그친 뮐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골맛을 못 봤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뮐러에게 적용된다. 뮐러는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뒤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몰락한 황금세대…러시아월드컵 3위 벨기에 조예선 탈락팀 전체의 명성에 금이 간 나라도 있다. 벨기에가 장본인이다. '황금세대'로 구성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위 벨기에는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씁쓸히 카타르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한 셈이다. 2015년 FIFA 랭킹 1위, 2018 러시아 월드컵 3위의 주역인 벨기에 황금세대의 몰락은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자유성] 월드컵 나비 효과
'나비 효과'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즈가 사용한 용어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초기 사소한 변화가 나중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로 일상에서 흔히 사용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나비 효과'가 회자되고 있다.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16강 진출의 원동력이지만, 우루과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 가나의 선전도 한몫했다. 가나는 16강 진출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끈질긴 수비로 우루과이의 파상 공세를 막아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맺은 우루과이와의 악연이 가나의 투지에 불을 질렀다. 당시 8강에서 연장 후반 가나의 결정적인 헤딩 슛을 우루과이 수아레스가 두 손으로 쳐냈고, 가나는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가나는 승부차기에서 우루과이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수아레스는 카타르 월드컵 기자회견에서 '핸드볼 반칙'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가나 기자의 질문에 "없다"라고 잘라 말해 가나 국민의 공분을 샀다. 남아공에서의 '사건'이 12년의 세월을 넘어 카타르에서 태풍을 일으킨 것이다. 중국도 카타르 월드컵 나비 효과의 사정권에 들었다.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며 시작된 백지 시위가 카타르 월드컵으로 더욱 확산됐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실제 많은 중국인은 TV에서 본 월드컵 관중석의 '노 마스크'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봉쇄와 통제에 저항하는 백지 시위는 중국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놀란 중국 정부는 결국 방역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언더도그의 반란
사우디아라비아가 23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카타르 월드컵 C조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은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살만 국왕에게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르헨티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은 51위이고, 아르헨티나는 3위이다. 더욱이 아르헨티나에는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가 있다. 그런 아르헨티나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겼다. 카타르 월드컵의 최대 이변이자, '언더도그의 반란'이다. 언더도그(Under dog)는 상대적 약자를 뜻한다. 투견장에서 아래에 깔린 개를 부른 데서 비롯됐다. 언더도그의 반란은 또 일어났다. FIFA 랭킹 24위인 일본이 11위인 '전차군단' 독일을 2-1로 눌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전통의 축구 강호를 누르면서 카타르 월드컵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아시아 돌풍의 진원지가 된 셈이다. 아시아 축구는 월드컵에서 언제나 언더도그 신세이다. 유럽과 남미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 일쑤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카타르와 이란이 패한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언더도그의 반란은 늘 존재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스페인, 이탈리아를 차례로 누르며 4강 신화를 썼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에 2-0으로 승리하기도 했다. 공이 둥글다는 것을 말해준다. 스포츠의 묘미다. 강자가 늘 이기는 게임은 재미가 없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상사도 그렇다. 조진범 논설위원
[월요칼럼] 문명의 계단을 내려가는 증오의 말 '유감'
"집단의 일부일 때 개인은 문명의 계단에서 몇 단계를 내려간다. 혼자 있으면 교양 있는 개인일지 모르지만 집단으로 있으면 즉흥성, 폭력성, 맹렬함 그리고 열정과 영웅주의 같은 원초적 존재의 특성을 갖게 된다." 프랑스 사상가인 구스타브 르 봉의 말이다. 1895년 출간한 '군중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 지적했다. 놀랍다. 무려 127년의 세월을 넘어 대한민국의 현실에 적용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진영 논리가 판을 치면서 폭력적인 언어 정치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상대를 증오하는 언어가 예사로 구사된다. 심지어 종교인까지 가세했다. 대한성공회 소속 신부가 대통령 전용기 추락을 염원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라는 탄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얼마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에서 나온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말도 귀를 의심케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 든 회피하고자 발악하고 있다. 나 혼자 좀 살아보고자 추태를 부리고 있다"고 소리쳤다. "공감, 부끄러움, 수치심, 이런 감정들은 인간이 갖고 태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이런 감정들은 어떻게 생기느냐. 부모로부터 배운다. 그동안 보고 배우지 못하신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다"고도 했다. 명백한 인격 모독이다. 군중심리학에 따르면 강 의원은 집단 논리에 매몰돼 문명의 계단을 전혀 밟지 못한 셈이다. 