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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
우리는 고통을 피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 존재의 본질적인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화살경'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두 가지 화살에 비유해 설명했다. 첫 번째 화살은 외부 요인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고통을 뜻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 모두 그렇다. 인간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사실, 넓게 보면 생로병사 자체가 첫 번째 화살인 셈이다. 반면 두 번째 화살은 다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정신적 고통이다. 우리는 첫 번째 화살을 맞자마자 분노, 후회, 불안, 슬픔 등 온갖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처는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실체가 없는 가상의 고통을 스스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심리적 고통은 해석의 영역이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라도 반응이 제각각인 이유다.
석가모니 역시 첫 번째 화살은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일생은 누구보다도 더한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북인도 카필라 왕국 왕자였지만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29세에 출가해 6년간 혹독한 고행을 했다. 이후 진리를 깨닫고 부처가 됐음에도 불행한 일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주변에는 음해와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교단 장악을 노린 사촌 동생으로부터 세 차례나 암살될 뻔했다. 그가 태어난 왕국도 이웃 나라 침략으로 멸망당했다. 당시 석가모니는 조국의 백성들이 도륙당하는 참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도 짠하다. 80세 노구를 이끌고 진리를 설파하고 다니던 중 제자가 올린 부패한 음식을 먹고 길에서 운명했다. 중생의 눈으로 보면 불행하기 짝이 없지만 석가모니는 삶을 초극했다. 자신이 가르친 대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았다.
사실, 첫 번째 화살은 외부의 사건·사고만이 아니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생각 자체가 고통의 출발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생각과 감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무단히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에 이끌려 들어갈수록 고통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자신에게 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조차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은 심리적 고통 상태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잘 느끼지 못하는 건 오래된 만성병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화살의 진리는 온갖 생각에 찌들어 강박과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더욱 유용하다. 부처가 열반하기 전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설법이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법을 섬으로 삼아라"였다. 자신의 본성을 피난처 삼아 생각(번뇌)의 홍수에서 빠져나오라는 뜻이다.
생각의 부작용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전체 인류가 겪는 기능장애다. 인간 사회의 집단 관념(이념) 중 상당 부분이 허구와 망상으로 채워져 있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정치가 있다. 정치인들은 미래의 꿈을 팔아 현재의 권력을 얻는다. 하지만 그 꿈은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이스피싱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특히 작금의 한국 정치는 이상(理想)과도 정반대다. 갈수록 이상(異常)하고 난폭해진다. 마치 권력에 굶주린 자들의 아귀다툼을 보는 듯하다. 심지어 범죄자들까지 민주주의를 참칭하며 득세하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들이 쏘아대는 독화살에 국민이 입는 상처가 너무 크다.
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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