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교 위에서 바라본 예던길 방향의 모습.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봉화의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이루고 있다. <봉화군 제공>
낙동강이 굽이치는 경북 봉화 가송리. 그 위에 놓인 선유교(仙遊橋)는 신선이 노닌다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자연과 역사가 맞닿은 고요한 산책로다. 단순한 출렁다리가 아닌, 봉화의 정신과 퇴계 이황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시간의 다리다.
낙동강 절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투명한 물결이 반짝이고,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며 속삭인다. 선유교는 그 풍경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는 자리다.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서 별점을 받은 곳으로, 안동에서 봉화, 태백으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 중에서도 가장 풍광이 빼어난 구간에 자리한다. 운전을 멈추고 걷고 싶어지는 순간, 그곳이 바로 선유교다.
이 다리가 놓인 길은 퇴계 이황이 어린 시절 학문을 닦던 예던길(禮傳路)의 일부다. 낙동강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는 선비의 길이자 사색의 길이었다. 지금은 잘 정비된 데크길로 복원돼, 누구나 옛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절벽이 강물 위로 비치고, 바람이 지나가며 물결에 색을 더한다.
길이 약 170m의 출렁다리는 흔들림이 거의 없어 노약자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중앙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서면 강과 산이 만든 경계가 사라지고, 눈앞의 모든 풍경이 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봄의 신록, 여름의 물빛, 가을의 단풍, 겨울의 적막이 계절마다 다리 위에서 교차한다.
다리를 건너면 청량산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10분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청량산 도립공원은 퇴계 이황의 학문적 유산이 깃든 성리학의 산실이다. 오산당과 청량정사, 탁필대 등 유적이 산재해 있고, 산세는 학처럼 우아하다. 선유교는 그 청량산으로 가는 첫 관문이자 학문과 자연이 만나는 상징적 장소다.
낙동강 절벽 사이를 잇는 봉화 선유교의 전경. 푸른 하늘과 산세가 어우러지며, 다리 아래로 낙동강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봉화군 제공>
선유교의 이름에는 신선이 머물다 간 다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로 이곳에 서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물빛은 유리처럼 맑고, 강 위로 드리운 하늘은 시시각각 색을 바꾼다. 해질 무렵의 낙조가 강을 붉게 물들이면, 다리 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고요하다.
봉화 가송리는 예로부터 낙동강의 비경으로 손꼽혔다.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이곳에서 선유교는 풍경의 중심이다.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느리지만 묵직하다. 강원 태백에서 시작해 남해로 이어지는 낙동강의 장대한 여정 중, 봉화는 그 흐름이 가장 아름답게 굽이치는 지점이다. 선유교는 그 여정 한가운데서 인간과 자연이 잠시 마주 서는 장소다.
선유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입장료가 없고, 도보나 차량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리 입구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으며, 봉화읍에서 청량산 방면으로 가는 버스도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미끄러울 수 있으니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다.
낙동강 위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를 건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자연이 들려주는 오래된 노래를 듣는 일이다. 강물의 리듬에 맞춰 걷다 보면,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여행자는 시간의 한가운데 선다.
봉화 선유교는 관광지가 아니라 봉화의 정체성이자 낙동강의 기억이다. 햇살이 잔잔히 강 위로 내려앉는 오후, 그 다리를 천천히 건너보라.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 길 위에서, 당신은 문득 세상이 고요히 숨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황준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