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마음을 운전하는 면허

  •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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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0 08:13  |  수정 2024-04-10 08:15  |  발행일 2024-04-10 제19면

이향숙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일상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단톡방에 긴급 메시지가 올라왔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영미씨의 메시지다. 그녀의 아들, 민호는 원인 불명 알레르기 증상으로 일 년에 서너 번은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녀는 정기검진을 앞두고 어린이집 하교 차량 운행을 도와줄 기사를 구했다. 그런데 출발 당일 아침 7시까지도 운전기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행 기차에 탑승하기 전, 이전 통화에서 느꼈던 불안함을 달래고자 영미씨는 운전 기사에게 또 연락을 시도했다.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사와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했다. 평소 에너지가 넘치는 것으로 알려진 영미씨였지만, 아들 민호의 정기검진을 앞두고 염려가 컸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한 달 전까지도 열성 경련으로 앰뷸런스를 수도 없이 탔던 큰애 생각에, 아픈 민호를 걱정하는 영미씨의 염려는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하교 차량 운행을 위해 단 하루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힘들지만 특히, 하교 차량 운행에는 1종 보통 운전면허가 필요했다. 비록 버스를 운전할 계획은 없었지만, 학원비 절약을 위해 20대 중반에 취득했던 운전면허가 이때 큰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영미씨, 나 1종 보통 운전면허 있어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기사의 부재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던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전했다.

'찌지직' 라디오 잡음을 달래며, 오후에 예정된 어린이집 하교 차량 운행을 위해 일정을 조정했다. 하교 운행 20분 전, 하교에 함께할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났다. 운행할 차량 키를 받고 전날 주차해둔 차량을 어린이집 근처까지 가져왔다. 선생님의 안내로 하차할 위치에 아이들을 안전하게 내려주며 운행을 무사히 마쳤다. 긴장으로 인한 갈증이 있었지만, 퇴근길 교통체증을 우려해 바로 집으로 향했다.

영미씨가 정기검진 후 기차로 내려오며 소식을 전했다. 다행히 민호의 검사 결과는 안도의 순간을 가져다주었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딸 민정의 저녁 메뉴를 신경 쓰는 영미씨에게서 진한 모성애가 전해왔다. 그녀가 겪는 지속적인 긴장에 안쓰러웠다. 그녀가 감사하다며 전해준 수박은 그 여름 내가 맛본 첫 수박으로, 유난히도 달콤했다.

이향숙<(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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