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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심의를 거쳐 재능TV에서 방영된 만화애니메이션 '원피스.' 도검이 까맣게 먹칠돼있다. 인터넷캡처 |
1997년부터 연재 중인 해적 만화 '원피스'가 2003년 TV 애니메이션으로 KBS 2TV에서 방영됐다. 심의를 거치면서 수정된 부분이 있다. 담배는 사탕이 됐다. 현재도 그렇지만 지상파에서는 흡연 장면이 나오는 걸 금하고 있다. 연령층도 어린이부터 청소년이니 이를 고려했을 것이다.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던 것은 바로 흉기다. 삼도류(三刀流)의 해적사냥꾼 조로는 새까만 막대기 세 개를 휘두르고 있다. 해적을 잡으러 온 해군 병사 역시 까만 몽둥이를 들고 있다. 사실 이것들은 날카로운 검이다. 심의 과정에서 칼과 도끼와 같은 도검류의 무기는 모두 검게 칠해졌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까만 먹칠이 더 뜬금없다고 여겨진 이유는 흉기의 종류도 한몫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검이었다. 검도장 관장님이 도장에 걸어두는 사진에나 있을 것 같은 그런 검들이다. 같은 이유라면 장총이나 권총도 까맣게 칠해야 했는데 총기류는 흉기로 보지 않은 모양이다. 2003년엔 기자가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이 칼이 위험한 물건이라는 걸 모를까. 과도한 심의가 만화를 보는 데 방해요소가 됐다. 흉기가 다른 뜻으로 '흉하게' 보였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그 자동차들을 몇몇 네티즌은 '흉기차'라고 부른다. 급발진을 비롯한 불량 이슈가 생길 때마다 '흉기차'라는 호명(呼名)이 되풀이된다. 요즘은 자동차를 소개하는 블로그에는 맥락도 없이, 자동차 디자인을 놓고 "역시 흉기차"라는 등의 비하 댓글이 달린다.
살인예고 게시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14일 오전까지 검거된 살인예고 글 작성자 149명 중 절반가량인 71명이 10대였다. 한 번 등장한 살인예고 게시물이 장난처럼 여겨졌다. 자주 보이거나 들리면 흔해진다. 살인예고가 흔해졌고 별다른 죄의식 없이 그런 무지막지한 글을 쓴 것이다. 흉기나 '흉기차'라는 호명 역시 흔해졌고 무뎌졌다.
만화 속의 도검에 먹칠을 한 것이 20년이 지나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흉기에 대한 의식이 무뎌져도 흉기가 정말 무뎌지지는 않는다. 비행기에서는 손톱깎이도 흉기다. 일상에서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미디어 속 도검에 온통 먹칠을 할 필요도 없다. 다만 흉기가 지금보다 흔해지거나 흉기에 대한 생각이 무뎌지지 않기를 우리 사회는 원할 것이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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