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말의 실패는 신뢰의 위기

  • 조진범
  • |
  • 입력 2022-11-03 06:40  |  수정 2022-11-03 06:43  |  발행일 2022-11-03 제23면

윤석열 정부가 위기를 맞았다.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촉발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답지 않은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 장관은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긴급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다고 해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적 재앙에 대처하는 주무장관으로서 한심한 발언이었다. 참사 발생 전 다급한 112신고를 경찰이 묵살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돼 이 장관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 한덕수 총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농담을 하거나 웃음을 보여 비판을 샀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에 맞는 말을 해야 정치가 잘 된다는 뜻인데,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다. 말의 실패는 신뢰의 실패이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실언이 이어진다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진영 논리에 입각해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재난의 정치화'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 참사로 만들려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신중한 언행으로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가족과 국민의 슬픔에 공감하고, 국민 안전을 위해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표현이 또다시 등장할까 우려스럽다. 조진범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