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LP로드] '야노쉬' 손영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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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9   |  발행일 2020-05-29 제35면   |  수정 2020-05-29
강변로 한편 그루터기처럼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 내리고 첼로 켜는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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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와 명상, 그리고 성령의 삶의 연장에서 음악과 아름다운 풍경으로의 초대를 위해 금호강변에 문을 연 카페 '야노쉬' 손영철 사장. 손님이 없을 땐 싱그러?

바람은 싱그러웠고 구름은 더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다. 5월의 금호강 물이 햇볕에 반사돼 투명하게 반짝거리고…. 시선의 3분의 2 이상을 항상 땅바닥을 향하고 있는, 그래서 언뜻 수도원의 수사 같은 기운을 가진 그 사내. 프로방스풍의 카페 '야노쉬'(JANOS)를 운영하는 손영철(56)이다. 음악과 풍경이 있는 곳으로의 초대. 그의 가게를 품는 슬로건 같은 말이다.

손님이 없는 날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는 굳이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침묵도 하나의 손님'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손때가 묻은 5대의 첼로, 그리고 4대의 통기타를 갖고 있다.

즉흥연주의 야노쉬
음악과 풍경이 있는 프로방스풍 카페
분위기 따라 즉흥 연주…인생상담도
손님 뜸할 땐 무반주 첼로 선율 퍼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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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사춘기의 감수성이 묻은 야노쉬 구석자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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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사진기를 만지고 있는 손 사장은 비오는 날의 빗물 자국, 안개를 머금고 있는 이른 아침의 숲의 정경을 즐겨 촬영한다. 가끔 지인들을 위해 몇 점 액자를 걸면서 자기 그림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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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쉬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음악과 풍경으로의 초대를 손 사장이 손글씨로 적어 원두에 얹어 가게 입구에 놓았다.

어쩌다 음악 하는 후배가 오면 어쿠스틱 한 분위기로 즉흥 연주를 한다. 공연 형식은 아니다. 공연은 부담스럽고 그냥 즉흥이 좋단다. 후배가 까는 선율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것에 어울리는 그만의 화음을 살포시 올려준다. 선율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다. 행인이 이 무슨 소린가 싶어 안을 기웃거리다가 풋풋하게 웃고 지나간다. 그는 그런 상황을 즐긴다.

가게 앞은 벚나무길이다. 4월이 되면 벚꽃엔딩은 꼭 첼로와 함께한다. 비가 오는 날은 무반주 첼로 연주가 제격이다. 햇살이 푸들푸들한 날에는 문 밖에 놓인 나무의자 혹은 강변 가드레일용 콘크리트 구조물에 앉아 첼로를 문지른다. 웅~.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가진 저음의 진동이 흐른다.

아양교에서 서쪽 강변로를 따라 조금 내려간 아파트 상가 구석 자리 한 편에 야노쉬가 그루터기처럼 앉아 있다. '우리 집 커피를 마셔보세요'란 다급하고 상업적인 메시지가 전혀 전해지질 않는다. 참 계산이 안 나오는 카페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아니 시대를 너무 앞서간 카페인지도 모른다.

직원도 없다. 주인이 커피를 빚고 커피를 내리고 동시에 음악을 틀고 기분 내키면 악기까지 연주하고, 때론 손을 먼저 내미는 이를 위해 인생 상담, 성경에 대한 토론도 하고, 그렇게 그는 중세의 어느 시절을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야노쉬. 이 사내의 첼로 연습 공간 혹은 아트숍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 대다수가 단골이다.

우연히 발견한 삶의 쉼터
찬송가와 어울린 바이올린·통기타
젊은시절 운명적 만남 첼로와 사진술
헝가리 여행중 카페 앞 기타 연주 심취
잊지 못한 감동은 '야노쉬'로 이어져


부모는 불교에 몸을 담고 있었다. 5남매 막내였던 그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초등 6학년 시절 인근 주일교회에 갔다가 생애 첫 성령감화 사건을 맞게 된다. 그에게 더 이상 공교육의 흐름은 무의미해 보였다. 출세를 위한 공부도 그에겐 의미를 잃어버렸다. 성가대의 찬송가 선율, 그는 그 선율의 의미를 캐내기 위해 바이올린·피아노와 통기타를 배운다.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 달력 뒷면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을 했다. 툭하면 교회에서 종일 보내게 된다. 방학이 되면 교회는 그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선택의 여지 없이 일반 대학을 등지고 신학교에 입학한다. 20대 초반에 운명적으로 첼로를 만나게 되고 이후 사진술까지 품게 된다.

이후 대구 북구 침산동 북일교회, 중구 남산동 성광교회 등에서 아이들과 성경적 만남을 이어갔다. 이후 영적 발전을 위해 헝가리로 음악 여행을 떠난다. 슬로바키아의 한 카페 앞에서 클래식 기타를 치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 감동이 카페 야노쉬로 이어진 것이다. 야노쉬 이전에 대구여고 앞에서 '쉴만한 물가'란 한 교회의 카페를 운영했다. 돈을 받는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을 몰랐다.

2011년 초가을, 그가 우연히 강변을 산책하다가 평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그 공간에 필이 꽂혀 버린다. 카페 바로 옆은 아파트 주민의 소공원. 바로 옆에 층석으로 된 절벽이 있다. 야노쉬와의 인연, 사내에겐 삶의 새로운 연대기가 밝기 시작되는 날이었다.