누가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강 의원은 여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예결위 진행에 차질이 빚어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의 발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이다.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 논란'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를 향해 "쇼윈도 영부인"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쏘아붙였다.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라는 책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의 진영 대결을 정확하게 분석한 문장이다. '우리 대 저들'의 관점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다. 제거 대상으로 볼 뿐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정권퇴진 운동에 나서는 것도 윤석열 정부의 5년을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당분간 진영 논리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염치(廉恥)를 모르는 정치인들이 태반이다. 정치는 말로 한다. 말의 바탕은 생각이다. 집단 논리에 빠지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염치도 모른다. 강선우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영남일보 칼럼 필진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한 칼럼에서 불경 법구경의 '그 마음의 악이 생겨 도리어 제 몸을 부수는 것은 마치 저 쇠에서 녹이 생겨 그 몸을 파먹는 일과도 같네'라는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다. 남을 미워하면 결국 자기 스스로가 미움으로 얼룩져 피해를 받게 된다는 말인데, 강 의원에게 해당된다. 강 의원뿐 아니라 증오의 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은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으로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조진범 논설위원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신진서 공포증'
지난 3월 프로바둑 기사인 신진서 9단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중·일 바둑 삼국지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4연승으로 한국을 정상에 올려놓은 직후였다. 당시 신진서는 "중국 기사와 대국할 때 모든 걸 쏟아붓기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성적이 잘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신 9단은 세계 정상으로 발돋움하기 전 중국 기사에게 종종 수모를 당했다. 한때 세계랭킹 1위였던 커제 9단이 심했다. 신 9단은 커제 9단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이겨서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요즘 중국 기사들에게 '신진서 공포증'이 퍼지고 있다. 신 9단을 만나면 맥을 못 춘다. 성적이 말해준다. 신 9단은 지난 13일 벌어진 LG배 8강전에서 중국의 미위팅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신 9단은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미위팅의 대마를 잡아 항복을 받아냈다. 신 9단은 2020년 11월 이후 2년 동안 세계대회에서 중국 기사를 상대로 19연승을 기록했다. 중국 바둑 입장에선 '신진서 포비아'라고 부를 만하다. 신 9단의 기세를 보면 중국 축구의 '공한증(恐韓症)'을 연상케 한다. 공한증은 중국과 한국이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한국이 이기면서 중국인들이 한국 축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나라 바둑 팬들은 신 9단이 일본 기사보다 중국 기사에 이길 때 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중국의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왜곡에 대해 반격하는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중국을 넘어 세계를 평정하는 신 9단의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말의 실패는 신뢰의 위기
윤석열 정부가 위기를 맞았다.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촉발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답지 않은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 장관은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긴급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다고 해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적 재앙에 대처하는 주무장관으로서 한심한 발언이었다. 참사 발생 전 다급한 112신고를 경찰이 묵살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돼 이 장관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 한덕수 총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농담을 하거나 웃음을 보여 비판을 샀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에 맞는 말을 해야 정치가 잘 된다는 뜻인데,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다. 말의 실패는 신뢰의 실패이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실언이 이어진다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진영 논리에 입각해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재난의 정치화'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 참사로 만들려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신중한 언행으로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가족과 국민의 슬픔에 공감하고, 국민 안전을 위해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표현이 또다시 등장할까 우려스럽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윤창훈 영진사이버대 부동산재테크학과장 "값 떨어졌다고 집 사겠다는 건 위험…거래량 변화 계속 주시해야"
