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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자민<오른쪽> 학생과 동생의 모습. |
새벽 6시 "따르릉따르릉~"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 "엄마, 무슨 일이에요?" "외할머니께서 뇌를 다치셨대."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그 순간은 너무나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그게…. 외할머니께서 아침 일찍 나가셨다는데 밤 10시까지도 연락이 안 되었다는구나. 나가시고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그래서 겨우 새벽쯤 찾게 되었는데 병원에 가보니 머리에서 기억을 하는 부분을 좀 다치셨다는구나. 그래서 연락처도 연락하는 것도 순간 모두 잊어버리셔서 그 순간 그 장소에 그렇게 웅크리고 계셨다는구나."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은 모두들 일제히 정지상태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경대병원으로 달려가셨고 아직 어린 우리는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검사와 치료를 위해 그래도 큰 곳으로 가자는 식구들의 의견에 서울로 다시 검사하러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외할머니 다치셨단 갑작스러운 소식
온 가족 속 타들어가는 시간 보내
차츰 나아지는 외할머니 기억도 회복
사고 난 지 3년만에 다같이 꽃구경
가족들 건강함에 감사한 마음 커져
그 사건 후 우리 가족은 좀 더 자주 외할머니댁에 방문했다. 외할머니집에서는 엄마와 형제들 간 다툼이 자주 일어났고 나와 동생은 외할머니와 기억력 놀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를 포함한 형제들은 모두 4명. 아무리 인원이 적다고 하더라도 의견이 모이기 어려운데 4명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다툼이 싸움으로 번져가기 일쑤였다. 나는 그때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싸움을 하지 말고 말로 하라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말로 하지 않고 목소리가 높아져 다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얘기를 했을 때 모두들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끼어들면 안 돼. 알겠지? 할머니하고 같이 놀고 있어. 아니면 뭐 먹고 있든지" 라고 말씀하셨다.
외할머니께선 시골 깊은 곳에서 사셨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 전엔 많은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고 결혼 후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신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안타깝다고 하셨다.
생각의 차이는 컸지만 엄마께서는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외할머니의 아픔에 너무 가슴 아파하셨다. 수시로 엄마께서는 외할머니를 위해 가볍고 따뜻한 옷 그리고 좋은 옷, 외할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색상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 중에 좋은 것을 해드리고 싶어 하셨다.
시간이 그렇게 계속 흐르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츰 외할머니는 나아지셨고, 나를 보시며 "자민아, 많이 먹고 많이 뛰어야지 외삼촌만큼이나 키가 클 수 있어"라고 계속 말씀을 하셨으니 말이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외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나아지시고 많은 기억이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가게 되는 서울 병원 가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입이 입꼬리까지 올라가 외할머니께서 건강하시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외할머니의 전화라도 오면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아서 외할머니 말씀을 잘 들으며 지내는 시간이 생겼다. 나와 동생의 이름을 기억하셨고 우리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가 나아지고 있는 순간이 마치 서서히 찾아오는 봄처럼 우리 가족의 마음으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 3년이 되었고 봄을 맞아 꽃구경을 갔다. 외할머니와 수목원에 가서 봄나들이를 하기도 하였다. 외할머니께서 좋아하는 꽃도 보았고 맑은 공기를 숨 쉴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예전 어릴 때 추억을 되살리듯 야생화들을 보시며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그 순간 번쩍 하고 드는 생각은 '우리 가족들이 더욱더 건강해지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였다.
다 같이 모여서 식사도 하였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두에게는 소중한 하나의 추억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외할머니에 대한 좋은 추억 중에 하나로 앨범 한자리에 하나의 사진이 또 걸리는 순간들인 것이다. 외할머니도 우리 가족도 이러한 순간은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외할머니의 아픔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된다. 외할머니로부터 가족이 다시 한번 더 완벽한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돌아보니
"외할머니께서 건강을 무사히 회복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이 다시 한번 더 완벽한 가족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사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공기를 가져다주는 그러한 하나의 생각인 것 같다. 내가 소중한 하나에라도 더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서 감사한다고 인사를 하게 될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1㎝나 더 자라게 되는 것이다.
외할머니로부터 얻은 점은 매우 많은 것 같다. '새삼스럽게 감사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된 계기였을까?' 내 삶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계속 생기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을 쉴 수 있어서 감사하고, 우리가 건강해서 감사하고, 나라는 소중한 존재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 같이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일이 많다. 이렇게 항상 나와 함께 숨 쉬는 것처럼 말이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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