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 김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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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2 12:18  |  발행일 2025-08-22
낙안읍성 동문 낙풍루와 옹성. 낙안읍성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이다.

낙안읍성 동문 낙풍루와 옹성. 낙안읍성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무더웠다. 얼척없는 찜통 더위였다. 한 점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순천 낙안읍성 동문 낙풍루 조붓한 그늘에서 기력을 다그치고 있었다. 자연석으로 쌓은 성은 미려하며 강렬한 햇빛을 잘 방어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이곳에 서면 숱한 생각이 어김없이 뇌리를 스친다. 사적 302호. 1천410m의 성곽. 국가민속문화유산 가옥 9동과 13점의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90여동 초가집에 실제로 주민이 사는 마을을 품어 관광의 별이 더 반짝이는 읍성이다. 성안으로 걷는다. 마을 초입부터 초가집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예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주막집도 보인다. 음식도 막걸리도 판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하나이고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한 막걸리. 지금 막 걸러낸 술이라는 뜻에서 막걸리다. 가게 안에는 손님 몇이 권커니 잣커니 하며 한잔씩 기울이고 있다. 혀에 착착 감기면서도 은은하게 톡 쏘는 맛의 막걸리. 힘든 농사일의 새참으로 마시는 농주 막걸리는 피로도 가시고 요기도 된다. 고단한 삶의 단짝 막걸리 한잔이 간절하였지만, 그냥 지나친다.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낙안읍성의 초가집. 초가는 보통 1가구당 두 채 내지 세 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지어졌다.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낙안읍성의 초가집. 초가는 보통 1가구당 두 채 내지 세 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지어졌다.

국내에서 조선시대 마을 풍경이 가장 잘 보존된 낙안읍성. 민가는 전부 초가집이다. 초가는 보통 1가구당 두 채 내지 세 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지어졌다. 덧붙이면 초가집은 3칸 일자형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농기구 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겸용하는 헛간채와 재래 변소를 이용하는 잿간 정도로 이루어졌다.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이다. 지붕은 주로 볏짚으로 이엉을 인 초가였다. 보기보다 단열이 잘되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그러나 짚은 썩기 때문에, 연중 새 이엉으로 지붕을 이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골목 에움길을 걸어 임경업 장군 비각으로 간다.


임경업 장군 비각. 야사에는 임경업 장군이 하룻밤 만에 읍성을 쌓았다는 속설이 있다.

임경업 장군 비각. 야사에는 임경업 장군이 하룻밤 만에 읍성을 쌓았다는 속설이 있다.

임경업 장군은 1594년 12월 13일 충청도 충주목 달천 촌에서 절충장군을 지낸 임황의 7형제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애면글면 여러 경로를 거쳐 1626년(인조 4년) 낙안군수로 부임 후 당시 읍성을 고쳐서 지금의 석성으로 축성하였다고 한다. 야사에는 임경업 장군이 하룻밤 만에 읍성을 쌓았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야사는 어디까지 야사일 뿐이다. 임경업 장군 하면 역사 기록이 몇 권 사서가 됨직하지만 충주시의 임 충민공 충렬사에서 본 추련도의 감동을 그냥 넘길 수 없다. 임경업 장군의 보검으로 용천검과 추련도가 있다. 용천검은 전쟁 시 직접 사용한 검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됐다고 한다. 추련도는 평상시 호신용으로 애용한 보검이다. 칼 배의 양면에 28자 한시가 음각되어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때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이 여기에 있도다.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석 자 추련도를 십 년 동안 갈고 갈았도다." 추련도라는 멋진 이름은 검에 새겨진 시구에서 인용한 것이다. 추련(秋蓮)은 가을 연꽃으로 다른 연꽃이 지고 없을 때, 의연하게 피는 연꽃으로 이를테면 지조가 굳은 대장부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추련의 이미지가 그리운 시절이다. 이어 객사로 향한다.


객사에서 하는 사물놀이 공연.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리꾼은 여성이었고 판소리 5바탕 중 으뜸인 '춘양가'였다.

객사에서 하는 사물놀이 공연.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리꾼은 여성이었고 판소리 5바탕 중 으뜸인 '춘양가'였다.

