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도시의 기질을 닮은 다양한 맛이 있다. 뜨거운 여름, 굳센 사람들, 그리고 겹겹이 산에 둘러싸여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내륙이지만 정(情) 만큼은 깊은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대구의 음식은 한 입 넣는 순간 '아! 이게 대구구나' 싶은 강한 맛을 품고 있다. 입 안에 넣는 순간 솔직한 직선의 맛이 화끈하지만 오래 남는다. 첫 맛의 직진함이야말로 대구의 힘이다. 그렇게 사랑 받아온 대구의 대표 음식이 10가지다. 동인동 찜갈비, 납작만두, 따로국밥, 막창, 뭉티기, 논메기매운탕, 누룩국수, 복불고기, 아끼우동, 그리고 무침회까지.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아쉬운 대구의 맛들. 영남일보는 대구의 10미(味)를 다시 찾아가고, 오늘의 감각으로 '새로운 대구의 맛'을 이야기한다.

세월의 흔적을 품은 양은냄비 속 대구 '동인동 찜갈비'가 양념을 머금으며 자박하게 졸아가고 있다. 박지현 기자
색 바랜 양은냄비에 시뻘건 양념이 자욱하게 끓어 오른다. 연탄불에 그을린 냄비는 세월을 버틴 흔적이고, 갈빗대를 감싼 살코기는 보기만해도 입맛을 자극한다. 다진마늘은 양념 속에서 숨을 고르듯 강렬한 향을 내 뿜는다. 땀을 훔치면서도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맛, 대구 중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의 풍경이다.
동인동 찜갈비의 태동에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지금의 '동인 찜갈비 골목'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1960년대 농산물도매시장이었다. 월급날이면 노동자들이 단골 국수집에 들러 "오늘은 고기 반찬 좀 달라"는 주문을 했다. 국수만 내던 주인은 인근 육수간에서 갈비를 구해 고춧가루와 마늘을 풀어 냄비에 올렸다. 국수집 답지 않게 넉넉히 손을 써 만든 한 상은 투박했지만 기막히게 맛있었다. 노동자들은 그 인심 어린 맛을 잊지 못해 달(月)마다 다시 찾았고, 그렇게 생겨난 한 그릇이 지금의 찜갈비로 이어졌다.
양은냄비에 끓여낸 매운 갈비는 대구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한 달에 한 번, 월급날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식이었지만 자작하게 졸여진 양념장과 두툼한 갈비는 택시 기사와 상인, 시장 인부들의 발길까지 끌어 모았다. 화끈한 매운 맛에 땀이 나고 입안이 얼얼했지만 젓가락은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모인 손님들로 골목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구 사람들이 매운맛과 마늘을 즐기는 배경도 있다. 햇볕이 강한 내륙이라 고추가 잘 자라고, 인근 경북 의성에서 구하기 쉬운 마늘은 오래 두고 먹기 좋았다. 그 덕에 음식마다 마늘과 고춧가루가 아낌없이 들어갔고, 그 강렬한 맛은 곧 대구의 입맛이 됐다.
1990년대 섬유산업 전성기에는 찜갈비가 '접대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 바이어 접대상에 빠지지 않았다. 처음엔 매운 양념에 놀라 물을 찾던 이들도 결국 밥을 비벼 먹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대구 섬유가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절, 찜갈비도 함께 대구의 이름을 알렸다.
골목의 모습도 달라졌다. 국수집에서 시작된 메뉴는 손님이 늘자 전문점으로 변했고, 동인치안센터 뒷골목에만 10여곳이 들어서며 '찜갈비 골목'이 만들어졌다. 식당마다 '원조'를 내세웠지만, 지금은 골목 전체가 대구의 맛을 대표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양은냄비는 늘 논란거리였다. "위생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지만, 정작 맛 앞에서는 그릇 모양은 뒷전이었다. 몇 차례 스테인리스 냄비로 바꿔보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단골들이 고개를 저었다. "찌그러진 냄비가 불 맛을 살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대구시에서 나서 스테인리스 냄비를 보급했을 때도 손님들은 "맛이 달라졌다"며 금세 다시 양은냄비를 찾았다.
찜갈비의 매운맛을 책임지는 건 단연 마늘이다. 처음엔 한 줌이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마늘갈비'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양이 늘었다. 남은 양념에 밥을 비비면 '이게 대구의 맛'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대구 중구 '동인 찜갈비 골목' 전경.
찜갈비 골목에는 사연도 많다. 연애 시절 단골이던 부부가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찾기도 하고, 출장길에 들렀던 외국 바이어가 수십 년 뒤에도 발걸음을 하는 곳이다. 몇 해 전 대기업 임원들이 방문했을 땐 '냄비가 보기에 별로다'라며 난색을 하다가 결국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는 일화도 남았다.
지금의 찜갈비는 매운맛, 보통맛, 순한맛으로 나뉘어 외지인도 즐길 수 있게 변했지만, 속살은 그대로다. 노동자들의 땀, 섬유산업의 열기, 대구 사람들의 자존심이 한 냄비에 담겨 있다. 동인동 찜갈비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대구의 역사와 정서를 맛으로 전하는 한 그릇이다.

