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십개월의 미래…스물아홉 미혼여성의 출산과 녹록지 않은 홀로서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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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5 08:17  |  수정 2021-10-15 08:30  |  발행일 2021-10-15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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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살 미래(최성은)는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닌 IT 벤처기업 프로그램 개발자다. 만성 숙취로 약국을 찾은 그는 임신이 의심된다는 약사의 말에 산부인과를 찾게 되고 의사(백현진)로부터 임신 10주 진단을 받는다. 예상치 못한 임신에 혼란스러운 미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동거 중인 남자친구 윤호(서영주)를 찾아간다. 일러스트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배가 하는 일을 돕고 있는 윤호는 미래의 임신 소식에 반색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제적 도움이 여전히 절실한 윤호는 내심 걱정이다. 자칫하면 결혼과 함께 죽기보다 싫은 아버지의 양돈 사업을 이어받아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어서다. 임신이라는 변수 앞에 모든 계획이 헝클어진 미래는 일과 결혼, 출산과 낙태를 놓고 고민과 갈등에 휩싸인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원치 않던 임신과 마주하게 된 미래의 당황스럽고 막막한 심정과 삶의 변화를 따라간다. '임신=출산'이 당연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 여성의 예상치 못한 임신은 감당하기 버거운 사건일 수 있다. 미래는 인공임신중절을 암묵적으로 시술하는 곳을 찾아가 상담까지 받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와 낳을 이유가 분명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택의 순간을 미루며 고민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댄다.

요즘 같은 세상엔 지구 종말보다 원치 않는 임신이 더 두려운 법. 자신이 딱 그 경우라고 생각한 미래는 임신으로 인한 영향을 제대로 체감하고 있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주차된 차들 사이로 들어가는 게 힘들고, 어린 학생으로부터는 돼지라는 말을 듣고, 중국 진출을 앞둔 직장에서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원래 있었던 곳에서 한순간에 떨어져 나온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영화는 그런 미래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어떠한 판단과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사고보다는 나른한 사색과 대화, 생활감이 묻어나는 소품과 공간 등에 집중해 함께 동행하는 느낌으로 그 옆에 위치할 뿐이다.

미래는 철이 없어서 한심해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미워할 수는 없다. 여전히 그를 지켜보는 게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미래의 홀로서기를 희망이나 절망으로 쉽게 명명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연출을 맡은 남궁선 감독은 "미래는 매번 지혜롭지 않은 선택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고 다치는 그에게 그 어떤 선택이나 결과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르:드라마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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