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민생정책에도 불구하고 청년층(15~29세)의 고용률은 17개월째 바닥 없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19일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 고용률은 45.1%로, 1년 전보다 0.7%포인트(p) 하락하며 17개월 연속 내리막을 기록했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가장 긴 하락세다. 청년 고용률의 장기적인 하락은 우리 사회 앞날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경고음이다.
최근 청년층 고용 부진의 양상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외부의 일시적인 충격 탓이 아닌 '내부 구조적 요인'이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때도 청년 취업률이 하락했지만, 이 충격이 해소되면서 자연스럽게 반등하는 패턴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고용 부진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 제조업·건설업 등 핵심 산업의 장기 부진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고용 안정성과 임금 수준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 8월, 6만1천명이 줄며 15개월 연속 내리막을 기록했다. 또 건설업 역시 17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산업 전반의 활력 저하가 청년층의 취업 문을 좁히고 있다. 여기다 기업들의 경력직 위주 채용 확산도 청년층 고용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청년 일자리 위기와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일시적 충격 완화를 기다리면 해소됐던 과거와 달리,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 없이는 단기간에 청년 고용률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기, 미봉책 수준의 대책에 집중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지난달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31만명 넘게 늘어나며 19개월 만의 최대폭 증가를 기록했다고 자랑했지만, 이는 착시에 가까운 통계치다. 소비 쿠폰 영향으로 단기·임시직 위주로 늘어났을 뿐이다. '알바' 위주의 고용 구조는 청년층에게 실질적인 희망을 주지 못한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가 40만 명을 넘은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청년 고용 상황에 맞춘 맞춤형 대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정부는 민생회복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노동·산업구조 개편과 혁신 투자에 더 집중,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이래야 제조업 경쟁력이 살아나고, 신산업·신기술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결국 기업이다. 기업의 고용 의지를 북돋워 주고, 정책적 뒷받침도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범국가적 의제로 접근해야 한다.
[사설] 무역 협상·APEC 카운트다운, 앞으로 열흘이 중요하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열흘여 앞두고 한미 무역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나 이견을 집중 조율했고, 이재용·최태원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했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한미 무역협상에서 열흘 안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해 한미 양측이 APEC 전에 타결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관측됐다.
이번 방미로 한미 무역협상의 큰 쟁점인 '외환시장 안전장치(통화스와프)'와 '투자 방식(현금 투자 비중)'에 대해 양측이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선 대미 투자를 위해 3천500억 달러를 동원하는 것이 국내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화스와프와 같은 안전장치가 절실하다. 투자처를 선정하는 데 관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투자 액수와 방식도 합리적으로 배분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무역협상과 관련해 "양국이 가장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에서 협상하고 있는 시기"라고 밝힌 만큼 최종 결과물에 관심이 쏠린다. 한미 간 입장 차가 좁혀진다면 지난 7월 30일 큰 틀의 합의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던 한미 무역협상이 오는 31일 시작되는 APEC에서 극적으로 타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미 양측이 APEC에서의 최종 협상 타결을 위해 속도를 내는 만큼 앞으로 열흘간이 최대 고비가 될 수 있다. 현재 협상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까지 "한국이 3천500억 달러를 선불로 내기로 합의했다"고 되풀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이 변수다. 한국 요청대로 타결되기만 한다면 APEC 계기로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국익 관점에서 좋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시간에 쫓긴 서툰 합의는 금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국익 최대'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한국의 실질적 이익을 담보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해 최선의 성과를 내야 한다.
APEC을 계기로 한미 무역협상의 긴 터널에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APEC 성공 개최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APEC의 막바지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APEC에서 한미가 무역협상에 합의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면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인 김민석 국무총리의 바람처럼 '초격차 APEC'이 실현될 수 있다.
논설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