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석의 일상의 시선] 시월, 그 기억의 미래

    • 박진관
    • |
    • 입력 2020-10-16   |  발행일 2020-10-16 제18면   |  수정 2020-10-16
    광복 후 전국 항쟁의 근원
    시월항쟁 관심 부족 아쉬워
    유족의 슬픔과 멍든 가슴
    확실한 기억 통해 씻어내야
    용서·화해의 문 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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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대구문학관장

    #기억

    기억은 어수선하다. 안타까움을 거쳐 증오로 번지기도 한다. 잊히다가 화들짝 다시 떠오른다. 억울한 죽음의 기억이라면-가령 가창 골짜기에 끌려가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면-살아남은 가족들에게 얼마나 더 조마조마하게 떠오를까? 수시로 되씹는 괴로움이 그들의 생을 간단없이 집적대리라. 그 괴로움 속에서 어쩌면 분노와 용서의 착잡한 마음도 붐볐을까? 살아남은 자들이 물려받은 억울한 삶의 모습에서 그 기억은 더욱 역사의 피멍 든 자국으로 남기도 한다. 그런 자국들은 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확실한 기억을 통해서 씻어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용서와 화해의 문을 열 열쇠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령탑

    가창댐 바로 아래 '그해 시월'에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위한 위령탑이 세워지고 있다. 우리 집에서 가까워서 산책길에 종종 들러 진척상황을 눈여겨본다. 탑이 세워지고, 항쟁의 슬픔과 분노를 상징하는 브론즈 조각도 놓여졌다. 조경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위령탑 경내로 드는 길도 협소하나마 곧 정비될 것이다. 유족들의 숙원의 하나로 확실한 기억의 자리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댐이 조성되기 훨씬 전 이 자리 가까운 냇가에서 처참한 처형의 참상이 벌어졌기에 이 자리는 이제부터 그 기억의 중심 공간이 된다. 대구 시월 항쟁의 기억을 비로소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2016년 '시월 항쟁 위령 사업 지원 조례'가 대구시의회에서 통과된 뒤 그 첫 사업인 셈이다. 조례에 따르면 위령 사업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지자체에 권고한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 평화공원 조성, 위령탑 건립 등이다.

    그러나 이런 큰 의미를 가진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지역민과 지자체, 언론들의 관심이 너무 미약한 듯해 의아해진다. 사업비가 고작 8억5천만 원의 소규모라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제주 4·3 항쟁,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기념관들이 엄청난 관심거리로 거의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다. 따지고 보면 대구 시월 항쟁은 제주 4·3 항쟁과 거창 사태를 비롯한 광복 직후 일어난 전국적인 항쟁들의 근원이 되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인데도 말이다. 시월항쟁은 1946년 대구 시민들이 광복 직후 미군정의 식량정책을 비판하며 총파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2005년부터 대통령 직속기관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조사를 벌여 '국가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된 바 있다.

    이런 관심 부족은 대구시와 해당 지역 지자체의 반응에도 나타난다. 시월 항쟁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규모가 작은 게 우선 지적된다. 지역의 체육공원 한 귀퉁이를 억지로 마련한 것에다 그나마 열의와 성의가 거의 없이 형식적으로 후딱 조성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공간 활용에 대한 해당 지자체에의 요구가 수차 있었으나 도움은커녕 거의 무관심 수준으로 묵살되는 듯해 안타깝다.

    그래도 유족회는 이나마 오감타는 눈치다. 그동안 시월 항쟁이 철저하게 무시되던 지역에서 이런 정도나마 공간이 마련되는 걸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어쨌든 이 탑의 제막식이 시월 중으로 열릴 예정이어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내년 봄으로 밀렸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이다. 그때까지라도 이 공간이 좀 더 보완되고 세심하게 챙겨지길 바란다. 그 기억의 공간이 바로 세워져야 우리의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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