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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은 황강달이를 부두에서 말리고 있는 어민들. 황석어 산지로 유명한 곳은 전남 신안군 임자면 임자도 전장포다. |
서대, 농어, 갑오징어, 민어 등 몸값 높은 생선들 틈새에서 오뉴월 밥상의 알토란 역할을 하고 있는 몸집 작은 생선이 있다. 젓갈부터 조림까지, 튀김부터 전까지 어떤 변신도 가능한 생선 '황석어'라 불리는 '황강달이'다. 모내기 철에 못밥으로 올리기 딱 좋다. 못밥은 모내기를 하다 들에서 먹는 밥을 말한다. 조기처럼 비싸지 않아서 좋고, 바싹 마른 논에 물을 들이듯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들이붓고 고사리를 깔고 감자나 무를 바닥에 놓고 자작하게 조린 황석어조림을 내놓는다면 힘이 절로 날 일이다. 묵은 황석어젓은 그대로 양념을 넣고 무치면 훌륭한 반찬이다.
뼈대있는 집안의 막내
민어과…비싼 참조기·민어 대체 역할
황금색배 황강달이, 눈이 큰 눈강달이
15~20㎝ 오뉴월 산란, 조기새끼와 비슷
젓갈 만들어 서울로 보내면 귀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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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에는 황석어가 살지고 뼈도 억세지 않아 조림이나 탕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튀김은 황석어를 통째로 이용한다. 사진 위쪽부터 조림, 부침개, 탕, 젓갈, |
황석어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참조기·민어 등과 어깨를 견줄 족보를 갖고 있다. 참조기는 연안에서 쉽게 잡을 수 없고 민어는 몸값이 높은 고급생선이 되었으니 쉬 상에 올릴 수 없다. 이 틈에 이곳저곳을 오가며 약방의 감초처럼 제대로 역할을 하는 생선이 황강달이다. 옛날에 비해 값이 올랐지만 한 상자 2만~3만원에 구할 수 있으니 그래도 바다 맛을 아는 주부들이 이 철에 가장 많이 눈길을 주는 생선이다.
강달이의 종류를 보면, 배가 황금색을 띤 황강달이, 눈이 큰 눈강달이, 민강달이 등이 알려져 있다. 황석어는 15㎝에서 20㎝ 내외로 오뉴월에 산란을 한다. 그 모양새가 7월에서 9월에 안강망 그물에 많이 잡히는 조기 새끼와 흡사하다.
황강달이는 참조기, 수조기, 부세, 민어 등과 함께 민어과에 속한다. 지역에 따라 황세기(충남 아산), 황새기(충남 서산·전북 군산), 깡치(서산·전남 영광), 황숭어(전남 법성포), 깡다리, 황실이(전남 목포) 등으로 불린다. 깡다리는 '강달이'의 전라도 말이다. 모두 강달이 어장이 형성되는 연안의 도시들이다. 강달어가 좋아하는 먹이는 젓새우, 게 등 갑각류다.
'자산어보'에는 조기, 보구치, 반애, 황석어 등을 모두 조기로 분류해 '조기 중 가장 작은 놈을 민간에서 황석어라고 하는데, 길이가 0.4~0.5척이고 꼬리가 뾰족하며 맛이 좋고 제때에 어망 속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간혹 황강달이를 조기새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어린 조기에 비해 머리가 크고 돌기가 있다. 모양새가 꼭 조기 새끼를 닮아 헷갈렸던 어류다.
'전어지'에도 황강달이를 '황석수어'라 했다. '석수어'는 조기를 일컫는다. 그 모양이 '석수어와 비슷하지만 작고, 몸이 짙은 황색으로 알이 크고 맛이 좋으며, 황석어를 소금에 절여 젓을 담가 서울로 가져가면 호기로운 사람들의 좋은 밥반찬이 된다'고 했다.
황재(1689~1756)가 청나라를 다녀와 쓴 기행문 '경오연행록'에서는 '몸살감기와 잇몸이 아프고 치근이 흔들려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는데 황석어 반찬이 있어 밥술을 뜰 수 있었다'고 했다.
황석어를 기다리는 사람들
산지로 이름난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
젓새우 잡는 어법과 어장 위치 동일
물때에 따라 한상자에 1~2만원 차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기도 수원도호부, 남양도호부, 인천도호부, 안산군, 강화도호부의 토산에 황석수어가 포함되어 있다. 역시 황석어로 보인다. 오늘날 강화, 김포, 시흥, 안산, 평택 일대의 경기만을 말한다.
황석어 산지로 유명한 곳은 전남 신안군 임자면 임자도 전장포다. 이곳은 황석어만 아니라 병어, 민어, 젓새우 산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임자도에서 위도에 이르는 바다는 오뉴월에 황석어가 머무르는 바다다. 새우 잡는 그물 대신 그물코가 약간 큰 그물을 이용해 닻자망이나 개량안강망을 이용해 잡는다. 젓새우 잡는 어법과 어장 위치도 동일하다. 서식환경이 비슷하고 새우를 잡아먹는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닻자망은 길이 300~400곒에 폭은 7~8곒의 길이다. 조금보다는 조류가 활발한 사리에 많이 들어온다. 최적의 바다환경은 잔잔하면서 조류소통이 잘 될 때다. 오뉴월에 닻자망으로 황석어를 잡는 사람은 매일 쪽잠을 잔다. 하루에 네 번, 들물과 썰물 다시 들물과 썰물에 그물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에는 덜 들어오고 사리에 많이 들어온다. 물때에 따라 한 상자에 1만~2만원 차이가 난다.
