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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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38면   |  수정 2020-07-03
영광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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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지음·더숲·2019·12·473면·18,000원)

시인 류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같은 감성 짙은 시집을 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셨다. 또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을 번역하고 소개해 시의 맛을 느끼게 한 시인이다. 출판계에서 그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시인으로 인정될 만큼 그가 편집한 책들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최근에 나온 이 책은 인도의 우화와 이야기 100편을 모아 만든 책으로, 역시 그의 안목을 다시금 확인하는 책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인의 지혜가 듬뿍 담긴 이야기 속에서 단연 나의 눈을 끈 것은 '그 이름 바마티'라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도에 바차스파티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인도 사상의 근본 경전 중 하나인 '브라흐마 수트라' 연구에 평생을 바쳐 주석서를 쓴 사람으로 유명하다. '브라흐마 수트라'는 간결하고 압축된 555개의 경구가 매우 난해해 다양한 주석서가 존재한다.

바차스파티는 젊어서부터 이 경전의 주석서를 쓰는 일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의 어머니가 이웃 마을의 처녀와 결혼을 시키려 했을 때도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고, 처녀의 아버지에게도 이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으나 처녀는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이겠다'고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은 하였으나 그는 오로지 경전연구에만 몰입했으며, 그가 주석서를 쓰는 동안 아내 바마티는 어떤 기대나 요구 없이 그림자처럼 뒷바라지했다.

마침내 주석서를 끝내는 날 집을 떠나 구도자의 길을 걷기로 서약한 그는 날이 새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부인 바마티는 "당신을 방해했다면 애정이 부족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저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결코 당신의 길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 죄책감 없이 떠나십시오"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 바차스파티는 넋을 잃고 말했다. "당신은 실로 위대한 여성이오. 나 같은 주석자가 수없이 많겠지만, 이토록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내와 위대한 가슴을 지닌 당신 같은 아내를 가진 주석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오. 나는 이 주석서의 제목을 '바마티'로 하겠소. 앞으로 누구든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당신을 기억할 것이오."

훌륭한 아내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바차스파티는 자신의 주석서에 '바마티'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 제목은 인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철학적 주석서의 내용과는 아무 관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주석자 아내의 이름일 뿐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당신의 사랑과 인내심이 없었다면, 그리고 당신의 말 없는 기다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주석서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오. 내 삶의 목표와 평생의 작업 모두를 당신의 발아래 바치겠소. 당신의 사랑에 필적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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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구독서포럼 이사·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바차스파티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어도 '바마티'라는 이름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기억되었다. '브라흐마 수트라'에 관한 많은 주석서가 발표되었지만, 헌신적인 아내의 사랑이 담긴 '바마티 주석서'가 가장 뛰어난 주석서로 여겨지고 있다. 바차스파티는 위대한 학자였지만, 바마티는 그보다 훨씬 더 성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위대한 경전 연구자 바차스파티인가? 그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남모르게 뒷바라지를 해주어 주석서 이름으로 남은 부인 바마티인가? 영광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라고 아내의 이름을 남긴 바차스파티의 생각은 참으로 깊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

〈사〉대구독서포럼 이사·전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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