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강, 형산강] 3. 화랑과 귀족의 쉼터

  • 박관영·이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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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6 20:20  |  발행일 2025-08-26
신라의 명장 김유신, 그는 江을 다스려 삼국통일을 이뤘다
경주 황성공원 솔숲. 맥문동이 만개하는 여름이면 수천 송이 보랏빛 꽃길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형산강 북천을 끼고 자리한 이 곳은 신라 화랑들이 활쏘기와 검술, 야영과 명상 등을 수련하던 장소로 전해진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경주 황성공원 솔숲. 맥문동이 만개하는 여름이면 수천 송이 보랏빛 꽃길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형산강 북천을 끼고 자리한 이 곳은 신라 화랑들이 활쏘기와 검술, 야영과 명상 등을 수련하던 장소로 전해진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신라화랑, 경주 산천 순례하며 수련

기록상 형산강변·황성공원서 훈련

그시절 江은 청춘수련장·강변학당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도

江 주변의 간선도로와 수로망 통제

전쟁때마다 江활용 전략 펼쳐 승리

 

신라는 국가질서·사상 '물' 통해 구현

동궁·월지도 형산강 끌어와서 조성

달빛아래 정치 논하고 연회 베풀어

"과인에게 경(卿)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소."


처서가 벌써 지났지만 연일 계속되는 폭염경보에 땀을 뻘뻘 흘리던 순간이었다. 매사에 준비성 철저한 문화기획자가 북천둔치에서 얼음물을 꺼내들자 경주에 사는 화가 친구는 반색을 하며 마치 신라시대 왕족처럼 말했다.


"물고기가 활개치는 물. 죽음을 앞둔 장군에게 문무대왕이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지."


오늘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한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길이다.


"사실 삼국통일을 앞둔 신라의 전략은 땅이 아니라 물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삼국사기에 나오는 전투기록의 지형 배치가 딱 그래."


이번엔 마치 군사전략가 같은 말투다. 오늘을 위해 그는 형산강 유역의 군사 동선에 관한 책부터 국립경주박물관이 발간한 신라의 수로 자료집까지 밤새 독파했다며, 짐짓 장군의 기세로 외쳤다.


"나를 따르라!"


이곳은 경주 황성공원. 경주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거대한 녹지공원이 있다는 것부터가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나를 따르라!


김유신 장군묘. 장군은 죽은 이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서됐는데, 따라서 '장군묘'가 아닌 '왕릉' 표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김유신 장군묘. 장군은 죽은 이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서됐는데, 따라서 '장군묘'가 아닌 '왕릉' 표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김유신 장군묘의 비석은 1930년대 후손들이 만든 비석인데 원래 '묘(墓)'로 새겨졌으나, 후대에 '릉(陵)'으로 고쳐 새긴 흔적이 남아 있어 지금도 비가 오면 두 글자가 겹쳐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김유신 장군묘의 비석은 1930년대 후손들이 만든 비석인데 원래 '묘(墓)'로 새겨졌으나, 후대에 '릉(陵)'으로 고쳐 새긴 흔적이 남아 있어 지금도 비가 오면 두 글자가 겹쳐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강을 다스린 자, 나라를 얻다


거대한 공원을 가로질러 가파른 계단을 반쯤 올라가자, 저만치 말을 달리고 있는 장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삼국통일 전쟁의 선봉에 섰고, 백제 정벌(660년)을 승리로 이끈 전설의 장군. 기록상 단 한번의 패전도 남기지 않은 명장, 바로 김유신이다.


"그 유명한 황산벌 전투 알지?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을 무찌른 핵심 인물이 바로 김유신 장군이었어. 이후 고구려 정벌은 당나라의 장수들이 중심이긴 했지만, 그 시기에도 고령의 김유신은 조정에서 전략을 조율하며 전쟁을 뒷받침했지."


삼국의 경계가 흐릿해지던 격동의 시기, 신라는 낙동강과 형산강, 그리고 안강평야라는 물길과 들판을 병참선 삼아 백제와 고구려의 틈바구니를 돌파했다. 그 중심에 있던 김유신, 그의 승전 전략 중심에는 형산강이 있었다.


"형산강이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시작해 포항의 동해로 흘러나가잖아? 그러니까 육지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관문이자 연결통로였던 거야. 김유신은 이 강을 병력과 물자의 수송로로 삼았고, 때로는 진격의 경로로, 때로는 후방 보급의 생명줄로 활용했다고 해. 물 위의 승부가 곧 전쟁의 향방을 갈랐던 시대, 그는 흐름을 읽고, 흐름을 선택할 줄 아는 장군이었던 거지."


경주 황성공원에 우뚝 서 있는 김유신 장군 동상. 김유신은 검을 들기 전 물길을 먼저 읽었고, 신라의 전성기는 칼이 아닌 강이 열었다. 강은 김유신에게 물자였고, 전술이었으며, 나라였고, 운명이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경주 황성공원에 우뚝 서 있는 김유신 장군 동상. 김유신은 검을 들기 전 물길을 먼저 읽었고, 신라의 전성기는 칼이 아닌 강이 열었다. 강은 김유신에게 물자였고, 전술이었으며, 나라였고, 운명이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실제로 삼국사기 곳곳에는 그의 작전이 형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는 단서들이 등장한다.


