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인 10명 중 9명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료기관서 차별"

  • 박준상
  • |
  • 입력 2021-05-09 15:39  |  수정 2021-05-09 15:39  |  발행일 2021-05-10 제6면
치료·입원 거부당하고 검은 비닐 식판에 배식 받기도
신체·정신적 고통도 상당…"차별 완화 정책 필요하다"

HIV 감염인 A씨는 지난해 9월 수도권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이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구급차를 타고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지만, 13시간 동안 찾지 못했다. 병원 20여곳에 전화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13시간 만에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지만 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릴 수 없게 됐다. A씨는 "병원들이 HIV 감염인을 치료할 의료진이 없다며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 HIV·에이즈 감염인 자조모임인 '해밀' 역시 HIV 감염자라는 이유만으로 의료기관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차별 당한 사례를 소개했다. 한울 해밀 회장은 "대구에서 HIV 감염자 B씨가 병원에서 검은 비닐을 씌운 식판에 배식을 받았다. 다른 입원환자들은 비닐을 씌우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차명희 레드리본인권연대 상담소장은 "B씨는 가족에게 HIV 감염을 숨기고 있었다. 식판의 씌운 비닐에 대해 가족이 묻자 병원은 B씨가 HIV 감염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B씨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아웃팅'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HIV·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리본인권연대가 최근 HIV 감염인 102명을 대상으로 감염인 사회적·신체적 장애 경험과 법제도 마련을 위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101명)은 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95명이 의료기관에서 차별을 받은 적 있다고 밝혔다.

HIV 감염 후 신체·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감염 후 불안과 우울증세를 경험한 사람은 61명, 공황장애를 앓거나 경험한 사람이 20명이었다. 10명은 알코올 의존증을 경험했거나 현재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또 치료제 부작용으로 피부질환을 앓거나 겪은 이가 23명이었다. 응답자 중 17명은 걷기도 힘들 정도의 신경통이나 마비증상이 온 적이 있다고 했다.

HIV 감염인 95%(97명)는 HIV를 장애로 인정하고 차별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응답자들은 의료·고용에서의 차별완화(65.7%)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정책을 통해 개선될 부분으로 사회적 낙인 완화(45.1%)와 차별대우 해소(37.3%)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레드리본인권연대는 HIV와 에이즈 감염을 장애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연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HIV·에이즈 감염인이 차별로부터 보호받길 희망한다"고 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기자 이미지

박준상 기자

디지털뉴스부 박준상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