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 (2) '야구 덕후' 부부가 다이아몬드보다 아끼는 것, 삼성 라이온즈 KS 우승 20주년 기념반지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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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6 07:42  |  수정 2024-01-27 15:24  |  발행일 2024-01-26 제12면
카페 지점명에 '베이스볼' 넣을 정도로 덕후
손님들도 야구 덕후일때 친구 만난 듯 기뻐
문화예술에 심취한 덕후는 '원정 관람'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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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씨가 아끼는 삼성라이온즈 관련 애장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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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씨 부부가 모은 야구 관련 물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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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야구를 좋아해 온 이정화씨가 운영하는 카페. 많은 사인볼과 굿즈들이 깔끔하게 전시돼 있다.

◆야구는 '사랑'입니다

대구 북구에 위치한 '달다구니' 카페는 지점 이름부터 독특하다. 보통 카페 지점명에는 지역이나 동네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이 카페의 지점명은 '칠곡베이스볼점'이다. 대체 그 카페에 왜 그런 지점명이 붙게 됐는지 궁금했다. 옛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나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와 인접한 위치도 아니고,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됐다. 그곳이 야구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알고 보니 카페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은 사장님 부부의 '사랑' 때문이었다.

동갑내기 부부인 이정화·장수진(53)씨는 둘 모두 야구를 사랑하는 엄청난 '야구팬'이다. 사랑하는데 불가능이 어디 있을까. '베이스볼'이 들어간 파격적인(?) 지점명도 그들의 지극한 사랑으로 인해 탄생하게 됐다.

카페 사장 이정화씨는 "우리 부부는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은퇴하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즐기다 갈 만한 작은 카페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며 "그래서 이 카페 지점명에 '베이스볼점'을 꼭 넣고 싶다고 본사에 간곡하게 부탁하고 설득했다. 카페 인테리어도 야구와 함께하는 분위기로 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카페를 찾은 야구팬들은 '친구를 만난 듯' 기뻐한다고. 어디선가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발견하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말이다.

카페에 전시된 사인볼과 사인 배트, 유니폼, 야구 굿즈 등은 모두 이씨의 가족이 모으고 소중하게 보관해온 것들이다. 삼성 라이온즈를 비롯해 다양한 팀 선수들의 사인볼, 류중일 감독의 사인이 담긴 야구 배트, 피렐라 선수의 야구화, 추신수 선수의 사인이 들어간 모자…. 부부가 하나, 하나 추억이 서려 있는 애장품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여러 애장품 중 부부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이씨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것은 '삼성 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 20주년 기념 반지'다. 야구팬에겐 그 반지가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더 귀한, 대대손손 물려줄 물건이라고 했다.

이승엽·양준혁·오승환 선수의 사인이 있는 유니폼 액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물건이었다. 액자도, 사인 위에 놓은 자수도 모두 대구지역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것이라고. 언젠가 이만수 선수의 사인 유니폼 액자를 걸기 위해 한 자리는 비워놨다고 한다.

회사원인 남편 장수진씨는 "대부분 우리 가족이 고생해서 모은 것들인데, 일부 지인이 선물해주신 것도 있다. '우리 집에 있으면 그냥 굴러다니는 야구공인데, 당신들에겐 보물이 아니냐'며 선물을 해줬다"며 "감사하게도 카페 손님으로 오셨다가 야구 관련 물품을 기증해주신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에게 있어 야구는 인생 그 자체다. 보통 야구팬은 야구 '시즌'이 되면 활기가 돌고, '비시즌'이 되면 차분해진다. 서울 등 다른 지역 구장에 야구를 보러 갔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적도 종종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가족에게는 소중한 추억이라고. 이승엽 선수가 400호 홈런을 치던 때도, 오승환 선수가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를 달성했을 때도 그들은 그 자리에 함께했다. 여름 휴가를 아예 '야구 투어'로 간 적도 있다. 


