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는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살이풀이지만 원산지인 열대지방에서는 작은 키 나무다. 목화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백성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려 한 문익점의 애민정신이 생각나지만 미국을 말하자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노예제도가 떠오른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고 그의 장인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성공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겨울옷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부유층은 실로 사용 못하는 누에고치 부스러기를 넣어 누빈 옷이나 동물의 가죽·털로 만든 옷을 입었으나, 서민들은 닥종이를 속에 넣어 누비거나 아예 종이를 여러 겹 겹쳐 옷을 만들었다. 그도 여의치 않은 하층민들은 억새나 갈대·부들의 솜털을 이용했다.
1793년 엘리 휘트니가 목화 씨와 솜을 효율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조면기(繰綿機)를 발명한 이후 미국 남부지방의 면화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계화로 면화 가공 속도가 빨라지자 이에 맞춰 목화 재배 면적이 넓어지고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1790년대에는 한 해 8만7천여 명의 흑인 노예가 목화 재배지에 공급됐으며, 1800년에서 1860년 사이에 노예 수는 다섯 배나 늘었다.
길이 1cm가 채 되지 않는 목화씨의 표면에는 1만5천~2만 개의 솜털이 나 있다. 솜털의 길이는 2.5~6.5㎝이며 바람을 타고 부상하여 무게 0.1g 정도의 씨를 넓은 지역으로 싣고 가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한국한복진흥원(경북 상주시)이 며칠 전 목화를 수확했다. 양은 얼마 되지 않으나 농약 한 번 안치고 재배하였으며 어린이들의 교육과 체험 등에 활용할 것이란다. 목화솜이 문익점의 애민정신을 새싹들에게 따뜻하게 전해주길 기대한다.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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