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김봉규·이춘호 기자가 본 세상 (2)

  • 노진실,윤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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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4 08:49  |  수정 2023-02-24 09:00  |  발행일 2023-02-24 제34면
김봉규 기자 "다양한 인생 고수들과 만남 기회 큰 복…더불어 사는 마음, 내 행복으로 이어져"
이춘호 기자 "달구벌 맛과 멋·포크문화와 함께한 여정…신문·책, 삶에 가장 중요한 두개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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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김봉규(왼쪽)·이춘호 기자

▶본인의 기자 인생을 소개한다면.

△김봉규 기자, 이하 '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절반 넘게 기자로 살았는데, 기자로서 보람도 느끼며 즐겁게 일했던, 행복한 삶이었다. 영남일보 입사 전 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때 법학을 공부했는데, 재학 중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졸업 후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 국내 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입사 후 몇 개월 지나 사법고시 1차 시험 날짜가 공표되자, 고시에 합격하겠다는 것보다는 그동안 해온 공부에 대한 미련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에 사직을 하고 다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1차 시험 합격으로 그치자, 미련 없이 다시 취업했다.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에 1년 정도 근무하다 사직 후 다시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해 근무했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다. 4년 정도 근무하던 중 복간한 영남일보에 논설위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입사 후 논설실과 편집국을 오가며 근무하게 되고, 편집국 기자로는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기자와 부장으로 근무했다. 미술과 음악, 종교 등을 담당하면서 특히 미술과 음악을 오래 담당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예술가, 구도의 길을 치열하게 걷고 있는 훌륭한 성직자 등 많은 인생 고수를 만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었다."

△이춘호 기자, 이하 '이'= "대구로 내려오기 전 한 언론사의 서울 정치부 기자로 일을 했다. 대구로 내려온 뒤 문화부 기자를 했다. 그때부터 '새로움을 찾아서'란 연재 코너를 통해 전국의 기인을 찾아 순례를 했다. 2000년 영남일보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경북경찰청도 출입했지만 나는 특종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사회부 기질이 부족했다. 많이 고심을 했고 방황을 했다. 그러다가 내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만나 일제강점기 대구의 향토사를 깊숙하게 연구할 수가 있었다. 그 과정에 대구의 명물 따로국밥의 식품인문학적인 탐구를 하게 된다. 4년간 대구경북 식품향토사를 엮어나갔다. 그 일환으로 출간된 게 '달구벌의 맛과 멋'이다. 향토음식을 파고들면서 음식 전문기자 겸 여행작가적 포스를 지닐 수 있었다. 대구와 경북의 주요 노포(老鋪) 그리고 각 고장의 대표적 향토음식의 연대기를 찾아서 주유산천을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지방 일간지 기자 중에서는 처음으로 음식 전문기자의 영예를 얻게 된다. 또 음식과 함께 대구의 포크문화사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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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그 어떤 직업보다 주인공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
대구가 낳은 서화가 석재 서병오·동추사랑방 연재 보람
대구경북은 문화·예술 토양 풍부…가끔 답답함 느낄 때도
팬데믹 겪으며 홀로 살 수 없는 세상 배워, 배려·겸손 중요






▶그동안 많은 기사를 써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이= "내가 전문기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당초부터 승진에 1도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다. 나는 영남일보로 온 이후 주말섹션 부서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기사는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무려 4년간 단 하루로 쉬지 않고 이어진 '달구벌 추억기행'과 '경상도 맛길기행'이다.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먼 남편과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무슨 상(賞)을 체질적으로 멀리했다. 상을 겨냥하고 내 공적서를 적어본 적이 없다.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내가 대견스러웠다. 영원한 이등병 이춘호로 살아온 것 같다."

△김= "어느 한 분야에 천착한 것은 아니지만, 전통문화와 예술, 풍류 등에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지금은 이 시대의 미술과 음악 등 예술도 물론 좋아한다. 그동안 오래된 길과 숲, 미술작품 이야기, 종가 문화와 음식, 선비들의 삶, 선사들 수행 이야기, 산사(山寺)의 미학, 옛 현판 이야기, 선비들의 구곡(九曲) 이야기, 누각과 정자, 선비들 사랑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연재 기사를 끊임없이 써왔다. 특히 보람을 느낀 주제는 '석재 서병오'다. 대구가 낳은 걸출한 서화가 서병오(1862~1936)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미술 담당 기자 시절, 대구의 많은 미술가와 지식인이 석재 서병오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기사를 통해서라도 꼭 조명을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모으며 준비한 후 2011년 총 30회에 걸쳐 연재를 했다. 그리고 기명 칼럼 '동추 사랑방'을 2008년부터 5년 동안 매주 연재했는데, 의외로 정말 많은 독자가 메일이나 전화로 호응을 해줘 글 쓰는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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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섹션부서 계속 머물며 지방지 첫 음식전문기자 영예
4년간 에너지 쏟은 달구벌 추억기행·경상도 맛길기행 애정
대구의 영광·좌절 동시에 맛봐…언젠가부터 왜소해진 느낌
폰은 인류 희망이지만 절망만 주는 '新 판도라 박스' 될수도