그물을 털어온 배 위에서는 황석어를 골라내는 손질로 바쁘다. 손질이 끝난 황석어는 스티로폼에 얼음과 함께 담겨 곧바로 택배차에 실렸다. '난호어목지'에는 황석어가 '소금에 절여 젓갈로 만들며, 서울로 북송되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이 된다'고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서울로 올라간다. 예나 지금이나 맛있고 귀한 것은 서울로 올라간다. 물양장에서는 갯벌천일염과 버무려 통에 담겼다. 황석어젓을 담는 중이다. 전장포는 한때 파시가 설 정도로 번성했던 포구였다. 새우를 잡는 해선망(멍텅구리배)이 사라지면서 크게 쇠퇴했다. 선주들은 배를 처분했고 선원들은 마을을 떠났다. 한동안 빈집이 늘더니 이젠 안정된 분위기다. 지금도 수십 척이 안강망과 닻자망으로 철 따라 젓새우와 황석어 그리고 병어와 갑오징어와 민어를 잡는다. 매년 봄이면 황석어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전장포만 아니라 신안군 자은도 사월포, 비금도 원평 등도 황석어를 많이 잡는 곳이다. 특히 원평항은 일제강점기부터 황석어파시로 유명했다. 어장철이면 명사십리 모래밭에 50여 개의 임시가옥이 만들어졌다. 원평항에서도 황석어를 잡는 모습과 젓갈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화도 외포항이나 김포의 대포항에서 황석어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성비 최고
황석어 찌개, 조기조림보다 진한 국물
뼈 부드럽고 크기 작아 통째 튀겨 먹어
젓갈은 삭힐수록 진국, 조미료로 이용
황석어는 잡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반 작업이 더 많다. 그물에 오롯이 황석어만 걸리는 것이 아니다. 몇 차례의 세척과 선별을 거쳐야 한다. 시장에서 오롯이 황석어만 담겨 있는 모습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쏟아지는 햇볕 아래서 한 마리 한 마리 추려낸 것들이다. 바다에서 잡아 곧바로 상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싱싱한 황석어로 만든 찌개는 조기조림보다 더 국물 맛이 진하고 살은 부드럽다. 막 올라온 고사리를 깔고 조려도 좋고, 감자를 넣고 조려도 좋다. 아니면 황석어만 넣어도 좋다. 오뉴월 황석어는 뼈가 부드럽고 크기가 작아서 통째로 튀겨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냥 먹어도 좋고 술안주로도 좋고 반찬을 해도 좋다. 강달어는 바싹 말려 두었다가 조림을 해 먹으며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황석어젓은 삭힐수록 진국이 우러나며 그 자체로 조미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젓갈은 황석어가 많이 잡히는 5월 말에서 6월 초에 담근 것이 좋다. 싱싱한 황석어를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깨끗하게 씻은 다음 건져내 물기를 빼고 천일염과 황석어를 1대 1 비율로 섞어 항아리에 넣고 맨 위에 소금을 끼얹고 비닐로 덮어 봉해둔다. 그리고 여름을 지나고 가을부터 먹기 시작한다. 또 멸치젓 대신에 맑게 끓여 체에 받쳐 김장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서해에서는 김장할 때 김치 속에 생조기를 묻어 두기도 했다. 겨울철 김치가 시원해진다. 비싼 조기 대신 황석어젓을 많이 사용했다.
황석어젓을 무칠 때는 쌀뜨물에 씻어 비린내와 짠맛을 살짝 제거한다. 여기에 마늘 대파·매실청·고춧가루를 넣어 무친다. 싱싱한 황석어 생물은 된장을 조금 넣고 조림을 하면 좋다. 오뉴월 황석어가 살지고 뼈도 억세지 않아 조림이나 탕으로 좋다. 튀김은 황석어를 통째로 이용한다. 오뉴월에 잡는 뼈가 연한 황석어를 바삭하게 두 번 튀겨낸다.
포구에서 황석어를 선별해 큰 것은 고이 담아 비싼 값에 팔리고 작은 것은 천일염에 버무려 젓을 담는다. 알뜰한 주부들은 그물에 걸려 상처 난 황석어를 구입해 젓갈을 담고 갈아서 전을 부치기도 한다. 황석어의 큰 매력은 저렴하다는 점이다. 싱싱할 때 찌개나 젓갈을 담고 남은 것은 말리면 좋다. 하지만 바닷가에 살지 않을 경우 말리기가 어렵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린 황석어를 팔기 때문이다. 오뉴월이면 남도여행을 계획한다면 황석어 조림을 적극 권한다.
임자도에 사는 장씨는 오전 일을 마치고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바다로 나섰다. 매년 잊지 않고 찾아온 황석어가 있어서 다행이란다. 젓새우도 황석어도 양이 줄었지만 조기와 달리 찾아와 준 것만도 고마워할 일이란다. 오뉴월은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이다. 덩달아 입맛도 잃기 쉽다. 이럴 때 식은 밥이든, 막 뜸을 들인 밥이든, 사각사각 씹히는 물오른 상추 위에 한 숟가락 올리고 그 위에 황석어젓을 얹어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우적우적 씹어보자. 잃었던 입맛이 거짓말처럼 살아난다.
조기에 비하면 크기가 형편없이 작고 볼품이 없지만 그 쓰임새와 맛은 조기와 굴비를 능가한다. 남쪽 바닷가 사람의 여름 밥상을 책임지는 생선이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