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아파트 단지들. 영남일보DB.
자산·소득 격차와 지니계수 등 불평등 관련 지표들이 모두 악화하면서 한국의 불평등이 구조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이 지목되는 가운데, '고환율 속 부동산 버블'이라는 이상현상이 꺼질 경우 그 충격은 중하위층에 집중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4일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한국사회의 불평등 심화를 여실히 드러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구 평균 자산은 5억6천678만원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이는 상위 계층의 자산 폭증에 의한 착시효과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가구의 평균 자산은 13억3천651만원으로 전년 대비 8.0%나 증가한 반면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평균 자산은 1억5천913만원으로 오히려 6.1% 감소했다. 이들 간 자산 격차는 8.4배에 달한다.
또 하위 20% 가구의 부동산 평균 자산은 1천33만원에 그친 반면, 상위 20%는 13억3천828만원을 기록했다. 이들의 격차는 무려 129.6배로, 전년(128.7배)보다 악화됐다.
소득 격차도 극심하다. 5분위 가구의 연소득은 1억7천338만원인데, 1분위는 고작 1천552만원으로 11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 2024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5로 전년 대비 0.002포인트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사회를 의미한다.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의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도 15.3%로 0.4%포인트 올랐다.
이처럼 불평등 관련 지표들이 동시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불평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불평등 구조화의 주요 원인으로는 부동산이 지목된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살펴보면 전체 자산에서 실물자산, 주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1.1%에 달한다. 금융자산은 24.2%에 불과하다. 이는 OECD 주요국과 비교해도 극단적으로 높은 수치다. 미국은 부동산 35%, 금융자산 60% 수준이고, 일본도 부동산 40%, 금융자산 55%다. 한국만큼 부동산에 자산이 편중된 나라는 드물다.
문제는 이 부동산 가격이 지난 10년간 폭등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연평균 10.2% 올랐다. 같은 기간 근로자 평균 임금 상승률은 연 3.1%였다.
10년 동안 집값은 2배가 올랐지만 월급은 1.3배에 그쳐 임금으로는 절대로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부동산을 일찍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자산 격차가 급격히 벌어졌다.
부채 구조의 비대칭성 역시 불평등 고착화의 원인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부채는 9천534만원으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하지만 계층별로 살펴보면 의미가 전혀 다르다. 상위층은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저금리 대출을 받아 추가 투자를 한다. 예를 들어 1억을 빌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면, 그 수익률이 대출금리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하위층은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는다. 따라서 원리금을 갚다 보면 저축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추가 대출이 필요해진다. 상위층에게 대출은 자산을 불리는 레버리지이지만, 하위층에게 대출은 가난의 굴레인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고환율 속에서도 부동산 버블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 경제 불안 신호로 받아들여져 부동산 가격에 하방 압력이 가해진다. 1997년 외환위기 때가 그랬다. 환율이 1천500원대로 급등하자 서울 아파트 가격이 6개월 만에 30%에서 40%까지 폭락했다.
그러나 현재 환율이 1천400원 후반대인데도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상승세다. 코로나 이후 줄곧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안전자산인 부동산에 갇힌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고환율 속 부동산 버블 유지'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이냐는 점이다. 전통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고환율 속 부동산 버블 유지'는 언젠가 꺼질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버블 붕괴의 트리거로 금리 인상, 환율 추가 상승 등을 꼽는다. 금리가 상승하면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한국 가계는 이자 상환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소득은 낮지만 '영끌' 대출에 의존해 자산을 보유한 중하위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임계점을 넘어서며, 대규모 대출 연체와 가계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계부채 부실은 곧바로 부동산 시장으로 전이돼 급매물이 늘어나고, 집값 하락이 가속화되면서 주택 담보 가치가 대출원금보다 낮아지는 이른바 '깡통주택'이 속출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 냉각기를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환율이 추가로 상승한다면 외국인 자본이 대규모 이탈하고,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어 전세시장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 금융·산업 등 국가경제가 전반적으로 불안해져 고용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피해는 중산층과 하위층에 집중될 전망이다. 상위층은 자산이 다변화돼 있고 유동성도 충분해 버틸 여력이 있지만, 중하위층은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 한 채에 집중돼 있어 피해가 더 치명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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