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합성섬유가 만든 새로운 패션 시대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
  • 입력 2025-09-18 16:41  |  발행일 2025-09-18
1960년대 스타킹 광고. 합성섬유의 장점은 강도, 내구성, 가벼움, 대량생산 가능성이다. 이런 특징으로 값싸면서도 다양한 용도의 패션 소재가 만들어졌다. <출처=science history institute>

1960년대 스타킹 광고. 합성섬유의 장점은 강도, 내구성, 가벼움, 대량생산 가능성이다. 이런 특징으로 값싸면서도 다양한 용도의 패션 소재가 만들어졌다. <출처=science history institute>

일상적으로 옷의 재료를 말할 때 '원단, 옷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원단은 실의 모양인 '섬유'가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되거나 니트로 짜여진 것을 의미한다. 섬유는 크게 천연섬유와 합성섬유로 나뉜다. 천연섬유가 면, 마, 울, 실크처럼 자연에서 얻는 소재라면, 합성섬유는 인공적으로 화학적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섬유를 말한다. 합성섬유는 20세기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로, 석유화학 제품에서 뽑아낸 고분자 화합물을 방사하여 실 형태로 만든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가 있다. 합성섬유의 가장 큰 장점은 강도, 내구성, 가벼움, 그리고 대량생산 가능성이다. 덕분에 값싸면서도 다양한 용도의 패션 소재가 만들어졌고, 의류의 보급에 큰 기여를 했다.


나일론(Nylon)은 상업적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최초의 합성섬유로 1930년대 후반 대중에게 소개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합성소재에 대해 처음에는 경계심을 품었고, 특히 피부에 닿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착용하는 데 꺼림이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여성 패션의 필수품이었던 실크 스타킹에 사용되는 실크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수입됐다. 당시 실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에 대한 정부의 홍보와 시민들의 동참으로 나일론이 이를 대체하게 됐다. 나일론은 열가소성 폴리머로, 녹여서 섬유·필름 등 다양한 형태로 성형할 수 있고 가볍고 튼튼하며 마모성이 강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낙하산의 주요 소재로 자리잡았고 군용 외투·텐트·망·로프 등에 널리 사용됐다.


폴리에스터(Polyester)는 1940년대 말 영국에서 개발됐으나 1950년대 미국 듀폰(DuPont)사가 상업화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됐다. 폴리에스터는 세탁과 관리가 쉽고 구김이 덜하며 빠르게 마르는 특징으로 바쁜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아떨어져 가장 보편적인 패션소재 중 하나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리에스터를 포함한 합성섬유는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1960~1970년대에는 전 세계 패션시장의 주류 소재가 됐다. 고급 패션쇼나 패션매장에서 볼 수 있었던 실크와 울로 만들어진 고가의 정장과 드레스는 폴리에스터를 사용해 훨씬 낮은 가격으로 생산, 판매될 수 있었다. '아이언 프리(iron-free·다림질이 필요 없는)' '워시 앤 웨어(wash&wear·세탁 후 빨리 건조되어 바로 입을 수 있는)' 셔츠와 드레스가 등장하며 실용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대중 패션을 탄생시켰다.


1959년 나사(NASA)의 머큐리7 우주복. 우주복에도 합성섬유가 들어갔다. <출처: 위키피디아>

1959년 나사(NASA)의 머큐리7 우주복. 우주복에도 합성섬유가 들어갔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렇듯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는 여러 장점으로 패션 디자인과 스타일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세기 중반에는 울·실크 등 세탁하기 어려운 소재를 대체하여 자주 세탁할 수 있어 청결하고 실용적인 의생활을 제시했고, 1960년대 표면효과와 두께와 볼륨감의 변화로 다양한 형태를 잡을 수 있어 유스 컬처(youth culture)를 대표하는 각 잡힌 미니스커트와 원피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합성섬유의 특성은 비행복과 우주복이 가능하게 했다. 본격적인 우주 비행 이전 단계인 1940~1950년대에는 항공기 조종사의 비행복에 나일론이 사용되어 기존 면과 울 기반의 조종사복을 대체하게 됐다. 1960년대 우주복에도 고강도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와 화학 코팅 등이 적용되어 진공과 200℃ 이상 차이가 나는 우주환경의 온도차, 방사선 등에 대응하는 우주복으로 우주비행사를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미국 스포츠웨어 광고. 여가생활이 유행한 1980년대 합성섬유의 신축성과 내구성으로 트레이닝복, 스키니 레깅스, 스포츠웨어가 대중 패션문화의 핵심이 됐다. <출처=kingy graphic design history>

1980년대 미국 스포츠웨어 광고. 여가생활이 유행한 1980년대 합성섬유의 신축성과 내구성으로 트레이닝복, 스키니 레깅스, 스포츠웨어가 대중 패션문화의 핵심이 됐다. <출처=kingy graphic design history>

이 신축성과 광택감 덕분에 합성섬유는 1970년대 디스코 문화와 연결되어 몸에 밀착되고 조명 아래 반짝이는 디스코 패션을 탄생시켰다. 운동을 즐기는 여가생활이 유행한 1980년대에는 합성섬유의 신축성과 내구성 덕분에 트레이닝복, 스키니 레깅스, 스포츠웨어가 대중 패션문화의 핵심이 될 수 있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와 다양한 발수(물을 튕겨내는), 흡습속건, 고신축성의 기능성 소재로 등산·캠핑 등 아웃도어 브랜드가 활성화된 기반이 됐다. 이와 같이 합성섬유는 새로운 스타일의 창출자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모습이 가능하게 되고 더욱 편하게 된 매개체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합성섬유는 환경 문제와 심미적 한계가 존재한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소재로 미세플라스틱을 유출하고 생분해성이 극히 낮고 천연소재 대비 낮은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어 과잉 생산과 패스트패션으로 환경 파괴를 가속화해 현세대와 후세대의 건강과 생활을 위험 속으로 몰고 있다. 또한 천연소재가 가지는 표면효과의 고급스러움과 편안한 질감은 나타낼 수 없어 코트·정장·티셔츠·청바지 등 본연의 패션스타일을 연출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합성섬유의 편리함 뒤에 있는 환경오염, 쓰레기 문제,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현후 세대의 지속가능한 건강성은 큰 숙제로 남아 있다. 현재도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패션산업계의 지속가능한 합성섬유의 발전과 소비자의 현명한 패션생활이 함께 이어져야 패션의 미래의 긍정적인 재구성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