최근 서울에 '반값 아파트'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15억원에 거래됐던 마포구의 전용면적 84㎡(34평)의 한 아파트가 8억원에 팔렸다는 뉴스가 나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포구는 용산구, 성동구와 묶여 '마용성'으로 불리며 서울 부동산 업계에서 잘 나가는 지역이다. 부동산 분위기가 얼마나 차가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실제 집값 폭락에 대한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파트 공사 현장이 많은 대구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대구의 미분양 아파트 물량도 쌓이고 있다. 도대체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집을 팔아야 하나.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은 언제 사야 하나. 영진사이버대 부동산재테크학과장인 윤창훈(54) 교수를 만나 부동산 시장을 살펴봤다. 영진사이버대 부동산재테크학과는 부동산 개발, 투자, 중개, 관리 등 부동산 전반에 대한 실용적인 학문을 다룬다. 계명대 도시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윤 교수는 12년의 공직 생활을 거쳐 2007년부터 영진사이버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배출한 제자가 2천명이 넘는다. 윤 교수의 부동산 시장 분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적 의견이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용으로 활용해 달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통상 부동산 시장 변동 주기 3~4년이나 6~7년으로 보는데 현재 분위기라면 내년 하반기 이후 매수 타이밍 올 가능성 정부도 이때까지 침체 지속땐 부양책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 대구 향후 2년 5만세대 입주…마피 붙더라도 물량 소화될 듯" ▶현재 대구의 아파트 가격 수준은 어떤가."올해 9월 기준으로 1년6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보면 된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를 보면 지난해 2월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95.6을 기록했는데 9월 현재 94.6이다. 지난해 10월 100.8로 정점을 찍고 11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가격 하락 폭으로는 고점 대비 평균 30% 정도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아파트 실거래가 조회 부동산 앱 '호갱노노'에 따르면 대구의 아파트 가격은 고점 대비 20~30%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아파트 가격이 왜 이렇게 떨어졌나."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보면 실수요, 유효 수요의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즉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온다. 단순히 주택을 사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으면 안 되고, 능력이 있어야 실수요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주택 가격은 너무 오르고, 실질적으로 소득은 오르지 않는 상황이 되다 보니 시장에 영향을 주는 수요는 더 많이 떨어졌다. 반면 공급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수요는 떨어지는데 공급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의 저항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의 영향도 있지 않나."당연히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 부동산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부동산 가격을 분모, 수익(임금, 임대 소득 등)을 분자로 하면 수익률이 나오는데, 가격이 올라가고 수익이 고정되면 수익률이 떨어진다. 수익률이 떨어지는데 금리가 올라가면 결국 부동산에 몰릴 것으로 기대하는 돈이 다른 것을 선택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실 가장 안전한 투자처는 부동산이 아니라 은행이다. 부동산 수익률이 떨어지면 투자자로서의 수요도 빠져나가게 된다."▶부동산 하락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나."정확하게 진단하기는 불가능하다. 통상 부동산 주기를 3~4년, 6~7년으로 본다. 현재의 분위기라면 3~4년 주기를 기본적으로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다만 내년 하반기를 넘어서면 급락 폭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내년 하반기에도 계속 침체로 가면 시장 경제에 굉장히 타격을 준다. 정부가 부양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현재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제자들은 좀 더 비관적이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하거나 안정화되는 시점을 6~7년 이후로 얘기하는 제자들이 많다. 금리가 너무 높은 데다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공급 물량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대구에 아파트 공사 현장이 너무 많다. 아파트 공급 물량이 많아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입주 예정 물량이 너무 많다. 내년에 3만가구가 넘는다. 소규모 주택 재건축이나, 나홀로 아파트까지 감안하면 더 많을 것이다. 2024년에도 2만가구에 이른다. 2년 동안 5만채의 아파트가 공급된다. 지금도 미분양이 쌓이고 있다. 입주 후 미분양이 발생하면 2007년 경험했듯이 '마이너스피'가 붙게 된다.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는 할인 분양 현상이 생기게 된다. 지금은 수면 밑에서 '간 보는' 수준인데 물량 폭탄이 떨어지면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마이너스피가 붙더라도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까."제가 보기에는 소화가 될 것 같다. 시간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금리나 정부의 정책 변화도 생길 수 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그냥 그대로 놔두기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잘못됐을 경우 회복을 못 하니까 정책의 강약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건설사가 부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 대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도 멈춰질 가능성이 있지 않나."가능성은 있다. 