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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936년 6월30일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됐다. 당시 미첼의 나이 37세였다. 그녀는 남북전쟁 배경의 이 소설을 10년에 걸쳐 집필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첼에게 1937년도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 미첼은 그 후 전혀 소설을 발표하지 않았고, 1949년 세상을 떠났다. 소설 제목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49세에 고통사고로 불의의 죽음을 맞은 미첼의 타계는 그녀의 가족은 물론 세계 문학 애호가들에게도 깊은 비통을 남겼다.
누군가의 죽음은 다시 그를 만날 수 없게 하는 우주의 섭리가 살아남은 자에게 실현되는 순간이다. 따라서 죽음은 일반적으로 살아남은 자에게 슬픔을 안겨준다. 그런가 하면, 언뜻 이해하기 힘든 호상이라는 어휘도 있다.
미첼과 같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아버지(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현진건은 소설 '할머니의 죽음'에 호상 이야기를 담았다. 호상(好喪)이라면 유족들이 좋아하는(好) 장례(喪)라는 뜻이다. 가족 누군가가 죽었는데 그 유족들이 좋아하다니.
'할머니의 죽음'은 집안 큰 어른 82세 할머니가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며 삶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할머니는 주인공이 못 된다. 자신의 생명이 마감되는 그 짧은 시간에도 할머니는 객체일 뿐이다.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후손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속히 장례를 치른 뒤 생업에 복귀하기를 갈망한다. 할머니 본인의 뜻과 아무 관계 없이 후손들은 망자의 죽음을 호상으로 치부할 심산인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탓에 우리나라에는 그런 일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는 죽음 없이도 가족이 이산되는 사례마저 많다. 1983년 6월30일 KBS-TV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처음으로 전파를 탔다. 이런 방송은 우리나라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기에 가능한 세계적 희귀 사례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네스코는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금옥여중·고 설립자 백금옥 여사 전기도 가족 이산의 슬픔을 보여준다.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어린 두 여동생이 "홀어머니와 언니의 짐이 될 수 없다"면서 자발적으로 가출을 해버린 탓이다. 전쟁, 가난, 질병 등등 인간소외를 일으키는 주범들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은 언제나 오려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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