객사는 낙안읍성 안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물이다. 조선 전기에 건립됐다. 넓은 마당에는 옛 그네가 있다. 기단은 축대를 앞마당보다 1단 높게 쌓아 올리고 양 측면과 후면은 같은 높이로 낮은 외벌대를 둠으로써 앞마당과 위계를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야외무대 주말 상설공연을 하고 있다. 객사 삼문 그늘과 마당에는 양편으로 친 차양막 아래 관중이 모여 앉아 관람하고 있다. 공연단체는 '<사>문화공간 소리골 남도'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리꾼은 여성이었고 판소리 5바탕 중 으뜸인 '춘양가'였다. 곁에는 고수(북 치는 사람)가 장단을 맞추고 있다. 소리꾼은 창법이 뛰어나 오랜 내공이 느껴지고, 간간이 아니리(말)로 이어가기도 하고, 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고 있다. 소리꾼의 각구목질에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 고개를 끄덕인다. 춘향의 사랑과 정조 권력의 갑질에도 굴복하지 않는 우리 문화의 멋과 흥이 우러나는 판소리 음악이었다. 여러 사설마다 정점이 있고 그때마다 고수와 청중이 곧잘 얼쑤 아먼 그렇지 허이 좋다 하는 추임새가 감흥을 돋운다. 추임새의 여운은 얼음 금가는 소리로 쩡쩡 울리며 귓밥을 시원하게 한다. 소리꾼은 마치 자기 영혼을 실은 것 같은 공연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버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긴 사설을 어떻게 다 외우고 있는지 찐 감탄이다.


낙안읍성 동헌(사무당)에서 치죄하는 광경.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로 지방 행정 및 송사를 처리하던 곳이다.

낙안읍성 동헌(사무당)에서 치죄하는 광경.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로 지방 행정 및 송사를 처리하던 곳이다.

공연은 먼저 사물놀이가 있었고, 한국 무용 남도 민요로 더 이어지게 되어 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사 뒤쪽으로 걸어 낙민루로 향했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 1951년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한 것이다. 올라가는 계단을 막아 놓아 부득이 근처에 있는 동헌으로 간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이다. 지방 행정 및 송사를 처리하던 곳으로, 사무당(使無堂)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무당이란 뜻은 송사를 처리함에 백성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하고 피해가 가지 않도록 법을 지켜 각다귀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라 한다. 동헌에는 고을 사또가 치죄하고 있고 마당에는 심문받는 죄인과 형리가 밀랍 모형으로 배치되어 옛 조선의 적나라한 생활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군수의 관사인 내아에 들어간다. 그중 엄청 넓은 부엌 안을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뚜막의 가마솥, 선반의 유기그릇, 대광주리와 대바구니 물독 등 볼거리가 많았다. 부엌 뒤뜰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옹기를 둔 장독대가 정갈하고 아늑했다. 이마에 시나브로 맺히는 땀방울을 닦으며 돌담길을 걸어 서문으로 간다. 이곳에는 성곽에 오르는 돌계단 있다. 성곽길은 전망이 툭 터지는 해방감이 있었다. 이제부터 성 밟기가 시작된다. 동쪽으로 개운산을 바라보고 서로 금오산이 북으로 금전산이 남으로 큰 바다가 접해 있는 복지의 평야 낙안이다. 가히 남도 제일의 이상향이라 할만했다. 성안으로 초가집 동내 남내 서내 등 세 개 마을과 관아 건물이 400년의 연륜을 담아 한눈에 가득 찬다. 게다가 성밖에는 기름진 들판이 아득해 풍광이 즐거움을 더하고 가뭇없다. 괴발개발 걸어도 큰 그림 속으로 걷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순천 낙안읍성 성벽. 1397년(태조 6년) 절제사 김빈길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순천 낙안읍성 성벽. 1397년(태조 6년) 절제사 김빈길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성곽에는 역사가 철썩인다. 발바닥까지 달아오르는 헉헉 더위였지만 사적은 유전자가 되어 피처럼 돈다. 고려 후기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낙안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이를 막아내고자 1397년(태조 6년)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그러다가 1424년 9월부터 군수 신원절이 토성을 석축으로 넓혀 쌓고 관사를 지었다. 비로소 읍성으로 규모를 갖춘 것이다. 1469년(세조 15년) 당시 낙안읍성을 찾았던 문객 손순효는 빙허루기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빙허루에 앉으면 큰 멧부리가 북쪽을 누르고 푸른 바다가 남쪽을 면해 있고 무성한 숲과 긴 대가 좌우로 푸르르며 안개 낀 어린 섬이 멀고 가깝게 바라다보여 친구와 더불어 고금의 일을 애기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현재 빙허루는 볼 수 없다. 이쯤에서 비로소 걷기를 멈추고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언제나 방치하고 살았던 내면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꿈에 집중하여 그리움과 따뜻한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낙안읍성 답사가 되었느냐고.


문의: 낙안읍성 대표전화 (061)749-8831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트레킹 코스 : 동문-임경업 장군 비각-객사-낙민루-동헌-서문-성곽길


인근 볼거리: 송광사, 선암사, 순천왜성, 화포포구, 순천만습지, 순천만국가정원, 태백산맥문학관, 순천 드라마 세트장, 시립기독교 역사박물관, 순천팔마비


글=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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