▶기자라는 직업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김=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기자로 살았는데, 후회한 적은 없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왜 신문사로 와서 고생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만족하는 삶을 사느냐 여부의 관건은 무엇일까.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주인으로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이든 그것의 노예가 되어 산다면 삶이 즐거울 수가 없다. 직장을 몇 군데 거친 경험을 이야기하며, 동료나 후배 기자들한테 기자는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떤 직업보다 주인공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부속품이나 소모품, 노예가 아니라. 물론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일간지 기자는 특종을 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데 나는 지난 세월 동안 특종을 해 본 적이 없다. 그게 약점이면서 강점이라 여긴다. 체질적으로 누구와의 경쟁을 싫어한다. 나는 나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알고 싶은 영역을 긴 호흡의 다큐멘터리로 밝혀내는 게 목적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처럼 천착하고 밝혀내는 그 흐름 자체가 나에게는 최고의 위안이었다. '가장 무명스러운 게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기자에게 '대구'는 어떤 매력의 도시였나. 반대로, 대구라는 공간적 제약이 답답한 적은 없었나.

△이= "나는 대구의 영광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았다. 한때 서울에서 생활을 했지만 내 삶의 종지부는 대구에서 찍을 것 같다. 대구는 언젠가부터 너무 왜소한 도시로 변한 것 같다. 하지만 과거 대구는 문화예술의 전진기지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 "고등학교 이후 대구에서 살았다. 다른 도시는 잘 몰라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대구경북은 문화와 예술의 토양이 풍부하고 분야마다 뛰어난 예술인이 많은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구만의 특성이라고 하기는 무리일지 모르겠으나, 가끔 옹졸하고 폐쇄적인 분위기 때문에 답답함이나 안타까움을 느낀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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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왼쪽)·김봉규 기자가 영남일보 사옥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인생의 책 혹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

△김= "사람마다 기질이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좋아하는 책이 다를 것이다. 나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책은 20대 후반에 탐독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이기영 번역)이다. 인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매우 크게 와 닿았던 책이었다. 추천할 책으로는 중국 명나라 홍자성이 썼다는 '채근담'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꼽고 싶다. 몇 년 전에 출간된 '사피엔스'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 생물학과 역사학 등을 결합해 큰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채근담'은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동양사상을 기본으로 한 내용이지만, 삶의 지혜를 담은 다양한 글귀가 현대인의 삶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무기가 있다. 그건 신문과 책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책은 그 변화의 본질이 뭔가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다. 사서삼경 그리고 불경과 성경, 노자 도덕경과 장자, 이것들은 지식이 지성으로 숙성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이어 소설로 방향을 튼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유리알유희', 소로우의 '월든',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등. 그리고 시인을 만나야 된다. 김수영, 서정주, 김춘수, 김지하, 장정일, 최승자, 박남철…,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천체물리학의 백미랄 수 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리고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까지 뇌관으로 장착해야 한다."

▶갈수록 '양극화' '계급화'가 더 심해진다는 느낌이다. 또 대다수 현대인은 사회 시스템 속에 부속품처럼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 "스마트폰이 몰고 온 세기말 징조를 경계한다. 걸어가다가도 문득, 누워 자다가도 문득 쳐다보는 저 액정화면, e메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블로그 등이 위성처럼 내 주위를 돈다. '폰'이 인류의 희망이겠지만 어쩌면 절망만 남기는 '신(新)판도라 박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또 가끔 정치라는 게 CCTV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은밀한 눈빛의 카메라는 인상착의만 볼 뿐 절망과 슬픔은 못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 "서로 도우며 더불어 잘 살려는 마음이 중요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지속하고 행복의 질을 높여가는 길임을 알면 좋겠다. 약자가 살아남지 못하면 강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부자와 빈자, 고용주와 피고용자, 여당과 야당,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모와 자식, 강대국과 약소국 등 모두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여실히 경험했듯이, 우리 모두는 홀로 살아갈 수 없고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신의 힘이 강해질수록 인간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글=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사진=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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