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s픽] “문화엔 반하고, 언어엔 막히고”…외국인 100명이 본 경주 관광의 두 얼굴

  • 서민지·박지현·방정원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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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2 10:19  |  수정 2025-08-03 17:46  |  발행일 2025-08-03
APEC 90일 앞둔 경주, 준비는 어디까지 왔나
경주시내서 외국인 관광객 100명에게 물어보니
지난달 30일 경주 천마총을 찾은 벨기에 관광객들이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응하고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지난달 30일 경주 천마총을 찾은 벨기에 관광객들이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응하고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석달 앞으로 다가왔다. 외국인 맞이 준비가 한창 분주할 때다. 외국인의 눈에 경주의 모습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대구경북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 경주의 현주소를 가늠하기 위해, 영남일보는 지난달 30일 대릉원, 천마총, 황리단길 등 경주 시내 주요 관광지에서 외국인 관광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흔히 '아시아권 관광객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경주엔 영국·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에서 온 배낭여행객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적잖았다. '세계 속 경주'라는 브랜드의 확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한편으론 경주가 가진 장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풀어야 할 숙제도 목도할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경주 대릉원 일대에서 만난 안도라 출신 관광객이 태극기가 그려진 모자를 쓴 채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지난달 30일 경주 대릉원 일대에서 만난 안도라 출신 관광객이 태극기가 그려진 모자를 쓴 채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경주의 힘은 역사와 문화"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 요소'로 절반이 넘는 52명이 '역사와 문화'를 선택했다. 천마총과 대릉원, 불국사, 동궁과 월지 등 신라 유적이 외국인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아에서 온 아리안나(33)씨와 로베타(33)씨는 "'음식'이라는 선택지와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경주라서 '역사와 문화'를 골랐다"며 "유럽과 한국 문화는 크게 다르다.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문화유산을 봐서 아주 이채로웠다"고 말했다.


포르투갈에서 온 카타리나(45)와 에마(13) 모녀는 "천마총과 불국사, 한옥마을, '브리지 투어'(Bridge Tour) 등 볼거리가 많았다"고 했다. 외국인들에겐 동궁과 월지에서 출발해 월정교까지 걷는 야경 산책 코스가 브리지 투어로 인식된다.경주의 고즈넉한 야경 분위기와 조명 연출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


미국 미시간주에서 온 한 70대 관광객은 "경주박물관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했다. 불국사와 석굴암 등 사찰을 방문한 관광객도 많았다.


'음식'을 선택한 관광객은 25명이었다. 카페 앞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 헤수스(42)씨와 이사벨(44)씨는 "한국 라면과 해물파전이 아주 맛있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프랑스에서 가족여행을 온 클로이(47)씨와 딸 이든(16)·에린(11)양은 "비빔밥과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이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만인·일본인들도 주로 음식 또는 역사와 문화에 한 표씩 행사했다. '자연'을 꼽은 관광객은 9명이다. 여름철 대릉원의 푸르름과 불국사를 둘러싼 산세가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K-콘텐츠'와 '쇼핑'은 각각 7표씩 얻었다. 벨기에 출신 프레드릭(45)씨는 "딸이 K팝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팬이다"라고 했다. 황리단길 인형뽑기점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인형뽑기점이나 소품숍을 구경하는 게 흥미롭다"고 했다. "경주에 셀프 사진관이 많은 것 색다르게 다가온다.신기하다"고 한 독일인도 만날 수 있었다.


