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여름은 뇌가 깨어나는 계절

  • 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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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9 04:08  |  발행일 2025-06-08
여름은 뇌가 깨어나는 계절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6월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입니다. 이 시기에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 바로 '하지(夏至)'가 있습니다. 하지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축의 기울기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북반구에서는 햇빛을 받는 시간이 가장 길어지는 날입니다. 덕분에 하지가 다가오면 하루가 눈에 띄게 길어지고, 아이들에게는 마치 시간이 늘어난 듯한 즐거운 계절이 찾아옵니다. 어릴 적 이맘때면 향기박사도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책가방을 던지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친구들과 오징어게임이나 삼팔선놀이에 푹 빠져 어둑해질 때까지 놀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놀다 오지 말고 해 지기 전에 숙제부터 다 해라"며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가 단지 형광등 아래에서 숙제를 하게 되면 눈이 나빠질까 걱정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자가 되고 보니, 어머니 말씀이 눈 건강만이 아니라 뇌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간 빛이 수면과 각성과 같은 생리적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빛이 인지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뇌과학자들은 빛이 뇌의 핵심 영역인 시상하부(hypothalamus)를 통해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상하부는 우리 몸의 생체리듬과 경계심, 각성 상태를 조절하는 중추적인 영역으로, 인지와 감정에 모두 관여하는 중요한 곳입니다. 벨기에 리에주 대학교의 질 반드발레(Gilles Vandewalle) 박사 연구팀은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초고해상도 7테슬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2024년 4월 국제 학술지 eLife에 발표하였습니다. 연구팀은 30명의 건강한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 밝기가 다른 조명 환경에서 두 가지 인지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는 작업기억과 주의력을 측정하는 과제, 또 하나는 감정이 담긴 목소리에 반응하는 감정 인지 과제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조도가 높아질수록 시상하부의 각성과 집중력에 관여하는 부위의 활성도가 뚜렷하게 증가했습니다. 반면 수면과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부위는 조도가 높아질수록 활동이 억제되었습니다. 밝은 빛이 뇌를 잠에서 깨워, 더 집중력 있는 상태로 이끌어주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어느 정도까지는 밝은 빛이 인지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자극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각성과 인지 기능 사이에 정교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감정 인지 과제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밝은 환경에서 감정 자극에 대한 반응 속도는 다소 느려졌습니다. 이는 뇌가 감정 자극을 더 진지하게 인식하고, 그 정보를 더욱 깊이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빛이 우리의 정서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죠.


그렇다면 이 연구 결과는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여름이 시작되었다고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만 머무르지 말고, 햇빛이 강하지 않은 이른 아침에 가벼운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죠? 또 점심시간에 잠시라도 자연광이 풍부한 공원 벤치에 앉아 쉬는 것도 좋겠죠. 실내에 머물러야 한다면 형광등보다는 자연광에 가까운 밝고 따뜻한 조명을 사용하세요, 그러면 분위기를 좋게 할 뿐 아니라, 뇌의 활동에도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특히 수면 주기가 흐트러진 학생들, 야간 근무로 밤낮이 바뀐 직장인들, 우울감을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이 같은 '빛 루틴'은 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낮에 열심히 활동하고 햇빛도 자주 쬐는 사람들일수록 인지적으로 더 건강하고, 집중력도 높을 수 있습니다. 그럼 "해 지기 전에 숙제하라"는 향기박사 어머니의 말씀도 이렇게 바꿔볼 수 있겠지요, "해 지기 전에 숙제를 먼저 끝내고, 그다음에 야외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아보자." 이 말이 바로 뇌과학에 근거한 멋진 훈육이 되겠죠? 하지가 가까워지는 요즘, 아침 햇살이 길어졌다고 짜증 내기보다는 창문을 활짝 열고, 뇌를 깨우는 고마운 햇빛을 반기며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 빛은 단지 방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자녀의 뇌를 건강하게 깨우는 '빛의 선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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