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희 문화팀장
한참 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제2의 삶을 산다는 연세 지긋한 지인의 진심 어린 고백은 최근 필자에게 깊은 뭉클함을 안겨줬다.
그 지인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가면, 보다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종종 송구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는 언제나 그 식탁에서 가장 분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주고, 음식을 덜어 권하며, 부족한 반찬을 살피는 눈길과 손길이 바쁘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젊은 사람들보다 앞서 그릇을 정리하고 치우는 데 솔선한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식사 자리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힘겨웠던 예전의 투병 생활 끝에 '손의 가치, 발의 가치'를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내가 이렇게 손을 쓰고 발을 움직이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병실에서 깨쳤기에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남들보다 더 움직이려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필자 또한 병원 신세를 지던 어느 날, 창밖으로 보이던 거리를 걷는 지극히 평범한 산책과 친구와 나누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절실히 느낀 적이 있다. 누구나 병상에 누워서야 소소한 일상 자체가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알지만, 이내 건강을 되찾으면 그때의 간절한 감사를 잊고 지내기 일쑤다.
우리가 건강의 가치를 잊고 살아가듯, 문화의 소중함 역시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서늘한 자각을 할 때가 적지 않다.
손과 발이 우리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의 기본이듯, 문화의 가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필수 불가결한 토대이자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영혼의 척도다.
지역 기업의 한 관계자에게 문화 메세나 실천을 호소한 적이 있다. 그 담당자는 대뜸 이유를 물었다. 순간 필자는 "문화는 물과 공기와 같은 것이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사라져 보면 비로소 그 소중함을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문화란 일상에 스며들어 있을 때는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으나, 그 문화가 스며있는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의 격차는 천양지차다. 문화적 자양분이 고갈된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풍요로움 역시 박탈당한다.
물론 문화 주체들 역시 지원의 유무를 넘어 자생력을 확보하려는 힘겨운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적 지원을 소홀히 해 이 도시의 활동 예술인들이 붓을 꺾고 무대를 떠나는 문화적 흉년을 겪어봐야만, 비로소 이 사회가 문화라는 공기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극단적인 냉소마저 품게 된다.
문화 메세나와 정부·지자체의 문화 지원은 사치나 옵션이 아니다. 도시는 건물을 통해 세워지지만, 그 도시에 영혼을 불어넣고 품격을 결정짓는 것은 막강한 문화의 힘이다. 예술이 숨쉬지 않는 도시는 아무리 화려한 마천루를 자랑한들, 영혼이 부재한 것과 마찬가지다.
부디 '손의 가치'와 '발의 가치'를 알기에 일상의 소중함을 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지인처럼, 문화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 이 '필수재'를 소중히 여기고 응원하며 지원해야 한다. 특히 내년 6·3 지방선거에서는 대구시장 및 각 구청장·군수 직에 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소신있는 인물이 선출돼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도시의 진정한 문화 품격은 그곳의 예술을 지키는 시민들의 지성과 연대에서 비롯된다.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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