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비워내고 마주한 것들

  • 지중배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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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1-22 06:00  |  발행일 2026-01-22
지중배 지휘자

지중배 지휘자

마치 별똥별의 꼬리 같았다. 어둠 속에서 떨어지며 흩어지는 불꽃들에서는 숨죽여 귀기울여 봐도 불이 타는 소리가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호응들, 시회소리 등 여러 어수선한 소리들을 멀리하고 멍하니 부용대를 향해 별빛을 만들며 올라가는 줄불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들리지 않던 숯봉지가 타들어가는 희미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모습에 집중하였다. 다른 불꽃놀이와 달리 조용히 몸을 태워 꽃비로 변하여 밤하늘과 강물을 은은하게 밝혔다. 마치 빛의 영혼만이 남은 듯하였다.


나만의 정적 속에서 흩날리는 순수한 빛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고등학생 때 우연히 듣게 된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의 선율이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 10대의 나에게 그 음악은 거울 속의 거울처럼 끝없는 길고 긴 회랑을 걷는 느낌이었다.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음들이 고요 속에서,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처럼, 어두운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물방울의 소리처럼 들려왔었다. 이후 마음이 번잡하거나 하고자 하는 음악에서 무엇인가 잘 안풀릴 때, 이 비워진 소리사이로 숨어들곤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연주를 위해 다시 안동을 찾아 머물렀을 때였다. 묵고 있던 한옥 호텔 안에 작은 호수를 품은 정자에 앉았다. 수면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해 마치 거울과 같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과 옅은 풀벌레 소리들이 간간히 들려왔다. 안동의 지인에게 선물받은 안동소주를 쪼르륵 잔에 따랐다. 한 모금 입에 물고 목으로 넘기니 입안에는 시간이 만들어낸 곡물의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취기가 살짝 돌고 나니 며칠 전 보았던 줄불놀이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는 안동소주를 '불의 넋과 이슬의 몸'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불길을 빌려 모든 잡스러움을 태워 날려 보내고, 오직 순수한 정수만을 다시 모아 이슬로 맺히게 하는 일. 잔속의 그 투명함은 마치 자신의 몸을 태워 은은한 꽃비로 마음을 적셔주던 줄불의 빛과 같다. 한국에 오면 가끔 장인어른께서 술을 빚으실 때 옆에서 돕곤 하였다. 소주고리 앞에 앉아 수행자처럼 멍하니 그 시간을 지켜보곤 했다. 뜨거운 열기가 곡물의 영혼을 수증기로 끌어올리고, 이내 차가운 공기를 만나 똑, 똑, 똑 떨어지는 맑은 이슬. 그 소리는 마치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 같았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잡념도 날릴 겸, 단순하지만 깊은 맛을 느끼고자 가끔 하는 요리가 있다. 프랑스식 수프 '콩소메(Consommé)'를 만드는 시간 역시 느릿느릿하고 그 순수함이 줄불놀이와 안동소주와 다르지 않다. 고기를 끓이고, 거르고, 끊임없이 정화하여 보석 같은 투명함을 찾아내는 시간, 한 숟가락의 수프 속에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울어 졌지만, 맑고 정갈하다. 줄불놀이와 안동소주처럼 잡념을 태워 버리고 그 본질만 남는다.


단순함은 결코 가벼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잡함들을 다 털어버리고 남는 본질일 것이다. 무대 위에서 음악에 스토리를 입혀갈 때면 항상 꾸밈과 덜어냄에 고민을 하게 된다. 매번 돌아오는 새로운 계절 앞에서 무언가를 더 채우고 쌓아 올리기보다는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자세로 삶을 마주해 보고 싶다. 불필요한 욕망을 버리고 투명함과 깊은 울림을 주는 삶, 순수함을 회복했을 때 더욱 따뜻한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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