'대구 10미 시식단'으로 나선 외국인 크리스와 타지인 영현, 어린이 도이가 동인동 찜갈비를 맛있게 먹은 뒤 각자의 느낌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구 10미(味), '3인 3맛'
양은냄비가 테이블에 오르자, '영남일보 대구 10미 시식단' 칠레 출신 크리스티안(Cristian A)씨, 경기도 출신 서영현씨, 대구 출신 김도이군이 젓가락을 들었다. 매운 김이 오르는 순간, 표정도 각양각색으로 갈렸다.
먼저 젊은 여성인 영현씨는 냄비를 한 숟가락 뜨더니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첫 입엔 마늘향이 확 퍼져서 지배할 줄 알았는데, 끝에는 김치찌개나 닭볶음탕 같은 감칠맛이 충족됐다"며 "고춧가루의 향이 탁 치고 올라와 조화가 맞는다"고 평했다. 그는 "다른 지역의 갈비찜은 단맛과 매운맛이 어울리는데, 동인동 찜갈비는 마늘과 고춧가루가 먼저 밀고 들어오고 마지막에 풍미가 잡아준다"며 "부모님과 함께 와도 좋아하실 맛"이라고 덧붙였다.
초등학생 도이군은 짧고 분명했다. "맛있어요. 안 매워요. 그런데 매운 거 못 먹는 형은 못 먹을 거 같아요." 입가에 양념을 묻힌 도이는 웃음을 보였다.
외국인 크리스티안씨는 찜갈비를 이탈리아 요리에 겹쳐 보았다. "스모키하게 만든 카르보나라가 떠오른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도 참을 수 있는 매운맛"이라고 했다. 칠레 출신인 그는 "고향에서는 소고기를 주고 구이나 바비큐로 먹지, 찜갈비처럼 조리하지 않는다"며 "양은냄비 플레이팅은 빈티지적인게 오히려 매력적이다. 칠레 남쪽 지방에서 낡은 프라이팬에 스크램블을 해먹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찜갈비가 어울리는 계절을 두고도 의견이 갈렸다. 영현씨는 "여름, 시원한 쌈채소와 곁들이면 제격"이라고 했지만, 도이군은 "겨울, 매운 걸 먹으면 온도가 올라간다"고 답했다. 크리스티안씨 역시 "겨울에 몸을 덥히기에 좋다"고 거들었다.
세 사람의 반응은 달랐지만, 양은냄비 안에서 끓어오른 찜갈비 만큼은 모두의 젓가락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영남일보 대구 10미 시식단: 서영현(경기도 출신, 올해 취업으로 대구에 첫발을 디딘 새내기 직장인), 크리스티안(칠레 출신, 대구 생활 2년차 외국인), 김도이(대구 관남초등 5학년)

마늘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진한 양념 속 동인동 찜갈비, 매운맛에 젓가락이 쉼 없이 간다.
◆대구 10미(味) 따라하기
△재료
소갈비,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간장, 설탕, 물엿, 후추, 맛술, 청주, 대파, 양파, 생강, 배즙
△준비
① 갈비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칼집을 넣는다.
② 대파·양파·생강·배즙에 재워 잡내를 없앤다.
③ 끓는 물에 반쯤 익을 때까지 데친 후 찬물에 헹군다.
△조리
① 간장·설탕·물엿·맛술·청주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② 양은냄비(또는 압력솥)에 갈비와 양념, 육수를 넣고 끓인다.
③ 중불에서 10~30분,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인다.
▲장인이 알려주는 '숨은 한 끗'
압력솥에 갈비를 삶을 때 보리나 현미 같은 곡물 한 줌을 함께 넣으면 잡내가 사라지고 맛이 더 깔끔해진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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