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먹지 못할 이유

  • 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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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5  |  수정 2023-05-15 07:22  |  발행일 2023-05-15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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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 (시인)

나는 못 먹는 게 많다. 일단 부위가 느껴지는 것은 안 먹는다. 닭발은 물론이거니와 닭 날개, 닭 다리도 먹지 않는다. 나와 치킨을 먹는 사람이라면 "오예!"를 외칠지 모르겠다. 물에 들어간 닭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회도 못 먹고 어탕국수, 곱창, 막창 등 남들 다 맛나다고 하는 것들을 먹지 않는다. 내가 비건이거나 그래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나는 일단 부위가 느껴지는 것은 상상의 영역이 먼저 작동한다. 저 닭의 발은 땅을 밟고 걸었겠지, 날개는 푸드덕 날갯짓을 했을 테고, 울대는 꼬끼오 울음소리를 내었겠지 등 식재료 이전에 이들의 삶이 낱낱이 느껴져 먹을 수가 없다.

내가 특별히 비위가 약한 탓도 있지만, 닭들이 금방 낳은 따스한 알을 손에 쥐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활어회의 경우 입안에 넣으면 일단 씹히질 않는다. 입안에서 맴돌다 꿀꺽 삼킬라치면 저 밑에서 "우웩!"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남의 생살을 먹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먹는 사람을 혐오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세상에 먹을 것은 많고 굳이 삼켜지지 않는 것까지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나의 식습관을 아는 친구들은 "수현씨 이건 먹지?"라고 내게 먼저 의사를 물어온다. 나는 "네네. 전 아무래도 괜찮으니 여러분 가고 싶은데 가셔요" 라고 대답한다. 그러다 결국 내가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골라주는 고마운 분들도 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내게 바삭하게 구운 명태 같은 걸 내밀었다. 맛도 딱 명태 맛이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그 맛은 입맛을 다시게 했고 아버지는 그런 내가 귀여웠던지 꼬치에 끼워진 명태를 내게 내밀었다. 입안으로 꿀꺽 고소함이 다 넘어가기 전에 "너 그거 뭔지 아나?" 야릇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소한 명태로 알고 먹었던 건 뱀이었다. 그 후 뱀에 대해서라면 무서움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내 시에 자주 나오는 뱀은 어쩌면 내 무의식에 잠재된 죄책감에서 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문학이라는 것은 결국 죄의식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호명으로 정화하는 작업인 듯하다. 뱀도 먹은 내가 이것저것 가리는 걸 보면 그날의 뱀 구이가 내게 준 벌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는 이 는 주말마다 유기견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간다. 개고기를 즐겨 먹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의 마음으로 주말을 반납한다고. 나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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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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