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신미나 시인 수상 소감…"소박하지만 진실한 詩 쓰길 다짐 투병 중인 아버지께 기쁜 소식 되길"

  • 신미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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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2 08:07  |  수정 2023-01-0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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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은 1978년 충남 청양 출생. 2007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등이 있다.
"꼿꼿하고, 강직하게 정신의 날을 세우겠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아버지가 낫으로 연필을 깎아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손이 작아서 날도 짧고, 자루도 한 뼘이 안 되는 낫을 썼습니다. 보통 낫보다 날의 두께가 얇아서 풀이나 잔가지를 쳐내기에 알맞은 낫이었지요.

아버지는 숫돌에 물을 끼얹어 가며 낫을 갈았습니다. 낫이 잘 갈렸는지 눈짐작으로 가늠하더니, 필통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연필 깎는 방법은 따로 있었습니다. 왼손으로 낫을 단단히 쥐고, 오른손 엄지로 연필을 살살 밀며, 부드럽게 돌려 깎았습니다. 연필심이 너무 뭉툭하게 깎인 건 아닌지 살펴보고는 후, 하고 흑심 가루를 불기도 했습니다. 필통 안에 가지런히 놓인 연필을 보면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딸을 응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연장이 낫인 것처럼, 저도 연필을 연장 삼아 살아가리란 걸, 아버지는 짐작하셨을까요?

두 번째 시집을 묶으면서 시의 형식과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 어우러진 시를 쓰길 바랐습니다. 화려한 수사로 덧대지 않고, 소박하나마 진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는 구상 시인이 몸소 보여주신 윤리 의식과 구도의 자세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구상 시인은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령(言靈)이 있으므로 참된 말만 해야 하고, 글을 쓸 때도 교묘하게 꾸며 쓰는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시인의 말씀을 반석 삼아 꼿꼿하고, 강직하게 정신의 날을 세우고 싶습니다.

수상 소감을 쓰면서, 오래전 아버지의 응원을 다시 받은 것 같았습니다. 미욱하고 더딘 걸음을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삶은 고통 속에서도 영롱히 빛나는 신비인 것을. 언어의 고양감에 취하기 전에, 무섭도록 생생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투병 중인 아버지께 기쁜 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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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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