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법조계 스티브 잡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2045년 전후 종이화폐 사라질 수도…가상화폐 투자는 매우 신중해야"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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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8 08:03  |  수정 2021-09-08 08:10  |  발행일 2021-09-0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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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부장판사는 "스마트폰에는 수많은 유용한 앱들이 있고 유튜브 '강민구 혁신'에 △음성인식 자동타자 △책을 읽으면서 문자 추출 △전세계 뉴스를 손바닥서 한글로 읽을 수 있는 방법 등을 담은 앱 사용 영상을 만들어 게시했다"며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영상은 135만명이 시청했다"고 귀띔했다.

경북 구미 선산 출신으로 법관 인생 33년을 걸어온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일상은 일반인들이 통상 생각해온 판사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이른바 법조계 IT혁신가로 불리면서 '도깨비 방망이, 스마트폰 200% 사용법' 등 다양한 주제로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에 IT기술로 무장해 두 배의 인생을 사는 강 판사를 지난달 31일 서울고법 판사실에서 인터뷰하고, '강판사 블로그(디지털상록수)'를 통해 보충 취재했다.

입대 후 컴퓨터 접하고 코딩언어 배우는 행운
전자소송 도입 주도하고 사법 정보화 이끌어
정보화 격차 해소 교육에 관련 퇴직자 활용을
30여년간 업무처리 속도전 법관·IT 양수겸장
고향 구미 생각하며 '컨트리보이' 자부심 새겨


▶'법조계의 스티브 잡스' '강줌마 ' 등 별칭을 여러 가지 갖고 있는데.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난 뒤 1985년 군대를 갔는데 부대가 아닌 육군사관학교 교수부로 발령이 났다. 그곳에서 더미터미널이라고, 화면하고 키보드만 있는 이른바 '멍텅구리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3년 있으면서 파스칼, 포트란 같은 코딩 언어를 공부했다. 전역하면서 당시 중고 자동차 한 대 값에 맞먹던 컴퓨터 한 대를 과감하게 샀다. 이를 계기로 '스마트 법원' 개념을 이끌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자소송 도입을 주도했다. 이제 사법정보화는 세계 톱3위 내에 드는 정도로 잘 완성되어 있고, 후배 법관들이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스마트폰의 유용한 앱을 일반인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대중강연과 유튜브 등을 통해 활용법을 전파하고 있다. 2년 뒤 정년퇴직하면 디지털 상록수 교실을 자비로 열 생각도 있다. '강줌마'라는 별칭은 경남 하동에서 직접 덖은 햇녹차를 직원들과 나눠 마시고, 관사에서 직원들과 직접 만든 음식으로 식사하는 등으로 소통하니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세대·개인별 정보화 격차가 심하다. 이를 해소하는 정책을 제안하면.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화 능력 있는 퇴직자들을 모아서 정보화 전도사로 만들어 마을마다 일정 기간 파견하여 2주 정도 내외로 주민 무료 교육을 해야 한다. 기존 정보화마을 사업 지역을 거점지역으로 삼으면 쉽게 할 수 있고 고용창출도 된다. 정보화 격차를 방치하면 국민이 양분된다. 정보화 능력 유무가 중·노년의 생활과 후생복지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스마트폰을 전화·문자메시지·유튜브 시청 정도로만 쓰는 것과 외장두뇌·생산성 향상 도구로 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생긴다."

▶주 업무인 재판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사람도 있겠다.

"지난 30여년간 무수한 난제·미제사건을 미루지 않고 처리했다. 늘 업무를 앞당겨 처리하는 습관이 몸에 익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후배들이 저를 보고 괴물·귀신이냐고도 한다.(웃음) 양수겸장으로 속도전으로 일을 하니. 그런데 이것은 모두 '어머니' 덕에 가능하게 되었다. 제가 여섯 살 때인 1963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됐다. 법관 임관 후 어머니가 보고 싶거나 하면 평일 오후 6시에 서울서 차를 몰고 구미 선산으로 가면 밤 9시 이전에 도착한다. 그럼 같이 저녁을 먹고 새벽 6시에 아침 먹고 출발하면 오전 8시30분에 출근한다. 어머님 얼굴 보고 같이 한 방에 자고 그게 효도 아니겠나. 1년에 20회 이상 왕복하는 걸 30여년을 했다. 이렇게 하려면 일을 미리 당겨서 해야 한다."

▶시간 관리 노하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항상 시간을 스스로 지배하고, 나와의 카카오톡에 일정을 기록한다. 디지털 일정표도 잘 활용한다. '초치기 습관'을 배격한다. 항상 1주에 여유시간을 1일 이상 미리 확보한다. 어머니 덕에 모든 일을 초고속으로 처리하는 것이 인생습관으로 굳었다."

