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인물·유품展 기획한 소남 이일우 증손 이재일씨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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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9  |  수정 2017-05-19 07:44  |  발행일 2017-05-19 제21면
“李庄家 고택 청소년 교육·관광코스 만들어야”
[이 사람] 인물·유품展 기획한 소남 이일우 증손 이재일씨
소남 이일우 선생의 증손자인 이재일 <주>서남 대표가 ‘대구를 이끈 이장가(李庄家) 사람들’ 전시가 열리고 있는 KK본사 1층 갤러리 ‘慶’에서 미소짓고 있다.
[이 사람] 인물·유품展 기획한 소남 이일우 증손 이재일씨

“어느 누군가 있어서 건곤을 초탈하고 세속의 명리를 일축하여 막막한 대지에 일신을 붙이고 유유한 우주에 일심을 의탁하여 자기를 바리고 공도를 봉하며 천하창생의 안위를 위하여 한 차례 쉬는 것도 버린다면 생의 극치인가 생각한다.”

어법이 익숙하지 않은 이 국한문혼용체는 1930년 봄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이 중국으로 망명해 쓴 ‘자서(自序)’의 한 부분이다. 그는 자서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몸을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생의 극치’로 표현했다. 이 장군의 호방한 기상과 대인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이 장군을 비롯, 상화·상백·상오 형제와 이들의 백부인 소남 이일우, 소남의 장남인 상악과 며느리 이명득을 재조명하는 인물·유품전시회 ‘대구를 이끈 이장가(李庄家) 사람들’이 오는 6월30일까지 대구시 국채보상로 KK본사 1층 갤러리 ‘慶(경)’에서 열리고 있다.

소남 이일우 선생과 아들 상악
일제 눈 피해 독립운동가 지원
이상정 장군, 상화 문학에 영향
“한 가문 족보 아닌 대구 근대사”
6월30일까지 인물·유품전시회

전시장에는 이장가의 가계도와 이상정 장군의 단도, 가죽가방, 옷을 비롯해 중국으로 망명해 쓴 일기 자서(自序), 표박기, 편지, 가족사진 등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표박기에는 이 장군이 고향 대구와 가족 친지를 잊지 못하는 정을 절절하게 한시로 표현했다. 이밖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이 장군이 김구 등 임정요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준비한 이재일 <주>서남 대표(62)를 최근 만났다. 그는 소남의 증손자이자 박윤경 KK<주> 회장의 남편이기도 하다.

“KK가 올해 창립 90주년입니다. 1927년 대구오일상회로 출발해 49년 경북광유로, 다시 2015년 KK로 사명을 바꾸고 본사 1층에 갤러리경을 오픈했습니다. KK는 대구지방국세청 납세 1호를 기록할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입니다. 저희 가문(경주이씨 금남공파) 설립 149년을 맞아 KK와 함께 전시회를 갖게 됐습니다. 금남은 고조부인 이동진 선생의 호로 ‘이장가’는 그 후손 여덟 집안을 말합니다.”

이장가는 대구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이다. 이장가를 연 금남을 바롯해 두 아들 일우·시우와 ‘상(相)’자 돌림 후손은 현재 종중 묘소(대구 달서구 대곡동 산153-3)에 잠들어 있다. 이곳엔 △기제를 폐지하고 1년에 봄·가을 두 번만 차례를 지낼 것 △제수는 맑은 물과 대추, 밤, 제철과일 3품, 어육양포로만 할 것 △제기는 죽기(竹器)로만 할 것 등을 밝힌 ‘절목비’가 있는데 이장가의 근검절약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고조부(금남)께선 경산에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고령에서 사채업을 해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는 낭설입니다. 1923년 수해와 24년 가뭄, 28년 흉년에 곡식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했습니다. 청도의 소작인들이 증·고조부의 송덕비까지 세웠지요. 증조부(소남)께선 상악·상무·상간·상길·상성 등 5남1녀를 뒀습니다. 상악은 소남과 함께 농경자산을 산업자산으로 전환시켜 대구 근대산업의 기틀을 닦은 분입니다. 만경관과 대구 최초의 염직공장인 동양염직공장을 건립했으며, 경상농공은행과 언론사 설립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지금의 서남빌딩 자리에 조선양조장합자회사를 세웠는데, 조선양조를 삼성 이병철 회장에 임대했지요. 그 조선양조가 삼성그룹의 모태가 됩니다.”

이 대표는 소남과 관련, 세간에 잘못 알려진 정보에 대해 해명했다.

“소남께서 별세하신 해가 1936년이고 소남의 손자(열희)와 친일파 박중양의 손녀가 결혼한 해는 6·25전쟁이 끝난 54년이에요. 소남이 돌아가시고 18년이 지난 뒤 두 가문이 혼맥을 맺었는데 소남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소남은 알다시피 대구 최초의 사립도서관인 우현서루를 설립해 박은식·이동휘·김지섭 등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했습니다. 소남이 3·1운동 후 친일단체인 자제단에 가입했다고 하지만 당시 대구의 거부로서 어쩔 수 없이 이름만 얹어놓았을 뿐 모임엔 나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2개월 뒤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지요. 3·1운동 때 소남과 이 장군이 일경에 체포돼 함께 감옥살이도 했다는 사실은 소남 별세 후 이 장군이 쓴 제문(祭文)에도 나옵니다. 소남은 일제가 중추원 참의 자리를 제안해도 다 거부했습니다. 친아들이나 다름없는 애국지사인 두 조카(상정·상화)도 큰아버지를 한없이 존경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 장군과 할머니(이명득 여사), 이상백 전 IOC위원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장군은 독립지사일 뿐만 아니라 시·서·화에도 능했던 걸출한 인물입니다. 일본 유학 시절 동생들에게 신학문을 일깨워주기 위해 많은 책을 보냈습니다. 문학적으로 상화 시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 여사와의 동지적 사랑도 이야깃거리이죠. 이상백 위원이 42년 일본 와세다대 특별연구원으로 중국에 잠시 갔을 때 할아버지(상악)가 당시 거금인 600원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 돈이 이 장군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머니(이명득) 역시 대한부인회 대구시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6·25전쟁 때 피란민을 구휼하고, 빈민구제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대표는 이장가가 일개 가문의 족보가 아니고 대구와 영남인, 그 너머 대한민국의 사표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런 의도로 마련했다.

“1919년 지은 이장가의 고택(대구시 중구 서성로 62-1)은 안채·사랑채·행랑채·고방채·창고동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현재 소남 이일우기념사업회가 고택을 보존하는 한편 상화문학관을 건립하려고 합니다. 청소년 학습 공간이자 근대골목 전시·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덧붙여 이상백 대한민국스포츠기념관도 설립하고 대구시 달서구 종중 묘원에 대지를 확보해 상화백일장 같은 사업도 하려고 합니다. 대구시와 해당 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신다면 저희 가문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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