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심사평…"전통적 사유를 현대의 몸에 받아들여, 현실을 생생히 앓아낸 시집"

  • 이영광·김사인 시인, 정과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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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2 08:05  |  수정 2023-01-0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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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9일 영남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제6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왼쪽부터 이영광·김사인 시인, 정과리 문학평론가)이 수상작 선정을 위해 논의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여덟 분의 시인들이 펴낸 아홉 권의 시집들을 검토해 '제6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의 수상자를 가리는 것이 본심에 주어진 소임이었다.

하나같이 견실한 성취를 보인 노작들을 두고 숙고를 거듭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우리 시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한데 녹여 개성적인 목소리로 벼려낸 신미나 시인의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창비·2021)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신미나의 시적 사고는 세상 가득한 결여와 고통을 응시하고 체험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세목들은 아픈 사람들, 죽은 사람들을 비롯해 자본주의 문명과 체계의 야만에 의해 억압받고 신음하는 뭇 생명의 현재에 두루 걸쳐 있다. 화자 스스로가 이 억압의 수난자가 될 때가 적지 않지만, 그의 괴로움이 타자들과의 연관 속에서 생겨나고 그들과의 지난한 대화와 동병상련의 연대 위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향하는 것은 한결같다.

이것이 흔연한 시적 성취를 얻는 것은 물론 정해진 방향이나 분명한 대답을 믿기보다 절실한 헤맴과 모색의 과정을 기록하려 애써서이다. 시를 쓰는 영혼의 상태와 시 쓰기의 방법은 어긋나지 않는다. 신미나는 알려진 데서 해답을 가져오지 않고 제 속의 모르는 곳에서 문제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말한다.

그래서 정황과 세부는 자주 생략되고 말수는 줄어든다. 장소와 시간, 인물과 사물들은 낯설게 조직되고, 행간의 긴장 어린 빈틈들에서 생소한 이미지들이 솟아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알지 못했던 인간의 얼굴들이나 목소리들에 가깝다.

신미나 시의 농경적 배경과 체질은 이 시집에서 다른 차원, 즉 토속적 환경에 깃든 속신의 전통과 불교적 사유와 혼융하여 새로운 정신적 경지를 여는 것 같다. 예컨대, 화자는 죽은 할머니를 '마고'할미로, 잃은 '아기'와 '언니'를 운명의 어린 희생자로 변형시켜 설화적이고 무교적인 상상의 무대를 펼친다.

고통의 인간적 처리를 위한 이 무대에서 화자는 현실과 이계 사이의 중계자가 되어 저편의 말을 이편으로, 이편의 사연을 저편으로 전달한다.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에너지로 하여 이 무대는 섬뜩한 꿈과 환상에 젖는가 하면, 온갖 심리적 뒤틀림과 정신적 착란을 동반한 싸움터가 된다.

마고가 '신'으로, 아기와 언니가 생명적 존재 일반으로 확장되는 지점들에서, 화자는 있는 신을 부인하기도 하고 없는 신에 기대기도 하는 것 같다. 이 거짓 없는 혼란은 그러나, 넋두리와 춤사위의 리듬 속에서 구원의 처연한 증표인 사랑을 불러온다.

'인간의 믿음'이 '신의 의심'에 우선하는 자리에서 불현듯 '각을 지운 사랑'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사랑에는 파국이 없으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라 요약될 터이다.

전통적 사유를 현대의 몸에 받아들여 지금 여기의 현실을 생생히 앓아낸 데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 신미나 시인이 현실과 현실 너머를 엄하게 거두어 더 깊은 곳으로 길을 내길 바라게 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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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김사인 시인, 정과리 문학평론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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