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중대 기로에 섰다. 미국이 예고한 25% 상호관세 발효일이 내달 1일로 임박한 가운데,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간의 '최종 담판'이 오는 31일 열릴 예정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선의 시나리오,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타결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관세율을 일본과 유사한 수준인 15%로 낮추는 것이다. 최근 일본이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 선례를 만들면서, 한국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관세율을 확보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실제 협상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대해 일본과 유사한 투자 약속과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는 '전략적 조건부 타결' 방식이 거론된다. 미국 측이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투자와 전략 산업 협력을 수용하면서도 소고기, 쌀, 디지털 규제 등 국내적으로 민감한 요구사항을 유예하거나 단계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같은 협상 전략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추측된다. 대통령실은 조선업, 반도체 등 강점을 지닌 산업 역량을 활용해 미국의 공급망 및 제조업 재건 전략과 접점을 형성하고, 전략적 파트너십 모델로 협상의 질을 높이려는 접근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조선업'
특히 조선업이 미국의 대중 견제 등 해양 전략 및 산업 재건 정책과 직접 맞물려 있는 산업 분야라는 점에서 관세 협상 구조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 협력을 핵심으로 한 '무역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다. 내용은 미국 내 조선소 투자,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 분야 협력 등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기술이전이나 공동 R&D, 산업 인력 양성 프로그램까지는 공식화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협업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단순 수출국이 아닌 미국의 전략적 공급망 파트너로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약 5천500억 달러(약 76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통해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가 '투자와 기술협력'이라는 이중 구조의 차별화된 협상 방식을 준비 중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최악의 시나리오, 25% 관세 전면 발효
최악의 시나리오는 협상 결렬로 인해 25% 관세가 전면 발효되는 경우다. 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보는 근거는 우선 시간 부족이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미국 측과 실질적으로 대면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날은 30~31일 고작 이틀에 불과하다.
미국 역시 28~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국과 고위급 무역 회담을 진행 중이어서, 한국과의 협상에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본이 수 주간 투자 금액과 감세 품목군을 조율한 것과 비교하면 협상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일본에 비해 한국의 투자 규모가 작다는 미국 측의 불만도 감지된다. 앞서 일본은 미국에 약 5천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제시하고 15% 관세율을 획득했다. 반면 한국이 준비 중인 대미 투자 규모는 일단 드러난 게 1천억 달러 규모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상 직후 "다른 나라들도 일본처럼 돈을 내면 감세가 가능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통상 협의를 앞둔 한국을 직접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농산물 개방 가능한가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특히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쌀 시장 접근성 확대) △디지털 플랫폼 규제 완화 등 국내에서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분야까지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농산물 개방은 농민 반발과 직결되고, 디지털 플랫폼 규제 완화는 국내 기업 보호 정책, 개인정보 보호 등과 충돌한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이를 즉각 수용하거나 양보하게 되면 국내 큰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업 포기'나 '외국 IT기업 특혜' 프레임에 휘말릴 경우 이재명 정부가 직면할 정치 리스크는 '감당 불가' 수준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이런 여러 이유로 협상이 결렬돼 25% 관세 부과가 발효된다면 한국의 수출품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면에서 밀리게 되고,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주력 제조업이 직접적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현지 생산기지를 확보하지 못한 중소·중견기업은 수출 중단이나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또 고율 관세에 따른 한국 제품의 경쟁력 약화는 '수출 감소→원화 약세→자본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내수 침체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실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국의 실질 GDP가 최대 0.4%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선(先) 관세 부과 후(後) 협상'…현실적 시나리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로는 '선(先) 관세 부과 후(後) 협상'이 거론된다. 즉 8월 1일 일부 또는 전면 관세가 우선 발효된 뒤, 후속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조정하거나 단계적 감면 방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EU·중국·일본과의 무역 협상에서 반복적으로 구사했던 전략적 협상 방식으로, '관세 부과를 통한 압박→상대국의 추가 양보 유도→정치적 성과 확보→단계적 감세 또는 조건부 유예'라는 구조를 가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정부로서도 농산물 개방, 디지털 규제 완화 등은 국내 여론과 산업계 반발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수용하기 어려운 민감한 이슈들이다. 미국 측도 한국의 이 같은 입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일단 관세를 부과한 뒤 추가 양보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협상 패턴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외교적 파국 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협상 실패 프레임' 방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공급망 협력·방위비 분담 협상 등 한미간 다른 협상 의제들에서도 한국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더 많은 양보를 요구받는 불리한 협상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구경모(세종)
정부세종청사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