비시즌에는 시즌 때 야구를 더 즐기기 위해 열심히 살고, 시즌에는 야구가 준 에너지 때문에 열심히 산다. 그게 야구팬이다. 이씨 부부는 비시즌 때 야구가 너무 그리워서 제주도에 있는 야구박물관과 야구장을 찾아 헛헛한 마음을 달랜 적도 있다고. 시즌을 기다리는 야구팬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삶이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야구와 함께였다.

이씨는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몸이 안 좋아서 고생을 했다. 어렵게 아이를 낳고 8개월 만에 유모차에 탄 아이와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장내 아나운서가 시즌 개막을 알리며 '오늘을 얼마나 기다리셨습니까'라고 하는데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눈물이 다 났다"며 "사실 둘째 아이의 태몽도 이승엽 선수와 관련된 꿈이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생후 8개월 때 야구에 입문했던 아들이 나중에 자라서 시구를 한 일이 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우리 가족의 참 자랑스러운 역사 중 하나"라며 설렌 표정으로 말했다.

부부가 이토록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와 야구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이씨는 "야구는 첫사랑 같은 것이다.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리운…. 야구 경기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며 "내가 야구에 빠지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특히 아버지가 스포츠, 그중에서도 야구를 많이 좋아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대구라는 도시가 야구와 인연이 많은 것도 한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장씨는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야구가 좋았다. 1위 팀과 10위 팀이 싸워도 10위 팀이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인 것 같다. 야구는 보면 볼수록 새롭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스포츠"라며 "어린 시절 한 친구가 야구단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그때는 부잣집 애들이나 그런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애들은 모두 '어린이 회원'을 했다(웃음)."

부부에게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물었다. 이승엽, 오승환, 김상수 선수 등을 꼽았다. 그들의 선수로서의 집념과 인간적인 면 등이 좋다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순수한 열정의 대상, 즉 무언가 몰두할 것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씨 부부는 "얼마 전 NC 다이노스의 '꼬마 팬'이 카페를 찾은 일이 있다. 그 아이의 미소처럼 야구는 우리에게 행복이자 활력소다. 응원하는 팀이 성적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런 것을 떠나 우리는 야구, 그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티스트

'문화예술'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사랑은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순간에, 어떤 작품·아티스트에게 빠져들게 될지 나도 모르는 일이다. 클래식이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트로트든, K팝이든 상관없다. 사랑하는데 장르가 뭐가 중요할까.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나오는 공연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인지 공연장에서는 남녀노소 다양한 '덕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근 찾아간 대구의 한 공연장. 뮤지컬 시작 한참 전부터 그곳은 북적였다.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공연장 곳곳에서 아이 같은 미소를 만나볼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무대 위에서 만나는 것은 얼마나 떨리고 즐거운 일인가. 전국 각지로 '원정 관람'에 나서는 것도 그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뮤지컬 대형 포스터와 캐스트 보드 앞에서 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30대 관객은 "평소 좋아하는 배우들이 이 뮤지컬에 출연해서 공연을 보러 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든 적도 많고, 꿈을 잊고 살아간다는 생각도 많이 드는데 그래도 좋아하는 공연을 볼 때면 위안이 된다"라며 "무대는 스크린이나 브라운관과 달리 아티스트와 함께 소통하고 호흡한다는 기분이 들어 더 특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대구의 또 다른 공연장에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피아노 연주회가 열렸다. 그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연주되는 그때가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공연이 끝나고 열린 사인회 때 관객들이 한참 동안 긴 줄을 서는 명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청년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40대 직장인은 "클래식을 즐겨듣는 애호가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곡으로 내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서라도 공연장에 왔다"며 "공연장에서 나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해 놀랐고 반가웠다. 내 나이에 누군가의 사인을 받는 일이 이렇게 신나고 설레는 일인 줄 몰랐다. 잊고 살았던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난 기분"이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글·사진= 노진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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