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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878년 6월23일 독립지사 김동삼이 태어났다. 그는 1907년 협동학교 설립 참여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1911년 서간도로 망명했고, 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등과 함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1919년 서로군정서 참모장, 무오 독립 선언(39인), 1925년 정의부 참모장 등을 맡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31년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독립기념관에 그의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유교적 학식도 대단했지만 '만주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기질 또한 용맹했던 그는 눈물겹도록 장엄한 유언을 남겼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김동삼 어록비 앞에 설 때, "정신 바로 박힌 사람(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이라면 어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국사기에 문무왕의 유언이 실려 있다. 문무왕은 "임금도 죽으면 결국 한 무더기 흙을 이루게 된다. 초동과 목동들이 위에 올라 노래 부르고 여우와 토끼들이 옆에 구멍을 뚫는다. 큰 무덤은 재물만 허비하고 헛되이 인력만 괴롭힐 뿐 죽은 사람의 넋을 구제하지는 못한다"면서 당부했다. "내가 절명하면 열흘 후 궁문 밖 뜰에서 인도 의식에 따라 불로 태워 장사하라!"
정철은 문무왕의 유언을 최초의 사설시조 '장진주사'로 형상화했다. 본래 행이 없지만 읽기 편하게 구분해본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가며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매어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찌하리"
문무왕도 김동삼도 자연의 섭리를 유언으로 말했고, 문학가 정철조차 노골적으로 찬란한 상여와 웅장한 무덤의 무의미를 지적했다. 그래도 호화 장례와 거대 묘소로 삼천리 금수강산이 메워지고 있다. 세속적 가치관은 요지부동일 뿐이다.
공자는 "유상지하우불이(唯上知下愚不移)"라 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스로 최고 현자 또는 최악 몽매를 자인하는 사람은 없으니, 결론은 자명하다. 사람은 끝없이 변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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