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뒷모습
연일 폭염경보가 이어지는 날씨다 보니 되도록 얇고 가벼운 옷을 입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덕분에 걱정거리가 하나 보태졌다. 말로만 다이어트를 외다가 실패하고, 날이 갈수록 두루뭉술해지는 몸매가 무방비로 드러나는 게 두려운 것이다. 앞모습은 간신히 가린다고 해도, 뒷모습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을 어찌하나.
오래된 책 중에 ‘뒷모습’이라는 책을 좋아해서 가끔 꺼내본다. 사진집이지만 짧은 에세이가 더해져서 오래 보고 천천히 생각하기 좋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가 함께 만들었다. 책의 오른쪽 면에는 사진이, 왼쪽 면에는 짧은 글이 실린 단순한 모양새다.
책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의 다양한 뒷모습이 담겨 있다. 아기를 등에 업은 엄마의 책임감 가득한 ‘듯한’ 모습, 벤치에 기대앉은 중년남자의 지친 ‘듯한’ 모습, 서로에게 푹 빠진 ‘듯한’ 젊은 남녀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 등이 어둑어둑한 흑백사진으로 보인다. 정지된 한 장의 사진으로 더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고, 더구나 뒷모습이기 때문에 ‘~듯하다’며 상상으로밖에 다가갈 수 없다.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그래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이야 과학의 힘으로 원색사진이나 영상의 선명도가 눈이 시릴 정도지만, 오히려 빛바랜 느낌의 흑백사진에 마음이 기운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뒤쪽이 진실이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누군가 의도치 않게 보여준 뒷모습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시각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뒷모습이 더욱 정직하다는 부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 같다. 얼굴에는 눈과 입이 있어 표정을 꾸밀 수 있고, 말도 윤기나게 장식할 수 있다. 태도에 따라 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고, 근엄하게 보이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뒷모습이 말보다 더 웅변적일 수 있으니, 삶의 앞면만 보고 섣불리 판단했던 습관을 이제는 좀 밀쳐놓고 싶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얇아서 몸짓이 더욱 잘 드러나는 이 계절에 ‘뒷모습’이 전하는 ‘말 아닌 말’에 귀 기울이고 싶다.
김수정
201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