20~30대 관광객들은 드럭스토어(생활용품 소매점)와 로드숍을 '여행 첫 일정'으로 많이 손꼽았다. 멕시코에서 온 20대 여성은 "올리브영에서의 화장품 쇼핑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라며 "K-코스메틱은 언제나 흥미롭고, 새로운 제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남성 관광객들도 쇼핑에 큰 만족감을 표했다. 벨기에에서 온 30대 남성은 "남성용 화장품 구매를 위해 올리브영에 갔는데 제품 종류도 다양하고 매장 동선도 편했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경주 황리단길의 한 인형뽑기방을 찾은 포르투갈인 페데리코(왼)씨와 이탈리아인 로베르타(오)씨가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지난달 30일 경주 황리단길의 한 인형뽑기방을 찾은 포르투갈인 페데리코(왼)씨와 이탈리아인 로베르타(오)씨가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대만보다 더워…메뉴판에 영어가 없어요"


반면, '불편했던 점'을 묻자, 날씨(43명)·언어장벽(18명)·교통(9명)·관광정보 부족(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없음'은 23명이었다. 이날 경주지역 무더위 탓에 '날씨'는 단연 압도적인 불편 요인으로 꼽혔다. 이탈리아인 로베르타씨는 "이 정도로 더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가 대만보다도 훨씬 더 덥다"는 대만 관광객들의 반응도 있었다. 관광 인프라와 언어 문제를 불편해 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포르투갈인 페데리코(48)씨와 이탈리아인 로베르타(38)씨는 "관광정보가 부족하다"며 "유적지의 사소한 사항들이 궁금할 때가 많다. 가령 이 구조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 탑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이다. 그런데 주건축물을 제외한 다른 사소한 것들에는 별도 안내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고 했다. 이어 "하나하나 안내판을 만들기 어렵다면 QR코드를 마련해 상세 설명으로 연결될 수 있게끔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프랑스인 클로이씨 모녀는 "버스를 타려 했는데 현금을 받지 않아 호텔까지 30분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뭘 물어보면 대답은 하지만 우리는 당최 알아들을 수 가 없다. 소통이 많이 어렵다"며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프랑스에서 경주로 가족여행을 온 클로이씨와 딸 이든, 에린양이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양수빈 인턴

지난달 30일 프랑스에서 경주로 가족여행을 온 클로이씨와 딸 이든, 에린양이 영남일보 설문조사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양수빈 인턴

포르투갈 출신 카타리나씨 가족은 "식당에서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보면 모두 한국어다. 사진이 없는 경우에는 메뉴를 선택하기 너무 어렵다"며 "외국인 관광객을 존중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벨기에에서 온 클로이(24)씨와 제스퍼(23)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영어간판을 찾기 어려워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또 대만 출신 파벨(39)씨와 파오위(49)씨는 "한국에선 구글맵이 많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 불편하다"며 "불국사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분명 5분 뒤 버스가 도착한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배차가 취소된 버스였다"고 토로했다.


7살 딸 루시와 함께 온 벨기에인 어머니는 "경주월드를 가기 위해 종일권을 미리 끊었지만, 더 저렴한 오후권(4시부터 입장)을 나중에 발견했다"며 "표를 바꾸려고 환불을 요청하자 '관광객은 환불이 어렵다'고 해 많이 당황했다"고 전했다.


그래도 경주여행 만족도를 묻는 질문엔 59명이 '매우 만족'을, 38명이 '만족'을 선택했다. '보통'은 3명이었고, 불만족 답변은 없었다. 관광지 정서를 배려한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경주 관광 설문조사 최종 결과판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경주 관광 설문조사 최종 결과판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 경주는 한국 관광 '필수 코스'


경주에서 만나본 유럽인 상당수는 한국 전역을 여행중이었다. 주로 경주와 서울, 부산, 제주 등이 '필수 코스'로 꼽혔다. 이밖에 속초, 여수, 전주 등을 찾았거나 찾을 예정이라는 관광객도 있었다. 일부는 휴가를 맞아 한국과 일본을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대만인들은 주로 경주와 대구, 부산 등 경상권을 묶어 패키지 관광을 했다.


2주 간 한국여행을 하기 위해 왔다는 40대 스페인 남성은 '한국만 여행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배시시 웃었다. 슬로바키아 출신 50대 여성 관광객은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매년 휴가 때마다 일본, 태국, 대만 등지를 다녀왔다. 이번 휴가엔 한국을 택했다"고 했다.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알고 있는 외국인은 드물었다. "모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별도 홍보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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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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