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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
유럽의 역사를 흔히 분열과 통합의 역사라고 한다. 끝없는 영토 전쟁이 반복됐다. 거대한 제국, 예를 들면 로마, 나폴레옹 제국에서부터 지금의 경북도 정도인 중세 봉건제후국이 경합하던 시절까지 분열과 통합이 이어졌다. 1·2차 세계대전은 그런 유럽 역사의 꼭짓점이었다. 분열의 유럽은 2차대전 이후 통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바로 EU(유럽연합)이다.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이 작동 중이다.
분열과 통합은 어쩌면 인간 DNA에 내재된 유전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연유는 다소 차원은 다르지만 최근 지역 이슈로 재차 부각된 대구경북통합론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500만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을 주창하고 나섰다. 종합하면 '강력한 TK지방정부론'쯤 되겠다. 그 제안에 윤석열 대통령이 지원방안을 강구해보라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TK통합론을 접한 시·도민들 사이에는 의아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경북도청 이전을 축하한 지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아 재결합설이 나오는 데 따른 혼선이다. 도청 소재지는 2016년 대구에서 안동·예천 신청사로 이전했다. 더구나 홍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대구경북연구원이 대구와 경북으로 분리되고,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도 대구 지분이 빠져나가 사실상 갈라섰다. 대구는 43년 전, 1981년 경북도에서 떨어져 나왔다. 대구직할시다. 일종의 분열이었지만, 이게 도시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열망이 있었다.
불편한 진실이었지만, 도청이 떠난 그해 대구의 경제성장률은 0%,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전국 최하위였다. 당시 도청이 이전하면 상주인구가 1만여 명, 총생산이 수천억 원 감소한다는 추정이 있었다. 2005년 광주에서 전남도청이 분리됐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한뿌리 대구경북이 딴 살림을 차려보니 서로 득이 될 것도 없다는 논리는 근년 들어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권영진 전 시장과 이철우 도지사가 대구경북통합 공론화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세계적 추세가 된 '거대 도시 담론'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메가시티, 메트로폴리탄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지는 시대다. 영국의 그레이터 런던, 도쿄도(都), 뉴욕, 중국의 수천만 대도시가 그렇다.
그렇다고 고민의 지점들이 없는 게 아니다. 통합의 주도권을 어느 쪽이 쥐는지, 그 결과물인 'TK지방정부의 수도'는 어디에 둘 것인지는 민감한 사안이다. 나아가 강력한 TK정부가 들어설 때 그 하부 단위인 포항시나 안동시, 구미시 같은 도시들의 자치권과 지역별 개성은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이는 현재의 3층 구조(중앙-광역시·도-기초자치)로 된 행정·지방의회 체계 개편이란 복잡한 사안과 맞물려 있다. 결정적 관건은 중앙정부의 권력 엘리트들이 그들의 권력을 쉽게 내놓아줄 것인가 여부다.
TK정부론의 대명분은 또 다른 절박한 구석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한민국의 수도권 초집중 현상이다. 인구와 자본, 정치행정권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당겨 비수도권 대한민국은 거의 사막화돼 가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다. 인구소멸은 서울에서 먼 곳부터 밀물처럼 차례로 밀려오고 있다. 강력한 지방정부가 들어서지 않으면 그 밀물은 쓰나미가 될 것이다. 'TK정부', 그 고민의 흔적과 취지는 백번 공감이 간다. 한편 이는 지난한 작업이다. 역사적으로 분열은 쉬워도 통합은 어려운 경험칙이 있다.논설실장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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