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 “셰프는 어디 있나요?”…프렌치 요리 만드는 사람들은 ‘자활 참여자’였다

  •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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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9 06:42  |  발행일 2026-08-29
경주지역자활센터 ‘오르에’ 이색 도전…외식 경험 없던 6명이 주방·홀 맡아
제주 프렌치 셰프에게 배워 직접 조리·서빙…3년 뒤 공동창업 목표
정희근 센터장 “좋은 일 하는 식당이니 와달라는 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정희근 경주지역자활센터장이 프렌치 레스토랑 오르에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르에는 자활 참여자들이 직접 요리와 서빙을 맡으며 취·창업을 준비하는 창업도전형 사업장이다. 장성재 기자

정희근 경주지역자활센터장이 프렌치 레스토랑 '오르에'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르에는 자활 참여자들이 직접 요리와 서빙을 맡으며 취·창업을 준비하는 '창업도전형' 사업장이다. 장성재 기자

경주 중심상가 골목에 들어서면 짙은 붉은색 외벽의 프렌치 레스토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간판은 '오르에(Orét)'. 문을 열고 들어가 메뉴판을 펼치면 트러플 머쉬룸 수프, 로제 비스크 파스타, 비프 부르기뇽, 생선 뫼니에르 같은 낯선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코스요리도 있다. 가격은 2만원대다. 식사를 마치면 허브 소르베 같은 디저트가 나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경주 중심상가에 새로 문을 연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조금 뜻밖이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경주지역자활센터다.


더 놀라운 건 주방이다. 전문 셰프가 상주하며 음식을 만들고 자활 참여자들이 보조하는 식당도 아니다. 현재 오르에에서 일하는 자활 참여주민 6명이 직접 요리하고 손님을 맞는다. 식전빵과 일부 디저트를 제외하면 육수와 소스, 베이스부터 완성된 요리까지 거의 모두 이들의 손에서 나온다.


정희근 경주지역자활센터장은 "가끔 손님들이 '셰프님은 안 계시느냐'고 묻기도 한다"며 "셰프가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아니라 셰프에게 배운 참여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식당"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요리를 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대부분 외식업 경험이 없었다. 경험이라고 해봐야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본 정도였다. 현재 참여자 가운데는 센터의 공방사업단이나 세탁사업단에서 일하다 오르에로 옮겨온 사람도 있다.


이들이 프렌치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르에의 메뉴 개발과 교육에는 제주도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미슐랭 출신 전준호 셰프가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제주에서 2박3일, 경주에서 5박6일 동안 집중교육을 받았다. 가오픈 때는 셰프팀과 실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는 영업과정까지 경험했다. 이후에도 영상과 메신저 등을 통해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경주지역자활센터 프렌치 레스토랑 오르에의 주요 메뉴. 자활 참여주민들이 직접 조리한 비프 부르기뇽과 파스타, 수프, 생선요리, 디저트 등이 한 상에 올랐다. 정희근 센터장 제공

경주지역자활센터 프렌치 레스토랑 '오르에'의 주요 메뉴. 자활 참여주민들이 직접 조리한 비프 부르기뇽과 파스타, 수프, 생선요리, 디저트 등이 한 상에 올랐다. 정희근 센터장 제공

정 센터장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레시피와 조리 순서를 잊지 않으려고 주방 여기저기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습관 하나, 동선 하나까지 적어놓고 외웠다. 익숙해진 것은 하나씩 지워나갔다.


지금은 역할도 제법 전문적이다.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를 담당하는 콜파트 2명, 메인 요리를 맡는 핫파트 2명, 어느 곳이든 투입되는 올라운더 1명, 홀 1명으로 나눠 일한다.


레스토랑 문을 열었다고 곧바로 손님이 몰린 것은 아니다.


6월 가오픈 당시 한 타임에 들어오는 손님은 평균 3팀 정도였다. 두 달여가 지난 최근에는 20석이 거의 차는 날도 생겼다.


매출 차이도 크다.


정 센터장이 생각하는 하루 목표 매출은 100만원 정도다. 지금까지 100만원을 찍은 날은 한 번. 90만원, 80만원대를 기록한 날도 있지만 비가 오거나 손님이 뜸한 날에는 20만~30만원에 그칠 때도 있다.


오히려 이 숫자가 참여자들을 바꾸기 시작했다.


정 센터장은 "처음에는 매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하루 100만원 가까이 팔린 날과 30만원에 그친 날을 직접 겪으면서 달라졌다"며 "이제는 참여자들끼리 어떻게 해야 손님을 더 끌어올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한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음식만 만드는 것도 벅찼다. 손님이 몰리면 주문을 처리하기 급급했고 센터 직원들이 홀 서빙을 도왔다.


오르에에서 식사 후 맛본 허브 레몬 소르베. 새콤하면서도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장성재 기자

오르에에서 식사 후 맛본 허브 레몬 소르베. 새콤하면서도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장성재 기자

지금은 다르다.


20석이 차도 예전만큼 당황하지 않는다. 아직 능숙하지는 않지만 참여주민들이 직접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응대한다. 하루 영업이 끝나면 매출도 함께 정산한다.


오르에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자활사업장이라는 점을 앞세워 손님을 끌지 않는 것이다.


정 센터장은 사업을 준비하면서 '자활의 색깔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자활사업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한 번 들르는 식당보다는, 음식이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아오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음식 맛과 서비스, 분위기가 좋아 다시 찾는 식당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르에는 요리만 가르치지 않는다. 하루 매출을 정산하고 식재료를 발주한다. 재료비를 계산하고 예약을 관리하며 언제 손님이 몰리는지도 살핀다. 요리 수업이 아니라 실제 식당 장사를 배우는 셈이다.


경주 중심상가에 문을 연 프렌치 레스토랑 오르에 전경. 경주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창업도전형 사업장으로, 자활 참여자들이 직접 요리와 서빙을 맡고 있다. 장성재 기자

경주 중심상가에 문을 연 프렌치 레스토랑 '오르에' 전경. 경주지역자활센터가 운영하는 창업도전형 사업장으로, 자활 참여자들이 직접 요리와 서빙을 맡고 있다. 장성재 기자

목표도 꽤 구체적이다.


현재 오르에는 창업도전형 자활사업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참여자 3~4명이 경험을 쌓아 약 3년 뒤 함께 식당을 창업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공동창업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익힌 조리기술로 일반 음식점에 취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르에를 오래 운영하는 게 성공일까.


정 센터장의 답은 조금 달랐다.


"어쩌면 자활사업의 진짜 성공은 자활사업이 망하는 것 아닐까요."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고 식당을 차리거나 취업해 더 이상 자활센터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자활사업의 역할도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경주 중심상가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지금 배우는 것은 비프 부르기뇽 만드는 법만은 아닌 듯하다. 손님이 많은 날과 없는 날을 겪고, 숫자를 맞춰보고, 다시 손님을 기다리는 일. 이곳의 여섯 사람은 지금 음식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가게를 꾸려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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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동부지역본부 소속입니다. 경주의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의 변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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