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플라스틱 작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박정미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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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22  |  수정 2025-01-22 08:06  |  발행일 2025-01-22 제20면

[문화산책] 플라스틱 작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박정미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 과장)

현대미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다채로운 색감과 가벼운 무게, 그리고 유연한 가공성 덕분에 매력적인 재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 휘어짐, 부서짐 등 열화(劣化) 현상이 발생한다. 열화는 재료가 시간·환경·화학적 작용에 의해 물리적·화학적 성질이 저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일상에서 오래되고 방치되었던 플라스틱 용품을 만졌을 때 끈적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플라스틱의 유연성과 가공성을 높이기 위해 첨가한 가소제(Plasticizer)가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으로 스며 나오거나 휘발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플라스틱 작품 보존의 필요성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다. 유럽연합(EU) FP7 지원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POPART Project'(Preservation of Plastic Artefacts in Museum Collections)는 플라스틱 유물 및 현대 미술 작품의 보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연구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플라스틱 열화 과정을 연구하고, 표준화된 보존관리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였다.

플라스틱은 종류에 따라 특성과 수명이 다르다. 폴리염화비닐(PVC), 폴리우레탄(PU), 폴리카보네이트(PC) 등 다양한 플라스틱이 현대미술에서 활용되며, 각각 고유한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가진다. 특히 FRP(Fiber Reinforced Plastic, 섬유 강화 플라스틱)는 내구성과 경량성이 뛰어나 조형 예술에서 많이 사용된다. 대구미술관 소장 작품인 미스터의 '스트로베리 보이스(Strawberry Voice)'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모두 FRP를 재료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FRP는 유리섬유와 플라스틱 수지를 결합해 강도와 유연성이 뛰어나며, 잘 관리하면 수명이 50~100년에 이를 수 있어 다른 플라스틱 계열의 작품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다.

FRP 작품의 보관 방법은 첫째, 자외선 차단이 중요하다. UV노출은 변색과 균열을 초래하므로 UV필터가 설치된 조명을 사용하고, 직사광선을 피해야 한다. 둘째,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수장고의 18~22℃의 온도와 40~55%의 습도보다 더 낮은 조건을 권장하기도 한다. 셋째, 먼지와 오염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부드러운 천과 중성 세제를 사용해 표면을 청소해야 한다. 플라스틱은 전통적인 재료인 돌, 금속처럼 영구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의 변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플라스틱 작품 보존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예술의 일시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미〈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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