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항소심이 뒤집은 ‘책임’의 무게… 법의 한계인가, 외면인가

  • 김기태·이동현(사회)
  • |
  • 입력 2025-05-13 21:38  |  발행일 2025-05-13
지열발전은 인정, 책임은 불인정
‘과실 입증’ 문턱 못 넘은 시민들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은 다르다”
지진으로 기운 포항 대성아파트 철거

2017년 경북 포항지진으로 부서져 사용 불가 판정이 난 포항 대성아파트가 지난 2020년 3월 철거되고 있다. 김기태기자

2017년 11월과 2018년 2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두 차례 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정부가 주도한 지열발전사업이 촉발시킨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정부조사단, 감사원, 검찰조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됐다. 2019년 정부조사연구단은 공식적으로 “지열발전 과정의 수리자극이 지진을 유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정부가 자인한 결과였다. 그러나 최근 항소심 판결은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법적 책임은 달랐다.

대구고법 민사1부는 13일 포항 시민 111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전원의 청구를 기각하며 1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촉발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관련 공무원이나 기관의 과실을 입증할 충분한 자료는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핵심은 '과실'의 존재다.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선, 단순한 결과 발생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결과를 유발한 행위가 고의이거나 최소한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입증돼야 한다. 재판부는 이 과실의 연결고리를 원고 측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반발했다. 그 이유는 '법적 판단'이 시민의 상식과 크게 어긋나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정한 촉발 지진, 감사원이 지적한 20건의 위법·부당 행위, 검찰이 기소한 관련자. 이런 사실들이 있음에도 법원은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이 과실 인정에 신중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공무집행의 영역에서 국가의 행위가 모두 책임으로 귀결되면, 행정 전반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단순히 법적 책임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겪은 정신·물질적 고통에 대한 사회적 위로와 제도적 책임의 표명을 요구한 것이다. 1심은 이 점에서 일정 부분을 수용해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은 “과실 없다"는 이유로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법리상으론 정당할 수 있으나,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깊은 고민을 안긴다. 특히 정부가 인정한 촉발 지진이라는 전제가 있음에도 책임을 면하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 법 감정은 냉소적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정부가 추진한 사업으로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아무런 배상이 없다면, 앞으로 국가 정책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어떻게 지켜지겠느냐"고 우려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판단이 확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대법원이 과연 법적 책임의 문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또 시민의 고통에 법이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시민단체는 “사법농단" “정의 외면" 같은 격한 표현이 쏟아내며 즉시 상고를 예고했다. 이는 단지 판결의 결과 때문이 아니다. 피해자가 50만 명에 달하는 이 사안은 국가와 사회가 시민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 신뢰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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