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냉전이냐 新데탕트냐…동북아 질서 10월 내 판가름

  •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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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01 17:21  |  수정 2025-09-01 22:00  |  발행일 2025-09-01
북·중·러 정상회동 관계 다질듯
한·미·일 구도와 대립각 가능성
경주APEC이 분기점 될 전망


시진핑·김정은·푸틴. 연합뉴스.

시진핑·김정은·푸틴. 연합뉴스.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함에 따라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동북아 최대 외교이벤트가 열린다. 북·중·러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동북아에 '북·중·러' - '한·미·일' 구도가 선명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는 글로벌 최대 외교 이벤트인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전 세계 시선이 쏠릴 전망이다. 특히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신냉전 또는 신데탕트의 서막이냐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일 특별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출발해 전승절 행사 전날인 2일 베이징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다자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핵미사일 개발과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다자 정상외교는 '고립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노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승절 참석은 관행을 깨는 이례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고립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대내외에 각인시키면서 북·러 협력 강화를 지렛대로 중국과의 관계도 복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로 북한의 병참 지원을 필요로 하고, 중국은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는 만큼, 이번 회동을 계기로 반(反)서방적 협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열병식 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 오른쪽에, 김 위원장은 시 주석 왼쪽에 앉을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열병식을 통해 반서방 세력의 좌장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중·러 3자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만큼 공동성명 등 실질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 북한·러시아와의 전면적 결속에는 부담을 느낀다. 러시아 역시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자원과 기술에 제약이 크다. 북한이 바라는 실질적 혜택이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전승절 회동은 정치적 상징성은 크지만, 제도화하고 공고화한 3각동맹으로까지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는 회의론이 공존한다.


같은 맥락에서 경주 APEC은 더욱 중요해졌다. 베이징에서 북·중·러가 결속을 과시한 이후 경주에서 미·중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동북아와 세계 질서의 향방을 가를 수 있어서다. 핵심 의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한반도를 둘러싼 북핵 문제, 둘째는 대만 해협 문제다.


북핵 경우 미·중 모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원칙으로 고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억제와 대북 제재 유지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 역시 북핵이 동북아의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 억제하기보다 '관리 가능한 긴장' 수준으로 방치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미·중이 북핵 문제를 자국 영향력 확대와 동맹 결집 등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해협의 경우 유사시 주한미군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핵심 이익' 침범으로 보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 등 동맹국이 어떤 형태로든 대만 방위에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 쟁점에 대한 원포인트 해결책이 나오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어떤 수준에서 관리·봉합되느냐에 따라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 안보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양국이 한국을 빼고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반도 안보를 논의하는 이른바 '한국 패싱'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APEC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한국 패싱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그간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해 온 북한 입장을 고려하면, 이번 전승절 행사 참여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경주APEC은 이재명정부 실용주의 외교의 최대 난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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