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춘양중학교 교정에 자리한 보물 제52호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 간결한 비례와 안정된 구조미가 통일신라 석탑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황준오기자
들판은 말이 없다. 바람이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오래된 돌은 그 자리를 지킨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평범한 농촌 마을의 풍경 속에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시간의 층위와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학교 교정 한편, 서로를 향해 서 있는 두 기의 석탑이 천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이다.
춘양중학교 교정 안에 위치한 이 두 기의 석탑은 동서 방향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비례와 균형이 안정적이며, 장식은 절제되어 있다. 동탑은 약 3.85m, 서탑은 약 3.94m로 2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 형식을 따른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한 선은 신라 석조미술이 도달한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두 탑은 단순히 오래된 구조물이 아니다. 서로를 향해 서 있는 배치는 과거 이곳에 존재했을 가람의 중심 구조를 짐작하게 한다. 금당 앞에 두 탑이 나란히 놓이는 쌍탑식 가람 배치는 통일신라 불교 건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지금은 사찰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돌탑은 그 자리에 있었을 신앙의 공간을 조용히 증언한다.
1962년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은 이 석탑의 의미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동탑 1층 옥신 사리공에서 녹색 유리제 사리병과 99기의 소형 토탑이 확인됐다. 사리를 중심으로 한 신앙 행위와 장엄 방식은 통일신라 후기 불교 의례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탑에서도 사리공이 확인되면서 두 탑 모두 종교적 기능을 갖춘 공간이었음이 확인됐다.
작은 사리병과 손바닥 크기의 토탑들은 단순한 부장품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염원과 신앙의 흔적이다. 돌 속에 봉안된 기도는 천년의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석탑은 1963년 보물 제52호로 지정되며 국가적 보호를 받게 됐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비례가 안정적이고, 옥개석의 두께와 처마선의 표현이 단정하다. 화려한 장식 대신 구조의 균형으로 미감을 완성한 점은 통일신라 석탑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봉화 춘양면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 전경. 들녘과 소나무 숲 사이에 마주 선 두 기의 석탑은 통일신라 쌍탑식 가람의 흔적을 보여준다. 황준오기자
탑이 자리한 공간은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는 보호구역 안에서 관람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의 석탑은 학생들의 일상과 함께 호흡한다. 쉬는 시간 운동장을 걷는 학생들, 교정을 찾는 주민들, 그리고 문화유산을 찾아온 방문객이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과거 남화사라는 사찰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전해진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두 기의 탑은 절터의 기억을 이어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향토사 연구에서도 이 석탑은 지역 불교문화의 분포와 사찰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용된다.
학교 담장 안에 자리한 문화재라는 점은 이 석탑의 의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문화유산이 특정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공동체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화재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연결된 자산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석탑 앞에 서면 시간의 감각이 달라진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온 돌의 표면에는 풍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모서리마다 세월의 흐름이 스며 있다. 그러나 구조는 여전히 안정적이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천년의 시간 동안 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인간의 바람과 기도가 켜켜이 쌓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은 거대한 문화유산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풍경 속에서 만나는 역사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학교라는 현재의 공간 속에서 천년 전 신앙의 형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유산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들녘의 침묵 속에서 두 기의 탑은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은 흘렀지만, 기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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