건설사가 부도나면 입주 기간이 뒤로 밀리게 되고, 분양받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실소유자는 자금이나 일상생활에 쓰이는 비용을 입주 예정일에 맞춰놓는데 이게 깨져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대책을 강구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다. 마음고생도 심하다."▶집값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 같은데, 지금 집을 팔아야 하나. "과연 원하는 가격에 팔 수 있을까. 지금 집을 팔려는 사람들은 이자 부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제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래량이 거의 절벽이다. 거래가 안 되니까 상당히 금액을 낮추는 급매라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실수요자 입장에서 언제 집을 사야 하나."어떤 시점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내년 말쯤 세계 시장의 경기나 금리 변동이 이뤄지면 한번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거래량에 대한 데이터를 검토할 필요도 있다. 단순히 가격이 떨어졌다고 집을 사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거래량이 서서히 올라가면 고려해 볼 수 있다. 거래량이 올라간다는 것은 결국 시장에 수요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거래량 데이터값을 관심 있게 봐야 한다. 실수요자 중심의 차별화된 정부 정책이 나올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윤창훈 영진사이버대 부동산재테크학과장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부동산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수성못
대구 수성못은 일제 시대인 1925년 축조됐다. 당초 농업용 저수지로 관리됐지만, 1980년대부터 공원으로 개발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구 시민의 나들이 코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다.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국내 대표 관광지 100곳에 선정됐다. '사시사철 매력 팡팡'이라는 타이틀로 수성못을 소개하고 있다. 수성못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영화 제목도 '수성못'이다. 대구 청년들의 현실을 다룬 영화로, 유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대구 도심의 대표적 핫플레이스인 수성못이 법정 다툼에 휘말렸다. 수성못의 소유권을 둘러싼 농어촌공사와 대구시, 수성구청의 갈등이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 농어촌공사는 대구시와 수성구청을 상대로 수성못 일대 부지를 무단 점유했다며 토지 사용료를 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농어촌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시와 수성구청이 불복해 항소하면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수성못 소유권이 대구시로 무상 양여되도록 관련 법 개정에 나서 달라"고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수성못을 대구시와 수성구로 이관하라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지난 18일 대구 청년들은 수성못에서 집회를 열고 지방자치단체가 수성못을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성못은 저수지의 기능을 상실했다.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도심의 문화 관광지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농어촌공사가 관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구 청년들의 목소리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수성못을 대구시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월요칼럼] 위험한 정치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연일 나오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전례 없는 도발을 감행했다. 대놓고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갈 것인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게 불확실하다.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정치다. '진영'과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견고해졌다. '초당적'이라는 단어도 사라졌다. 당장 북한의 도발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북한이 무려 560발의 포를 쏟아부었는데도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 국민만 불안해하는 것 같다. 북한의 도발 수준을 보면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처럼 '안보 비상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떠 "정부 여당이 민생보다는 내부 결집용 안보 포퓰리즘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친일국방론'까지 제기했다. 집권세력을 친일 프레임에 가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태도다. 안타깝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이 민족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을 망각한 듯하다. 민족에 방점을 두다 보니 감성적 언어를 사용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국가보다 진영에 집착한다. 진영 논리에 따르다 보니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없다.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일으킨 '역사 논쟁'도 아쉽다. 정 의원은 최근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의 친일국방론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인데, '식민사관'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의원이 조금 자세하게 얘기했다면 불필요한 역사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에서 썩어 문드러진 것'은 '조선 전체'가 아니라 '조선 왕실과 고위직 양반'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의인들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게 실수였다.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일합방이 전쟁을 통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 민주당도 친일 공세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스스로 한번 물어볼 필요도 있다. 