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든든한 국물 나와 좋다" 대구 무료급식소에 다시 등장한 '집밥'

  • 이자인,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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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3  |  수정 2021-11-03 08:47  |  발행일 2021-11-03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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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사랑해 밥차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배식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의 무료 급식소. 공원 입구부터 어르신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공원 안쪽에 들어서자 고소한 쌀밥 냄새가 올라왔고, 가마솥 안에 빨간 닭개장이 펄펄 끓고 있었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기 2주 전부터 무료 급식소 '사랑해 밥차'가 어르신들에게 '대체 급식'이 아닌 진짜 '집밥'을 제공하고 있다.

이날 어르신들은 도로 난간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며 배식을 기다렸다. 어르신들은 급식을 받기 위해 평균 2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급식소 앞에 '트로트 공연' 때문인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김모(74·대구 달서구)씨는 1등으로 줄을 섰다. 김씨는 "8시에 아침 운동할 겸 공원 한 바퀴 돌고 종이박스를 구해 1등으로 여기에 앉았다. 밥 일찍 먹으려고 1등으로 오면 기분이 좋지 않냐"며 웃었다.

대구 남구에서 온 노모(83)씨와 단짝친구 최모(81)씨는 두번째와 세번째로 줄을 섰다. 노씨는 "10년 넘게 급식소에 출근하고 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친구를 데려왔다"며 "든든한 국물 요리가 나와서 더 좋다"고 말했다.

배식시간이 다가오자 어르신들이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봉사자 10여 명도 바쁘게 배식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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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사랑해 밥차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배식받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전동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에겐 직접 급식이 전달됐다. 전동 휠체어를 탄 박모(81·대구 달서구)씨는 "코로나가 심할 때 떡 같은 대체 음식만 먹다가 따뜻한 국밥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오갈 데 없는 노인에게 밥을 챙겨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최영진 사랑해 밥차 대표에 따르면, 급식소를 찾는 시민 80%는 70~80대 어르신이며 취약계층, 지체장애인 어르신, 노숙인이 대부분이다. 최 대표는 "하루 900명~1천300명까지 무료 급식소를 방문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후원금이 줄고 플라스틱 용기로 인한 단가가 높아져 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줄을 길게 늘어선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고 일각에서 '단체집합을 시켰다'며 비난하는 눈초리도 힘들게 했다. 최 대표는 "하루에 3~4번씩 구청에 방역과 관련해 민원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눈치를 봐야 해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대구시 어르신장애인과 관계자는 "대구에 무료 급식소 43개가 있는데 코로나 이후 32곳이 '대체 급식'으로 제공됐다. 현재 4곳에서 급식을 정상 운영하고 있다"며 "무료 급식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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