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정재걸의 오래된 미래교육…내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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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19 07:58  |  수정 2025-06-08 17:49  |  발행일 2025-06-08
내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대학 시절 나는 여러 번 책가방을 잃어버렸다. 농구 골대 옆에 책가방을 놓고 잠시 농구를 하는데 어느 순간 가방이 사라졌던 일도 있고, 도서관 열람실에 가방을 놓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돌아오니 가방이 없어진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자주 꿈에 가방을 잃어버리고 찾으러 다니는 꿈을 꾸곤 한다. 가방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애타게 찾다가 꿈을 깨는 경우도 자주 있다. 잠을 깨는 순간 안도한다. 휴, 꿈이었구나.


꿈속의 사건을 경험하는 자는 누구일까? 꿈속의 나일까, 아니면 꿈을 꾸는 나일까? 꿈속의 내가 가방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꿈속의 나 역시 꿈의 한 부분일 뿐이다. 꿈속의 사건을 포함해서 꿈속의 나를 경험하는 것은 꿈을 꾸는 나다. 깨달음도 이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를 갈구하고, 그것을 얻지 못해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다. 그런데 그것을 경험하는 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내 몸 혹은 내 몸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내 마음이 그것을 체험한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내 몸이나 내 몸속에 있는 마음을 나로 동일시하는 것을 에고(ego)라고 부른다. 에고는 분리 독립되어 존재한다고 여기는 내 몸과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리적 구성물이다. 많은 대뇌생리학자들이 말하듯이 에고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에고가 무언가를 갈구하고 또 그것을 얻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꿈속의 내가 꿈속의 경험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겪는 고통은 에고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경험의 진정한 주체는 에고보다 훨씬 더 큰 존재, 하나님, 절대자 혹은 순수의식이다.


물론 우리는 경험하는 자를 경험할 수는 없다. 보는 자를 볼 수 없고 듣는 자를 들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리가 피리 부는 자를 알 수 없고,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를 알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수피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인생은 여인숙과 같다고 노래했다. 그 여인숙에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 고통을 겪는 자가 바로 꿈속의 나다. 그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귀중한 손님처럼 받아들이는 자가 곧 꿈을 꾸는 나다. 기쁨과 슬픔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속에 그리고 고통 속에 진정한 삶이 있다. 루미는 또 다른 시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피리 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인 하나 갈대밭에서 갈대 한 줄기


끊어내어 구멍을 뚫고, 사람이라 이름 붙였지


그 뒤로, 그것은 이별의 슬픔을 아프게


노래하고 있었다네. 피리로 살게 한 장인의


솜씨는 까맣게 모르고서


지금 이 갈증과 고통이 몸속의 작은 내가 아니라 더 큰 존재가 경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더는 고통스럽지 않다. 꿈에서 깨어날 때와 같이 마음이 턱 놓이고 무한히 더 큰 존재에게 그 고통을 내어 맡기게 된다. 지금 풀기 어려운 삶의 문제로 고통스럽다면 여호사밧 왕의 백성 야하시엘이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니라(역대하 20:15).'


최근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배우 이선균이 아저씨 박동훈 역으로, 아이유가 이지안 역으로 출연하였다. 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는 이선균이 아이유에게 말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자라는 감옥 속에 갇혀 사는 아이유를 깨운 한마디가 바로 '아무것도 아니다.'였다. 살인자라는 감옥은 꿈과 같다. 실패자, 이생망, N포세대 등의 감옥도 역시 내가 만든 꿈속의 일이다. 꿈에서 깨고 나면 그 어느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이 말을 한 주인공이었던 이선균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나라에 유명한 선승 황벽희운(黃檗希運, ?∼856) 선사가 있었다. 황벽의 제자 중에 당대 재상이었던 배휴(裵休, 797∼870)가 있었는데 그는 스승 황벽의 선풍을 널리 퍼뜨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배휴가 어느 날 '병 속에 새'라는 화두(話頭)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었다. 새가 작을 때 병 속에 넣고 키웠는데 이제 어미 새가 되었다. 병을 깨지도 말고 새를 죽이지도 말고 새를 꺼내보라는 것이 화두다. 배휴가 도저히 화두를 풀 수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황벽 선사가 큰 소리로 배휴를 불렀다. 배휴가 놀라 돌아보자 황벽이 말했다. '새는 병 밖에 있다.' 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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