정권을 잡았을 때 전시 상황이 도래한다면 일본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존재하는 어떤 것도 외부의 것에 의해서 망하는 것은 없다. 스스로 망하는 길을 가다가 외부가 자신을 망하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치가 그런 꼴 아닌가. 서애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 새삼 눈길이 간다. 징비록은 선조 25년(1592)부터 31년(1598)까지 7년 동안에 걸친 임진왜란에 대하여 적은 책이다. 임진왜란의 조짐은 한참 전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586년 일본의 국왕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온 야스히로는 조선의 예조판서가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후추를 뿌렸고, 사람들이 그것을 줍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야스히로는 "너희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미 기강이 무너졌으니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다. 국권이 훼손된다. 지금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정치다.조진범 논설위원조진범 논설위원
[자유성] 뜨거운 법사위
국회 법제사법위가 뜨겁다. 여야 의원들이 만날 때마다 치고받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부를 흠집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때론 막무가내로 윽박지르다 보니 '헛발질'을 한다. 최강욱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한국3M'을 한 장관의 딸 이름으로 착각했고,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은 '이모 교수'를 한 장관 딸의 '이모'라고 잘못 해석해 비아냥을 샀다. 윤석열 정부 첫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검수완박, 김건희 특별법, 감사원 감사 등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앙숙'인 한 장관도 집중 공격하고 있다. 한 장관은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에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의 법무부 측 소송대리인 교체 건을 둘러싼 공방이 그렇다. 김 의원이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한 장관은 "일 잘한다고 의원실에서 가족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게 이해충돌이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법무부 측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한 이옥형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는 이상갑 전 법무부 법무실장의 친동생이다. 법사위가 정쟁의 무대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참석한 법사위는 '난리'였다. 추 전 장관은 법사위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소설 쓰고 있네" 등의 발언으로 반발을 샀다. 추 전 장관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에 당시 민주당 소속 장성호 법사위원장마저 "정도껏 하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정쟁(政爭)이 일상화되고 정치이념이 지배하는 곳이 법사위다. 극한대립의 대한민국 정치를 축약해 놓은 듯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의 피플] 자유여행가 안용모 "용기를 갖고 돌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떠나라"
여행 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코 끝을 스치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모두가 꿈꾸지만, 선뜻 가방을 꾸리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나중에'라고 스스로를 주저앉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여행가는 다르다. 가고 싶은 세계에 '과감히' 발을 내디딘다. 봉화 출신의 안용모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건축공학과)가 그렇다. 100여 개 나라의 600여 개 도시를 다녔다. 전세계를 누볐다.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했고, 남극과 북극도 밟았다. 안 교수는 대구도시철도건설본부장을 역임했다. 대구도시철도 역사의 산증인이다. 40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모노레일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줄기차게 세계를 여행했다. 여행사 사장이나 여행 전문가보다 더 많이 다녀 '자유여행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안 교수는 '여행을 일처럼, 일을 여행처럼'을 모토로 삼는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기록한다. 안 교수가 지금까지 작성한 여행 수첩만 150권에 이른다. 여행 수첩에 시간대별로 여행의 기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여행을 일처럼'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글씨체도 정자(正字)로 또박또박 정성을 다했다. 안 교수는 여행 전도사이기도 하다. 최근 '떠날 자유! 머무를 용기! 나만의 여행 방법'을 주제로 대구시니어아카데미 평생대학과정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지난 28일 가창에 있는 카페 겸 갤러리 '아트도서관'에서 안 교수를 만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 언제부터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초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책에서 본 파란 눈, 노란 머리가 너무 신기했다. '이런 사람을 좀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김찬삼 교수가 쓴 10권짜리 세계여행을 읽고 '세계여행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안 교수가 처음 해외여행을 떠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인 197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기 전이었다. 당시 펜팔로 사귄 영국인의 도움을 받아 한 달 정도 영국을 다녀왔다. 안 교수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에서 2박 3일 안보교육을 받고 떠났다. 