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윤석열은 국민의힘의 수준인가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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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12  |  수정 2024-11-12 07:00  |  발행일 2024-11-12 제22면
대통령이 치명적 길 나아간다면

배출 정당은 교정할 능력 보여야

당대표가 대통령 생각 바꾸려면

내부의 전폭적 지지 없인 불가능

그걸 알면서 양비론 펴는 건 자해

[강준만의 易地思之] 윤석열은 국민의힘의 수준인가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11월3일 서울시장 오세훈 등 12명의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가 소속돼 있는 국민의힘 시·도지사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의 성공적인 국정 수행을 위해 적극적인 국민과의 소통 및 국정 쇄신이 필요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패권싸움으로 비치고 있는 분열과 갈등의 모습에서 벗어나 당정 일체와 당의 단합에 역량을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평소 양비론을 옹호하는 편이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비론은 갈등을 빚는 양쪽 모두에게 비슷한 무게의 문제나 책임이 있을 때엔 유효한 논법이지만, 그렇지 않고 어느 한쪽에 훨씬 더 큰 문제와 책임이 있을 때엔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입장문의 목적이 당원과 국민을 향해 "우리는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리고자 하는 면피용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명확한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윤석열·한동훈 갈등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이미 내려진 상태가 아닌가. 윤석열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30개월 만에 처음으로 10%대에 진입했음을 알린 11월 1일 갤럽조사에서 윤석열에 대한 부정 평가 이유 1위로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꼽혔다. 이렇듯 누가 달라져야 할지 분명함에도 윤석열은 그간 변화를 전면 거부하지 않았던가.

이런 판국에 대고 "당정 일체와 당의 단합에 역량을 집중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달라져야 할 장본인이 달라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데, 단합에 역량을 집중하라는 건 그 고집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인가? 매우 실망스러웠던 11·7 대통령 기자회견 결과가 일부 반영된 후속 갤럽조사에서 국정지지율은 17%로 떨어졌건만, 여전히 양비론 입장을 펴거나 심지어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여권 인사들마저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게 참 재미있다.

"한동훈 대표가 김건희 여사를 타박하거나 (한남동 라인 정리 등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와닿지 않는다. 한 대표는 검사 시절 김건희 여사와 몇백 통씩 메시지 주고받으면서 굉장히 긴밀하게 지냈고 윤석열 정부 최대 수혜자가 바로 한동훈 (대표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법무부 장관과 비대위원장을 다 받았다. 정치적 커리어를 다 만들어줬는데 그걸 거꾸로 탓한다? 최대 수혜자, 황태자 소리 들었던 당신이?"

개혁신당 의원 이준석이 지난 10월23일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한 말이다. 맞다. 분명히 그런 정서가 있다. 그는 "지금 한동훈 대표 처지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느냐"는 물음에 "뭐 그냥 쌤통이다"고 답했는데, 국민의힘에도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꽤 있을 게다. 그런데 이런 문제 제기는 정서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망정 7·23 당대표 선거에서 62.84%의 득표율로 해소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당을 살려야 할 정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국민의힘 내부에서까지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해(自害)다.

개인적으론 나 역시 한동훈의 그런 행태가 영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한동훈의 '뻔뻔함'을 세대 차이의 문제로 이해하고 넘겨버렸는데, 한동훈(1973년생)과 띠동갑인 이준석(1985년생)의 반응을 보면 꼭 세대 차이의 문제만도 아닌가 보다. 세대 차이 때문이건 아니건, 한동훈을 자유롭게 해줄 멋진 말은 이미 윤석열이 다 해버리지 않았던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그러니 행여 '배신'이니 '배은망덕'이니 하는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한동훈의 죄라면 선배의 명언을 곧이 곧대로 믿은 것일 뿐이니, 비판을 하려면 오히려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할 '멋진' 말을 남발한 윤석열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게 어떨까 싶다. 공사(公私) 구분을 전혀 하지 않아 큰 위기에 몰린 사람이 '공사 구분'을 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영 우습지 않은가.

윤석열은 국민의힘의 수준인가? 국민의힘의 수준을 말해주는 대표적 또는 상징적 인물이냐는 뜻이다. 대통령이 치명적으로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게 분명해 보인다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에 그걸 교정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이건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럴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대통령의 수준이 곧 여당의 수준, 또는 여당의 수준이 곧 대통령의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윤석열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비밀이었다. 부인 김건희의 위험한 '대통령 놀이'를 전혀 통제할 수 없으며 통제할 뜻도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엔 그런 치명적인 문제를 교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올해에도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한동훈이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딱 한 달 만에 윤석열이 한동훈에게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1·21 사태였다. 두 번째 기회는 한동훈이 김건희 사과 논의 문자를 외면했다는 '읽씹' 논란이 7·23 당대표 선거 이슈로 떠오른 7·4 사태였다. 둘 다 김건희가 핵심적으로 관련됐거나 주도했다고 여겨진 사태다.

1·21 사태는 윤석열의 월권, 아니 횡포였다. 그럼에도 당은 사실상 구경만 했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곤 하지만, 이미 윤석열의 횡포에 기를 빼앗긴 탓인지 4·10 총선 전략을 자신의 구상대로 실천하지 못해 참패하고 말았다. '읽씹' 논란은 한동훈에 대한 2차 공격이었지만, 이때에도 내분만 벌였을 뿐 부당한 선거 개입을 응징하지 못했다. 총선 참패와 '읽씹'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이 7·23 당대표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은 당내에 총선을 말아먹은 장본인이 윤석열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단지 그것뿐이었다. 당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당대표가 대통령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양비론을 펴면 어쩌자는 건가? 역사는 반복되는가? 8년 전 2016년 4월 총선 패배 이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갱생 기회는 있었건만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운 대통령 충성파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런다면 행여 나중에 그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윤석열을 원망할 수 없다. 그는 국민의힘의 수준을 정확히 보여준 인물이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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