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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부국장 |
부버의 철학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절절히 다가온다. 진영 대결에 따른 극심한 사회 분열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쩌면 전 세계적 현상인 듯하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증오가 판을 치고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가 사회 분열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다.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다"라고 했다. 또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와 관련해 안보 태세를 강조한 말이지만,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쟁 중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대통령은 무슨 의도로 이런 발언을 했을까. 대통령이 지적한 '반국가세력'은 어느 집단인가. 반국가세력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념 대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 비전, 국민 통합, 경제 및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야권의 반발은 당연하다. "자신이 곧 국가라는 사고에 취해 있지 않고는 국민을 일컬어 함부로 반국가세력이라고 할 수 없다. 시대 퇴행적이며, 반헌법적 발언이다"라고 했다. 계엄령 준비 의혹까지 제기했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의 보수주의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강력한 통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한다. 특정 집단을 반국가세력을 규정하면, 배제하게 된다. 배제한다는 것은 물리쳐서 제외 시킨다는 의미다. 상대를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포용이나 연대가 끼어들 틈이 없다. 대화도 어렵다. 부버의 말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보수세력 궤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제의 폭력성이 부각됐다. 한국 정치는 진영 논리, 이념의 양극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만날 예정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에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대화는 언어나 개념을 지나치게 믿는 차보다, 덜 믿는 자에게 열려 있다. 언어 자체보다 상대방에게 열려 있는 태도가 소통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상대를 인정해야 열린 태도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디 정치만 그렇겠는가. 편집국 부국장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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