야노쉬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자기 '닉네임'이기도 하고 헝가리의 유명한 첼리스트 '야노쉬 슈타커'를 가리키기도 한다. 야노쉬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들으면 이미 몸은 신국의 몫이 된다. 그럴수록 그는 자본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황금만능의 세상을 향해 신성의 몸짓으로 항거한다. 그 항거의 일환으로 빠듯하게 살아도 수익금의 일부는 장애인 등을 위해 기부하거나 후원한다.

어릴 때부터 그는 남은 삶을 온전히 신앙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1부 인생을 온전히 묵상 톤의 전도사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성결한 노정에 꼭 맞는 종교음악을 첼로를 통해 구현해보고 싶었다. 한 시절 오직 그 생각만 하며 살아갔다. 그렇다고 유명한 연주자가 되자는 건 아니다. 첼로를 중심에 두고 그 바로 옆에는 바이올린과 통기타, 그리고 피아노와 하모니카가 그만의 기독교 인생에 동참했다. 그 행로의 끝에 피어난 야생화 같은 게 바로 야노쉬다.

자리에 앉자 그가 커피콩을 갈았다. 그 향기는 꽃과 비교할 수 없는 오라(aura)가 있다. 그가 정결한 손길로 커피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볼륨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순간 아르정텡 같은 유럽의 폐쇄 수도원의 기도실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쿵짝 거리는 트로트 같은 국내가요는 이 공간에선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래서 일절 그런 곡은 내보내지 않는다. 지친 사람의 맘에 맑은 무지개 같은 영적 기운을 보태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첼로를 쥔 것이다.

홀 한쪽 벽면은 1천500여 장의 LP·CD가 있다. 그는 클래식, 그리고 재즈, 다음에는 쿠바·멕시코 등 제3세계 월드뮤직을 유튜버 등을 통해 엄선해 내보낸다.

들꽃 향기 가득한
문 앞은 금호강변서 꺾어온 들꽃 가득
10대 소녀의 감수성 묻어난 구석자리
30년 분신 사진기와 엄선한 사진 작품
고풍스러운 커피잔과 테이블에 놓인 책

제일 먼저 시선을 끈 건 들꽃이다. 방금 화원에서 갖고 온 생화 같은 건 이 집에선 별로 환영을 못 받는다. 퇴락미(頹落美)가 있는 수종이 좋다. 금호강변에서 꺾어 온 창포가 피운 노란 꽃이 온더록스잔 같은 화병에 꽂혀 있다. 바로 옆 바닥이 눈길을 끈다. 꿀벌이 흘리고 간 화분 같이 노랑 알갱이가 원형으로 깔려 있다. 지난봄 여러 번 갈아 끼워놓았던 유채꽃잎이 낙화돼 알갱이처럼 고스란히 말라버린 것이다. 그 복판에 고들빼기가 화분에 꽂혀 있다.

구석 자리는 정말 성소 같은 기운이 감돈다. 빨강 테이블 커버가 덮여 있다. 테이블 복판에 사전이 놓여 있고 그 복판에 이런저런 드라이플라워 꽃잎이 흩어져 있다. 갑자기 그 사내가 빨강머리앤,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사춘기 여자애보다 더 섬세하고 섬결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아이보리와 카키색 벽면이 반반 정도의 비율로 칠해져 있다. 얼추 30년 그의 분신이 되어 따라다니던 사진기가 보인다. 그가 엄선해 걸어놓은 작품 액자가 보인다. 여느 풍경사진과 질감이 다르다. 아주 느린 속도로 피사체를 물 흘리듯 포착해냈다. 많이 흔들린 풍경이다. 언뜻 사물의 경계를 붓으로 여러 번 상하로 칠해 그러데이션 효과를 낸 것 같았다. 헝가리 노르파마숲에서 찍은 건데 이른 아침 비 오고 안개가 피어나는 날을 일부러 기다려 촬영을 했다. 맞은편 벽에는 갈색톤 사진과 달리 유럽의 어느 시골의 푸른 언덕 풍경이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어느 농가의 풍경인데 이건 수채화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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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철 사장은 수제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는 과정도 하나의 연주라 여긴다.

유럽을 돌며 수집해 온 손잡이 달린 앤티크한 분위기의 커피잔이 커핑 바텐 근처에 오종종하게 앉아 있다. 입구에는 그가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니 로스터가 보였다. 테이블마다 맘이 쉬어갈 수 있는 책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만의 필체로 적힌 문구가 카페 곳곳에 꽂혀 있다. 녹슨 양철, 그리고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자국이 보이는 그의 사진이 징검돌처럼 앉아 있다. 코로나 정국이 깊어갈수록 야노쉬의 눈매는 더 초롱해지는 것 같다. 단골들도 여기와 호흡하기 위해 먼 여행을 다녀오면 사온 선물을 건넨다. 액자 속 루이 암스트롱의 불룩해진 볼도 여기에선 달처럼 다가선다.

그가 독자들을 위해 몇 곡을 추천한다. 슬픈 마음이 들 때는 가브리엘 포레의 첼로 버전인 'Romance sans paroles', 코다이의 'Works for cello'(미클로시 페레니 버전)를, 비 오는 날에는 마이클 호페의 'Romance for cello(마틴 틸만 버전)를 추천한다. 주문하면 그가 직접 케냐, 예가체프, 과테말라 계열의 원두를 갈아 커피를 추출한다. 즉흥연주 같은 그 광경도 야노쉬의 매력을 깊게 해주는 포인트랄까? 고요한 자신과의 밀담을 원하는 이에게 어울릴 것 같지만, 채 10명도 들어가기 힘든 점을 감안 하면 사전에 예약하는 것도 좋을 듯. 아무튼 일요일은 휴무. 대구시 동구 아양로49길 77. 010-3525-961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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