영국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 홍콩, 인도 뭄바이, 중동 바레인을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김포에서 런던까지 가는 데 36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영국 북서부 해안도시 워킹턴에서 포항제철을 건설한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 흉상도 봤다. 안 교수는 "영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거의 모르던 시절이라 정말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 공직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공직 생활을 하면서 돈의 가치보다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공직에 있을 때 여행에 관심을 두다 보니 행정안전부나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공모에 늘 1등으로 당첨됐다. 국제세미나나 학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많이 보고 느껴야 아이디어도 나오고, 창의적인 행정도 할 수 있다."▶ 여행의 가치, 여행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여행은 위로와 휴식, 자유를 준다. 환경, 역사, 언어가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서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큰 힘과 배움도 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으면 여행을 했을 때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여행은 행복의 원천이다. 일상에 쫓겨 느끼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고, 꽃피우지 못했던 꿈을 꾸면서 삶을 새로 계획하게 된다. 삶의 마법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면서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영어를 못해서라는 이유를 대는데, 여행을 안 가기 위한 핑곗거리를 찾는 것이다. 시간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돈도 국내에서 생활하는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영어는 자신감의 문제이다. 나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 100개 정도 단어만 할 수 있다. 동물하고도 눈을 맞추면 의사소통이 되는데, 사람끼리 만나 소통이 안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그 나라에 돈을 쓰러 가는 건데 시간이 다소 지체될 수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여행 준비는 어떻게 하나."패키지 여행은 하지 않는다. 자유여행을 하면 여행을 세 번 하는 것이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게 첫번째 여행이고, 현지에서 두번째 여행을 한다. 세번째 여행은 다녀와서 정리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여행 정보도 공유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 '동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동 거리와 이동 시 교통편이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호텔보다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에 머무른다. 그런 곳을 가야 여행자들끼리 만나 정보도 주고 받고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비용도 저렴하고 예약도 수월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한 자리'는 있기 마련이라, 예약을 안 해도 별 문제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한 자리는 쉽게 티켓을 구할 수 있다." ▶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지 않나."한 달 이상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강도를 한 두 번씩 만난다. 강도가 원하는 것은 돈이다. 나름대로 준비를 해 간다. 20달러씩를 바지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안동 하회탈 펜던트도 스무개 정도 갖고 나간다. 새벽에 모스크바 기차역을 나가다 강도를 만났다.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를 뒤져 '지금 이것밖에 없다'며 20달러를 건넨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던 안동 하회탈 펜던트를 준다.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강도를 물러나게 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동유럽의 야간열차에서도 강도를 만났는데, 그런 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여행 가방은 어떻게 꾸리나."배낭을 반만 채워서 나간다. 여행은 착한 여행이 돼야 한다. 여행의 끝은 결국 사람이다. 절대 한국 음식을 가져가지 않는다. 철저히 현지식으로 먹는다. 현지에 가서 팔아주고 먹어줘야, 그 나라 사람들도 즐겁고 나도 즐겁다. 현지인과의 약속도 지켜야 한다. 방글라데시를 처음 갔을 때 한국에서 근로자로 3년 정도 생활한 현지 청년을 만났다. 청년이 다음 해 결혼식을 하는데 주례를 부탁하더라. 주례는 곤란하고 참석하겠다고 했고, 약속을 지켰다. 우리나라의 멋진 한복과 태극기, 방글라데시 국기를 들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굉장히 감격해 했다. 나라별로 맞춤형 기념품을 들고 나가기도 한다. 준비를 해가면 여행이 풍부해진다."▶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나."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혼자 다니는 게 아니다. 여행지에 가면 유적, 아름다운 자연이 친구이다. 외롭다면 외로움까지 친구이다. 외로울 겨를이 없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기념품을 구입하나."컵을 하나씩 사 온다. 다음 여행 갈 때까지 그 컵에 커피를 타 마신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여행지가 기억이 난다. 작은 기차 모형을 살 때도 있다." ▶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용기를 가지고 돌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떠나라고 얘기하고 싶다. 안전이니, 영어 울렁증 같은 것들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행복하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했다. 여행도 가면 갈수록 가야 될 때와 가봐야 할 곳이 많아진다." 안 교수는 오는 11월 한 달 일정으로 이란을 다녀올 예정이다. /논설위원'자유여행가' 안용모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여행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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