무열왕의 신임을 받던 시절, 김유신은 경주와 포항을 수시로 순찰하며 강 주변의 간선도로와 수로망을 통제했다. 이것은 단순 치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백제의 부흥군이나 고구려의 간첩선이 이 수로를 타고 침투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전쟁이 터졌을 때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가장 빠르게 병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확보해 두었던 것이다. 강을 지배하는 자가 곧 전장을 통제하는 자였고, 김유신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깨달았다.


"가야계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어쩌면 그를 전략가이자 혁신가로 만들었는지도 몰라. 신라의 귀족 사회 안에서도 비주류의 설움을 견뎌야 했던 김유신은 강가에서 말을 달렸고, 무기를 들었고, 물살을 헤치며 싸우는 법을 배웠어. 신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전략은 모두 이 강에서 탄생했을 거야."


그가 화랑이 돼 전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 이미 형산강은 그의 병참로였다.


◆화랑유오(花郞遊娛), 물과 함께 수련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하면, 화랑들은 진흥왕 시기부터 삼국통일기 사이, 경주 곳곳의 산천을 순례하며 수련했다고 전해진다.


"신라에는 유교·도교·불교 이전에 풍류도(風流道)라는 고유한 사상이 있었다고 밝힌 최치원은 풍류를 수련한 화랑들이 배출되면서 신라가 삼국의 주역으로 성장했다고 해. 그렇다면 그 풍류도가 과연 무엇이냐!"


첫째는 상마이도의(相磨以道義: 도의로써 연마한다), 둘째는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 노래와 춤을 통해 아름다운 감정을 기른다), 마지막으로 유오산수(遊娛山水: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하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심신을 단련한다). 이 3가지가 풍류도의 지도 이념이자 화랑들의 주요 교과목이었다.


이 세 번째, 유오산수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남산·문복산 지형과 이어지는 형산강 수계였다. 실제로 화랑세기,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여러 기록은 화랑들의 훈련지가 형산강변, 특히 지금의 황성공원 일대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신라의 화랑들은 맨날 여기서 야외수업을 했다는 거네. '맑은 강물에서의 유영, 급류 속 노 젓기, 물을 이겨내는 체력 훈련은 화랑도의 근육과 지조를 길렀다'고 하잖아. 아… 부럽다!"


그렇다. 그 시절 형산강은 자연의 리듬 안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연마하며, 동시에 풍류를 즐기던 젊은이들의 '청춘 수련장'이자 '강변 학당'이었다. 그리고 그 물길이 닿는 곳에 차세대 권력이 자라고 있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형산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이상세계를 구현하다


드넓은 황성공원을 산책하며 보랏빛 맥문동의 장관에 취해 해가 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신라의 달밤이 찾아왔다.


"어때? 끝내주지? 경주를 제대로 보려면 야경을 봐야 한다니까. 저기 저 불빛 보여?"


경주 황성공원을 끼고 있는 북천 둔치. 걷기 길, 자전거길이 모두 있어 도보 트래킹, 자전거 일주 등 원하는대로 즐기기 좋다. 특히 여름밤이면 걷기 좋아하는 이들의 산책로로 손꼽히는데 자전거 여행으로 북천 강변길 따라 보문까지도 갈 수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경주 황성공원을 끼고 있는 북천 둔치. 걷기 길, 자전거길이 모두 있어 도보 트래킹, 자전거 일주 등 원하는대로 즐기기 좋다. 특히 여름밤이면 걷기 좋아하는 이들의 산책로로 손꼽히는데 자전거 여행으로 북천 강변길 따라 보문까지도 갈 수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황성공원을 나서니 APEC 정상회의에 대비해 새단장을 한 북천철교가 저만치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밤이 되자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뭔가에 빨려들 듯 하염없이 그 은은한 불빛 속을 걸었다. 강바람 덕인지 경주의 밤은 제법 선선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동궁과 월지에 다다랐다.


"이 일대가 신라 왕궁의 별궁터였대. 여기를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여기서 연회를 베풀었대."


왕세자의 거처이자,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연회를 여는 국가적 공간, 그 배경에는 항상 물이 있었다.


삼국사기에 보면 '동궁 북쪽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수목을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형산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인공 연못으로 만든 것인데, 여기에도 신라의 정치관이 엿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월지의 수계는 형산강의 자연 지형과 연계돼 조성됐고, 외부 세계와 연결된 수로망은 사신의 이동, 물자의 통행, 궁중 연회의 무대가 됐다고 한다.


"이건 단순한 조경의 문제가 아니야. 신라는 국가의 질서와 사상, 권위와 미감을 '물'을 통해 구현하려 했고, 그 물은 곧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왕권을 상징하는 거라고 보는 이들도 많아. 유교적 질서도, 불교적 이상향도 이곳에서 물의 흐름으로 재현됐다고 보는 거야."


형산강을 끌어와 만든 월지(月池). 그 거울처럼 고요한 연못 위에는 과거 신라 왕실이 꿈꾼 이상향이 반사된다. 왕은 이곳에서 문무백관과 연회를 열고, 달빛 아래 정치를 논했으며, 수많은 사신이 이 정원 앞에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과인에게 경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소."


동궁과 월지를 나서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저 이 말을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김유신 장군이든, 신라의 화랑이든, 혹은 문무대왕이든, 혹은 형산강을 품은 경주 전체이든. 과인에게 경이 있어서 멋지게 숨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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