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엔 이제 땅이 없어요"…터전 떠나는 2차전지 업계

  • 최시웅,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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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3 20:01  |  수정 2023-08-14 07:22  |  발행일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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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은 LS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2차전지 투자협약식'에서 새만금산단 투자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동해안에 2차전지 공장 지을 부지 더 없나요."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의 '땅' 확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산업 특성상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바다 인근에 공장을 지어야 하지만 국내 여유 부지가 거의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중국 기업까지 땅 확보전에 뛰어 들고 있어 2차전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부지확보 전쟁부터 이겨야 할 판이다. 이런 가운데 2차전지의 메카를 꿈꾸는 포항에서 산단 확장이 추진되고 있어 주목된다.


◆새만금·광양으로 눈을 돌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전북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2차전지 투자협약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 세계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으로 부상한 2차전지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2차전지는 소재에서부터 완제품까지 든든한, 아주 튼튼한 산업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2차전지 관련 기업 집적화가 용이한 새만금은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새만금 투자협약식의 주인공은 대구를 기반으로 한 2차전지 양극재 기업 엘앤에프였다. 엘앤에프는 LS그룹과 손잡고 새만금국가산단에 1조8천400억원을 투입해 전구체 생산공장을 짓는다. 연내 착공해 2029년까지 12만t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전구체는 핵심소재로 양극재 생산단가의 70%나 차지한다. 그동안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소재 가운데 하나였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을 위해선 내재화가 필수인 상황이다.


포항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에코프로그룹 역시 엘앤에프와 같은 목적으로 새만금에 발을 디뎠다. 전구체 생산 계열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배터리 전문기업 'SK온', 중국 전구체 기업 'GEM(거린메이)'과 함께 총 1조2천억원을 투입해 새만금에 10만t 수준의 전구체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2025년 1공장, 2027년 2공장 가동이 목표다. 포항의 터줏대감 포스코그룹도 2차전지 사업을 더 확장하기 위해 전남 광양으로 향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광양에서 양극재 공장을 돌리고 있는 포스코퓨처엠은 인근에 4만5천t 규모의 전구체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광양에 배터리 원료, 중간소재, 양극재를 모두 생산하는 '배터리 소재 풀 밸류체인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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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2차전지 중심 포항은 포화상태
국내 2차전지 양극재 생산 1위 기업인 에코프로는 포항 영일만산업단지 내 약 10만평 부지에 '에코 배터리 포항캠퍼스'를 운영 중이다. 또한 영일만산단 5만 평 부지에 에코프로비엠(양극재), 에코프로머티리얼즈(전구체), 에코프로CNG(폐배터리 리싸이클), 에코프로AP(산소, 질소) 공장을 짓기 위해 토목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을 중심으로 △삼성SDI와 합작 설립한 에코프로EM △에코프로이노베이션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에코프로CNG△에코프로AP 등 에코프로그룹 모든 계열사가 이곳에 모여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영일만산단에 양극재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영일만산단에 집접화를 노렸지만 용지 부족으로 포항 블루밸리산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스코퓨처엠은 블루밸리산단에서 음극재 생산시설과 중국 화유코발트와 신규 합작법인을 설립해 2차전지 소재인 니켈 정련 및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2차전지 소재 생산 기업의 거점이 된 포항영일만산단의 용지 분양률은 100%에 이른다.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2차전지 소재 공급으로 인해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은 포항 남구에 있는 블루밸리산업단지로 눈을 돌려 신규 공장을 추진 중이다. 이로 인해 현재 블루밸리산단 1단계는 이미 분양이 완료됐고, 현재 건설 중인 2단계 용지는 31만평의 여력이 남아 있는 상태다. 국내 최대규모 양극재 생산 능력을 구축한 기업이 포항에 터전을 마련함에 따라 관련 기업들이 포항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용적률 상향과 산단확장 '기대'
2차전지 관련 시설은 원료·핵심소재 제작 및 배합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 처리 때문에 해안에 공장을 짓는 것이 유리하다. 대구가 2차산업 적정부지로서 한계에 봉착하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포항은 입지를 살려 산업 초기 에코프로와 포스코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덕에 국내 최대 생산기지로 자리 잡는 행운을 누렸다. 그렇다고 추가 투자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더 지을 땅이 없다는 점이다. 2차전지 업체들이 새만금과 광양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포항엔 인프라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어서 업계 선호도가 높은데, 여유 부지가 없다. 현재 블루밸리국가산단은 우리와 포스코퓨처엠이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이 마지막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차전지 관련 공장을 지으려면 최소 9만9000㎡(약 3만평) 규모의 부지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안에 자리 잡은 산단 부지의 경우 대기업들이 이미 대거 확보한 상태여서 남는 부지가 거의 없다. 새만금 산업단지(18.5㎢)도 마찬가지. 매립이 완료된 1·2공구와 연내 매립 예정인 5·6공구를 통틀어 잔여부지가 16만5000㎡(약 5만평)가 채 안 된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이 IRA 회피를 위해 한국으로 진출하면서 땅 부족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중국 '화유코발트'는 LG화학과 손잡고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포스코홀딩스와는 광양에 배터리 리사이클링 공장을 설립한다. 중국 양극재 기업 롱바이는 단독으로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새만금과 광양 쪽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도 포항을 원했지만, 땅이 없거나 규모가 작아서 포기한 걸로 안다"며 "부지 경쟁이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달 영일만산업단지와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일원 1천144만㎡(약 347만 평)가 2차전지 양극재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됨에 따라 공장 용적률이 1.4배 상향된다는 것이다. 또한 특화단지 지정으로 인해 이들 산단 인근에 추가로 산업단지를 지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포항시 관계자는 "2차전지 기업인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이 포항 영일만산단과 블루밸리산단에 집적화하면서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포항에 몰림에 따라 산업용지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포항시는 이들 2곳 산업단지 확장을 위한 용역을 올해초부터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산업단지를 추가로 확장할 수 있도록 전력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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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포항시청에서 2차전지 소재기업인 에코프로그룹이 경북 포항에 2조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면서 경북도·포항시와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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