▶정치 입문설도 있었다.
"30대부터 고향 동네는 물론이고 면·군내까지 소문이 퍼져 음해도 많이 받았다. 국회의원 욕심낸다고. 그런데 저는 오직 효심이거든. 어릴 때 늘 격려해주셨던 어머니와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가족들도 절대 반대이고 저도 정치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30여년 판사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재판은.
"1988년부터 33년간 많은 사건을 처리했다. 고향에 구미보가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되어 있지만, 서울고법 행정부 재판장 시절 4대강 사건 한강 수역 항소심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여 나머지 금강·낙동강·영산강 수역 사건의 기준 판결 역할을 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서 승인된 바 있다. 그 외 구로산단 농민 토지수용 손실보상 사건, 녹십자 혈우병 치료제 에이즈오염 피해사건, 군대내 가혹행위 자살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을 집중한 사건을 많이 했다. 일본 농약회사와 한국 회사 사이의 제초제 특허분쟁 사건을 하동녹차를 매개로 합의시킨 일, 2000년 대구지법서 모녀간의 금전 분쟁을 '회심곡' 음악 한 곡으로 합의시킨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최근 젊은이들은 가상화폐에 주목하고 있다.
"가상화폐는 새로운 디지털 혁신 분야다. 하지만 달러화가 기축통화 기능을 하고 있고, 각국 중앙은행이 종이화폐 발권능력을 포기하지 않기에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을 컴퓨터가 추월하는 특이점 도래 시기로 추정하는 2045년 전후에는 어쩌면 종이화폐가 사라지고 디지털 화폐가 중심이 될지도 모르겠다."

▶불투명한 앞날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하면.
"디지털 혁명시대에 태어나서 항상 정보화 파도를 타고, 호기심·탐구심·열정·이타심 자세로 주변에 베풀면서(자신의 시간, 재능, 마음, 돈) 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유년시절을 어떻게 보냈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조부모와 어머니 사랑으로 '적선지가' 모습을 보면서 컸다. 선산중 출신으로 서울 용산고 시험에 합격 후 유학을 했는데, 힘들 때마다 '남아입지출향관, 학약불성사불환'(남자가 고향을 떠났으니,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서도 고향 땅 밟지 않으리)이라는 글귀로 다짐하곤 했다. 고비마다 할머니와 어머니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고향산천 구미의 정기를 생각하면서 컨트리보이의 감성과 자부심을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 살고 있다."

▶자녀를 교육할 때 무엇에 중점을 두었나.

"독서다. 주말마다 대형 서점에 가서 서너 시간씩 책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한 것이 최고의 교육 비책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은 가장 존경받는 그룹이었다.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다.

"법조인 배출이 연간 300명이던 시절을 지나 로스쿨 시대에 들어 1천500명 선이 되었다. 순기능, 역기능이 섞여 있다. 법조인들의 다수는 제대로 일하나 소수 인원이 국민 지탄을 받고 마치 법조인 전체가 나쁜 놈 집단으로 비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법조인의 자세는 헌법·헌법정신·법률·확립된 선례를 기둥으로 삼고 특정 이념을 따르지 않으며 공정·공평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적선지가, 타인을 돕고 살겠다는 자세 확립이 중요하다."

▶고향 발전을 위해 덕담 한마디.

"고향 구미 선산의 존재가 저에게 원초적 DNA 기반이다. 어릴 적 소 풀 먹이고 산·강을 뛰어다닌 감성이 법관으로서의 경쟁력 주춧돌이다. 중학교 때 풀을 베다가 낫에 손가락을 다쳐 큰 흉터가 남아 있는데 대구지법 부장판사 시절에 수많은 민사 사건 조정을 성사시킨 도구가 되기도 했다. 경북지역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각종 서원·사찰·산·낙동강 등과 복합적으로 어울리게 스토리텔링을 하면 좋겠다.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은 '선비의 길'을 더욱 잘 개척하여 홍보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산업을 더 많이 유치하면 좋겠다. 전통적 제조업은 이제 경쟁력이 줄어드는 시기다. 구미산단이 좀 쇠락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 안타깝다. 여러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스토리텔링과 잘 섞여서 많은 국민이 찾아주는 고향이 되길 바란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강민구 판사= △1958년 경북 구미 출생 △구미 선산중, 서울 용산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제24회 사시 합격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창원지법원장, 부산지법원장, 법원도서관장, 한국정보법학회 회장 역임.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주요 저서: '함께하는 법정(부제-21세기 사법정보화와 열린 법정)' '인생의 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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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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