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특화골목은 재개발 중"…1907년 조성 대구 최초 신작로 '북성로'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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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31   |  발행일 2020-07-31 제33면   |  수정 2020-07-31
광복후 공구골목 형성…70년대 전성기
90년대 지역 최대 산업공구 골목 '활기'
수십년 역사 거리까지 침투 재개발 열풍
일제강점기 주거 시설 수십여채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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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북성로 현대 힐스테이트 신축현장. 공구골목의 점포 수십 곳이 이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대구의 구도심인 중구·남구는 지금 재개발 열풍에 휩싸여 있다. 도로 한 블록을 건너면 건물들이 무너지고 있다. 또 한 블록을 넘어가면 회색빛 콘크리트 새 건물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용지 부족으로 도시 외곽에서 새로운 사업처를 찾지 못한 건설업자들이 형성된 지 한 세기 가까이 된 옛날 도심에서 아파트 또는 주상복합 건립을 통해 먹을거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한창인 대구의 구도심에는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특화골목과 거리가 있다. 중구의 북성로공구골목과 남산동 자동차튜닝골목, 남구의 이천동 고미술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재개발의 열풍 속에서 과연 이들 골목은 온전히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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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에 둘러싸인 북성로 공구골목

대구시 중구 북성로는 1907년에 만들어진 대구 최초의 신작로다. 2018년 3월28일자 영남일보에 따르면 1904년 경부선 완공과 대구역사 건립 이후 대구읍성 외곽의 토지 절반 이상을 소유한 일본인들이 상권을 넓히기 위해 대구읍성을 철거하고 만든 길이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수은 가로등이 거리를 밝혔다. 이후 북성로에는 일제강점기 대구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미나카이백화점과 쌀집, 술집, 기모노점, 농기구상, 목재회사가 들어서면서 자본과 물자가 밀집된 지역 최대의 번화가가 됐다.

8·15 광복 이후 북성로는 상업·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처음에는 의류상가들로 붐볐다가 차츰 기계공구상으로 상권이 바뀌었고 6·25전쟁 이후 철물상거리로 변모했다. 미군용 전시품이었던 깡통을 재생해 생활필수품으로 만드는 업종들이 생겨나고 군수품 유출로 공구, 기계, 베어링, 자동차 부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형성됐다. 또 전쟁 중 대구에 많은 예술인들이 몰려들면서 북성로와 인근 향촌동에 있던 다방들은 '예술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북성로 중심에 북성로 공구골목이 있다. 이 골목은 대구역네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까지 1㎞ 정도 이어져 있고 길 양쪽에는 500여개 공구 관련 점포가 있다. 골목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됐다. 1938년 별표국수 공장으로 시작한 삼성의 효시 삼성상회가 이곳에 있었다. 북성로에 본격적으로 공구골목이 형성된 것은 광복 이후다. 1947년쯤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다 나온 폐공구를 모으던 수집상 11명이 달성공원 입구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1970년대에 들어 골목은 전성기를 맞았다. 제3산업단지, 이현산단 등 산업단지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산업용품들이 팔려나갔다. 북성로 공구골목은 1990년대부터 인교동 공구상가와 연결되면서 대구 최대의 산업공구 골목으로 발전했다. '골목 한 바퀴를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만물상 거리로 변모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때 상권 위축과 업체들의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 이주 등으로 외형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대구의 특화골목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개발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지난 28일 오후에 찾은 대구시 중구 성내동 북성로 공구골목 동쪽 대우빌딩 건너편. 지하 4층~지상 49층 아파트 803세대와 오피스텔 150실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대구시가 지난해 9월 이곳의 재개발 사업을 승인했다. 이 때문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건물을 포함해 50여채가 사라졌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철거된 건물은 2, 3층 규모로 저마다 독특한 형태로 지어졌다. 보통 1층은 상가, 2·3층은 주거시설로 쓰였다. 이번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 건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주민과 상인들은 "공사로 인해 철거된 건물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 때도 부서지지 않아 역사적 가치가 컸다"고 말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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