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모두가 비슷한 것에 '올인'하는 사회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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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9 07:01  |  수정 2024-02-19 11:24  |  발행일 2024-02-19 제22면
교육·입시 이슈 '의대 쏠림' 현상
사회 분위기·불안 반영하는 입시
지난 IMF 트라우마 떠올리게 해
다양한 가치 찾기 점점 힘든 사회
개개인 꿈·적성 되찾는 세상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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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사회부 차장

"인생을 살면서 누구의 눈치를 보랴. 인생을 이끌어 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종교가 없는 기자는 몇몇 작가들의 책을 나름의 지침서처럼 끼고 다니며 한 번씩 꺼내 읽는다. 새해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할 땐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쓴 책을 읽는데, 그 책 가장 앞부분에 나온 문구다.

겐지 선생은 사회의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개인'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 작가는 '득실'을 따지지 않는 인생이야말로 빛나는 인생이라 역설한다. 그런데 그런 인생이 쉽지만은 않으니 문제다. 쉽다면 책 속의 글이 되지도 않았겠지.

이달 초 교육 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먼저 마주한 이슈는 바로 '의대 정원 증원'이다. 정확히는 의대 정원 확대가 입시 등 교육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취재를 해야 했다.

역시나 입시는 사회 변화에 정말 민감한 영역이었다.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다양한 관측과 전조 현상이 잇따랐다.

당분간 의대 쏠림이 심화하고 이공계 이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교육 및 입시업계에서 나왔다. 이는 지방대에도 연쇄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의대 입시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역 한 입시학원에도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의대 입시 관련 문의가 20~30%가량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모두가 적성 때문에 특정 학과나 직업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배경에 다른 이유도 있을 터. 의대 입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니 여러 이유가 거론됐다.

그중 대구의 한 중학생 학부모가 한 답변이 인상 깊었다. "다른 쪽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으니 모두 비슷한 것을 갈망한다." 그는 과거 IMF 사태 이후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때 많은 청년들이 교사, 공무원 등 안정된 직종에 몰려든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학과 및 직업 선택은 사회 분위기와 가치관, 불안, 모순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학부모의 말대로, 1997년 발생한 IMF 사태는 남녀노소 많은 국민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기자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 변화상이 트라우마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꿈'이나 '희망' '적성' 같은 것이 사치스러운 단어가 됐다. 거대한 사회의 위기와 변화 앞에서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였다.

개인은 온전히 한 개인으로만 행복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높은 경쟁률 속에 자신을 내던져야 했다. 그 강렬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그때 사회의 비정함을 목도하고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부모가 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쉽게 일반화하기 힘들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어떤 과열된 현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 변화에 대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사람들이 다른 쪽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모두가 비슷한 것에 '올인'하는 사회, 그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원인 분석과 적절한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자라나는 세대는 세상 눈치 좀 덜 보고, 진정 자신이 원하고 잘할 수 있는 공부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나.


노진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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